[@뉴스룸/손택균]내일의 무대, 오늘의 관객

  • 동아일보
  • 입력 2013년 12월 18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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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택균 문화부 기자
손택균 문화부 기자
4년 전에 아마추어 밴드의 보컬로 두 번 공연을 했다. 재미있었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민망해지는 기억이다.

공연 담당을 맡아 이틀에 한 번꼴로 객석에 앉아 무대를 바라보기 시작한 뒤 몇 달이 지나고 든 생각이다. ‘가족과 친구들이었으니까 짧지 않은 시간을 그 불편한 자리에 계속 앉아 있어 줬던 거였구나.’ 무대 위에 올라가 있을 때는 상상도 못했다.

고교야구를 소재로 한 일본 만화 ‘H2’에 수준급 실력을 갖춘 2루수 조연 캐릭터가 등장한다. “프로에 도전해 보라”는 매니저의 말에 그가 답한다. “프로는 선택받은 녀석들을 위한 무대야.”

‘좋아하는 일을 하라.’ 많은 사람들이 정답처럼 말한다. 그 말은 좋아하는 일을 직업으로 삼으라는 이야기와 다르다. 좋아하는 일을 잘할 수 있는 사람의 수는 한정돼 있다. 좋아하는 일을 잘할 수 없다는 사실을 깨닫는 과정의 괴로움은 만만한 것이 아니다. 4년 전 기억이 부끄러운 건, 무대 위에 올릴 만하지 않은 목소리를 객석 앞에 내놓았음을 뒤늦게 알아차렸기 때문이다.

하반기 내내 “리뷰 기사의 시선에 애정이 없다”는 핀잔과 함께 “무대는 공연을 거듭하면서 완성되는 것임을 왜 모르느냐”는 이야기를 거듭 들었다. 글이 냉혹하다는 평가는 수긍하지만 “공연 기간 초반의 미흡한 부분은 어쩔 수 없는 것으로 이해해야 한다”는 말에는 동의할 수 없다. 무대에서 공연을 완성해 나간다는 말은, 거친 만듦새의 공연을 무대에 일단 올려놓고 다듬어 나가도 괜찮다는 말과 다르다. 달라야 한다.

공연 일이 좋아서 직업으로 선택한 사람들에게 오늘의 무대는 끝이 아니다. 오늘 부족했던 부분은 내일 공연에서 반복되지 않도록 당연히 보완해야 한다. 그런데 이 말을 ‘오늘 부족했던 부분은 내일 보완하면 된다’로 슬쩍 바꾸면 어떨까. 비슷하게 들리지만 크게 다른 뜻이다. 오늘의 관객은 내일 다시 오지 않는다. 관객의 입장에서 그 공연에 대한 기억은 평생 ‘내일 보완하면 괜찮다고 생각했던 오늘의 그것’으로 남게 된다.

최근 만난 한 중견 연출가는 “올해 중대형 연극에 대한 평가가 대체로 바닥이었다. 울타리 안에서 친분 있는 사람들끼리 서로 듣기 좋은 말만 주고받으면서 바깥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지 않는 데 익숙해진 결과다”라고 털어놓았다. 좋아해서 선택한 일을 지금 그다지 잘하지 못하고 있다는 사실을 확인하는 괴로움을, 단체로 외면하고 있는 셈이다.

이달 초, 대중음악 콘서트를 몇 해 만에 보러 갔다. 지금껏 찾아가 본 모든 공연장 중 최악이라 할 공간이었다. 하지만 행복했다. 노래를 잠시 멈춘 가수가 말했다. “언제까지 이렇게 계속 노래를 만들고, 사람들 앞에서 공연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 그는 내일의 무대가 당연히 오늘처럼 주어지리라 믿지 않았다. 결코 공연을 즐길 수 없도록 지어진 흉악한 공간을 압도한 힘의 일부는 분명, 그 냉정한 자각에서 나온 것이었다.

손택균 문화부 기자 soh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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