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은 환호작약, 한국은 의기소침

  • 동아일보
  • 입력 2013년 12월 18일 03시 00분


코멘트

2013 바둑계 7대 뉴스

올해 한국 바둑계의 세밑은 우울하다. 무관(無冠) 2제로 요약된다. 한국 전체로는 세계대회 개인전에서 18년 만에 처음으로 타이틀을 1개도 따지 못했으며, 이세돌 9단(30)도 13년 만에 우승하지 못했다. 중국에서 1990년대 출생자인 이른바 ‘90後(후)’ 돌풍 탓이다. 조훈현-이창호-이세돌의 기세에 눌려 있던 중국 바둑이 6개 메이저 대회를 싹쓸이하며 포효한 해였다. 박정환(20)·김지석 9단(24)의 활약이 돋보였으며 타이틀은 여럿이 나눠 가졌다. 올해 바둑계의 7대 뉴스를 선정해 살펴본다.

① 中 6대 메이저대회 싹쓸이… 韓 쓰디쓴 참패

바이링(百靈)배와 LG배에서 저우루이양(周睿羊·22) 9단과 스웨(時越·22) 9단이 우승할 때는 한국 바둑계에서 위기의식이 없었다. 3월 잉창치(應昌期)배에서 17세 판팅위(范廷鈺) 3단이 우승했을 때는 놀랐다. 춘란(春蘭)배와 멍바이허(夢百合)배에서 천야오예(陳耀燁·24) 9단과 미위팅(]昱廷·17) 3단이 30세 동갑 이세돌과 구리(古力) 9단을 각각 눌렀을 때 중국 세대교체의 위력을 실감했다. 또 다른 90후 탕웨이싱(唐韋星·20·사진) 3단은 삼성화재배마저 거머쥐었다. 우승자는 천야오예를 빼고는 모두 90후다. 심지어 둘은 1996년생이다.

올해 한국의 참패는 한국기원을 비롯한 바둑계에 큰 숙제를 던졌다.

② 천하의 이세돌, 13년만에 무관으로 추락

이세돌(사진)은 15일 명인전 결승5국에서 최철한 9단에게 불계패해 종합전적 3-2로 준우승에 머물렀다. 맥심배 GS칼텍스배 춘란배 삼성화재배에 이은 5차례 준우승. 2000년 첫 타이틀을 딴 이래 지난해까지 세계대회 16회를 포함해 41회 우승하며 한국 바둑을 이끌어온 그가 처음 무관이 됐다. 30세를 넘기면서 약해진 이창호 9단의 전철을 밟는 게 아니냐는 우려가 나온다.

그 사이 박정환과 김지석이 타이틀을 추가했다. 랭킹 1위 박정환은 물가정보 맥심 바둑왕을, 랭킹 2위 김지석은 올레배와 GS칼텍스를 차지했다. 조한승(국수) 최철한(명인) 박영훈(천원) 강동윤(십단)이 1개씩 타이틀을 가졌다.

③ 한국기원 - 대한바둑협회, 갈등 끝에 통합 물꼬

프로바둑의 총본산인 한국기원과 아마추어 바둑의 대한바둑협회(대바협)가 분리 7년 만인 올해 1월 재통합의 첫 단추를 끼웠다. 한국기원 허동수 이사장(사진)이 대바협 회장으로 선출되면서 겸임하게 됐다.

프로단체인 한국기원은 2005년 정부의 지원을 받기 위해 한국기원 지방조직 등을 기초로 대바협을 발족시켰다. 이후 대한체육회 정식 가맹단체가 된 대바협과 한국기원은 정부의 보조금 배분이나 바둑 보급을 놓고 종종 딴 목소리를 냈다. 힘이 분산되는 바람에 2014년 아시아경기에 바둑을 정식 종목으로 채택시키지 못했다는 자성의 목소리가 나왔다. 바둑계의 뜻있는 인사들이 지난해 물밑 작업을 통해 통합의 물꼬를 튼 것이다.

④ 만년 꼴찌팀 티브로드, 정규리그 첫 1위

만년 꼴찌팀 티브로드(주장 조한승·사진)가 창단 6년 만에 처음으로 KB바둑리그 포스트시즌에, 그것도 정규리그 1위로 진출했다. 티브로드는 창단 첫해인 2008년 6위, 2009년 7위(최하위), 2010년 6위, 2011년 8위(최하위), 2012년 5위였다. 조한승-이지현-김세동이 주축이 되고 락스타 선수인 류수항 김현찬이 든든하게 받쳐주며 시너지 효과를 발휘했다. 후반기 파죽의 6연승으로 일찌감치 포스트 시즌을 예약했다. 팀의 꾸준한 지원과 이상훈 감독(大)의 리더십이 한몫했다는 평이다.

티브로드는 19∼24일 상금 3억 원을 놓고 2010년 우승팀 신안천일염(감독 이상훈·小)과 챔피언시리즈 3차전을 갖는다.

⑤ 조훈현, 바둑인생 51년만에 1900승 돌파

만 9세 7개월에 최연소 프로가 된 이후 한국 바둑을 대표해온 바둑황제 조훈현 9단(60·사진).

바둑 인생 51년간 기록을 양산했다. 전관왕 3차례(1980, 1982, 1986년), 세계대회 그랜드 슬램(잉창치배 89년, 후지쓰배 94년, 동양증권배 95년)….

지금도 신기록을 세워가고 있는 게 통산 최다승. 9월 1900승을 돌파한 데 이어 16일 대주배에서 우승하며 1907승 9무 811패(통산 승률 70%). 이창호(1653승)만이 겨우 따라오고 있는 정도다. 통산 최다 타이틀 기록도 159회로 늘었다. 그는 “앞으로 5년 또는 10년이 걸릴지 모르지만 2000승을 채우고 싶다”고 말한다.

이세돌(왼쪽)과 구리
이세돌(왼쪽)과 구리
⑥ 韓- 中 빅매치 ‘이세돌 - 구리 10번기’ 성사

이세돌-구리의 10번기가 성사됐다는 소식이 최종 확인된 것은 11월. 두 기사가 삼성화재배와 멍바이허배에서 각각 ‘90후’에게 패하면서 다소 빛이 바랜 감이 있지만 내년 최대 이벤트 중 하나로 바둑 팬을 설레게 한다.

내년 1월 26일 중국 베이징(北京)에서 첫 대국이 열리며 매달 중국 전역을 돌아다니며 개최된다. 4국은 한국에서 열린다. 먼저 6승을 거두는 기사가 승자독식으로 500만 위안(약 8억6635만 원)을 차지한다. 지는 기사는 여비조로 20만 위안(약 3465만 원). 5 대 5일 경우 250만 위안씩 나눠 갖는다.

⑦ 여류 2관왕 오른 최정, 세대교체 신호탄

최정 3단(17·현재 4단·사진)은 10월 말 전북 부안에서 열린 여류 기성전 결승전에서 ‘월드 퀸’으로 불려온 박지은 9단(31)을 누르고 우승을 차지하며 세대교체의 신호탄을 쏘아 올렸다. 박지은은 여자 세계대회 단체전에서 주장으로 여러 차례 우승을 일궈낸 강자. 최정은 1월 여류 명인에 이어 2관왕을 차지한 것이다. 국내파 여자 기사로는 2004년 조혜연 9단(28) 이후 9년 만이다. 여류기전 3개 중 나머지 하나인 여류국수는 김혜민 7단(27)이 차지했다.

과거 여성 바둑계의 최강자로 군림하다 중국으로 돌아간 루이나이웨이(芮乃偉) 9단과 함께 3인방으로 불리던 박지은과 조혜연은 올해 타이틀을 획득하지 못했다.

윤양섭 전문기자 lailai@donga.com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