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해인 수녀 “詩는 위로의 편지… 아픈 이들 대신 아파해주죠”

  • 동아일보
  • 입력 2013년 12월 18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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칠순 앞둔 이해인 수녀 43년 문학인생 정리한 詩 전집 2권 출간
암투병하며 고통받는 사람 더 이해… “기쁘게 아프자, 기쁘게 싸우자” 다짐

43년 문학인생을 정리한 시 전집을 낸 이해인 수녀. 박경모 기자 momo@donga.com
43년 문학인생을 정리한 시 전집을 낸 이해인 수녀. 박경모 기자 momo@donga.com
“얼마 전 교도소에 수감된 신창원 씨를 만났어요. 저를 ‘이모’라고 부르데요. 민들레영토 수녀, 흰 구름 수녀…. 제 별명이 참 많은데 가장 좋아하는 별명은 이모, 그중에서도 국민 이모예요. 왠지 이모에게는 엄마, 아빠, 남편에게 말 못할 고민도 털어놓을 수 있을 것 같잖아요.”

‘시 쓰는 이모’ 이해인 클라우디아 수녀가 자신의 문학인생을 정리한 시 전집 ‘이해인 시전집’(문학사상·전 2권)을 펴냈다. 1970년 ‘소년’지에 동시를 발표하며 등단해 내년에 칠순을 맞는 시인의 43년 문학인생을 망라한 시집이다.

첫 시집 ‘민들레 영토’(1976년)부터 ‘내 혼에 불을 놓아’(1979년) ‘오늘은 내가 반달로 떠도’(1983년) ‘작은 기도’(2011년)까지 시집 10권에 수록된 시 800여 편을 실었다. 어린 시절부터 최근까지 시인의 사진 60여 장도 실어 생의 발자취와 향기가 물씬 느껴지는 전집이다. “전집을 내며 제가 쓴 시를 세어 봤더니 1000편도 넘더군요. 동시집, 기도시집에 묶인 시나 산문집에 섞인 시를 빼고는 모두 전집에 담았지요.”

17일 서울 무교동의 한 음식점에서 만난 시인의 수녀복 주머니에는 손바닥만 한 수첩이 들어 있었다. 시상이 달아나는 것을 놓치지 않기 위해서라고 했다. “아무리 바쁜 날도 잡다한 생각들, 떨어진 꽃잎, 아침에 울던 까치, 수녀원에 다녀가신 손님들에 대한 생각 같은 것들을 반쪽씩, 한쪽씩 끄적였다가 여유가 나는 날 시로 옮깁니다.”

시인의 어림 계산으로도 시인의 시집 판매부수는 500만 권이 넘는다고 했다. 시집이 한창 팔리던 1980, 90년대에는 명성이 주는 허세에 도취될까봐 하느님께 ‘내 시집은 그만 팔리고 다른 시인 시집이 많이 팔리게 해주세요’라고 기도하기도 했다. 시를 읽은 이들은 편지와 엽서로, e메일로 자신의 사연과 고민을 시인에게 보냈다. 시인이 사목하는 부산 광안리 성 베네딕토 수녀원에는 여태껏 시인이 받은 수만 통에 달하는 서한을 모은 글방 겸 창고가 있을 정도다.

“그 사연에 담겨 있는 사람들의 영혼들이 제게 말을 거는 것 같아 하나도 버릴 수 없었어요. 일부는 답장을 보내기도 했는데, 자살을 결심했던 한 여성이 제 답장을 받고 마음을 고쳐먹고 미용사가 됐다며 결혼소식을 전해 온 적도 있었답니다.”

시인은 2008년 여름 대장암 진단을 받고 5년째 암과 싸우고 있다. “아직 완치된 상황은 아닙니다. 새로운 암세포가 발견되기도 했지요. 하지만 원망하기보다는 ‘기쁘게 아프자’ ‘기쁘게 싸우자’ 하고 마음먹고 있어요. 사실 아플 시간 없이 바쁘기도 하고요.” 투병 경험은 시 세계에도 변화를 가져왔다. “큰 아픔을 겪고 나니 저를 중심에 둔 시보다는 고통 받고 아파하는 사람들의 입장에서 그들을 대변하고 대신 아파해 주는 시가 늘더군요.”

시인은 최근 유언장도 썼다고 했다. “장례는 문인이 아닌 수녀로서, 다른 수녀들과 똑같이 극히 간소하게 해 달라고 썼습니다. 이번 전집을 포함한 제 저작물의 사후 인세는 현재와 마찬가지로 모두 (성 베네딕토) 수녀회로 귀속됩니다. 이승 정리가 다 끝나니 이제 저쪽 세상으로 이사 갈 날만 남았구나 싶어 홀가분합니다.”

국민 이모에게 새해맞이 덕담을 청했다. ‘사랑은 빨리하되 판단은 더디 하라’는 답이 돌아왔다. “험한 시대라 그런지 타인의 겉모습과 행동만 보고 너무 빨리 판단하는 것 아닌가 싶은 때가 많아요. 판단 보류의 영성이 필요하다고나 할까요? 타인을 재단하기 전에 조금 더 배려하고 사랑하고, 오는 말이 곱지 않아도 가는 말을 곱게 하면 우리 삶도 사회도 더 나아지지 않을까요?”

우정렬 기자 passio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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