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ood&Dining 3.0]“소박한 가정식, 건강한 요리의 시작이죠”

  • 동아일보
  • 입력 2013년 12월 18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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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식에서 가정식으로 바꾸는 사람들

최근 가정식이 인기를 얻고 있다. 전문가들은 자극적인 외식 메뉴 대신 자극이 덜한 가정식을 먹으며 치유를 받고 싶은 사람들이 늘고 있다고 말했다. 이런 분위기를 반영하듯 지난달 말 서울 중구 필동1가 샘표 본사에서 열린 가정식 실습 프로그램에는 20, 30대 젊은층이 많이 참가했다. 최혁중 기자 sajinman@donga.com
최근 가정식이 인기를 얻고 있다. 전문가들은 자극적인 외식 메뉴 대신 자극이 덜한 가정식을 먹으며 치유를 받고 싶은 사람들이 늘고 있다고 말했다. 이런 분위기를 반영하듯 지난달 말 서울 중구 필동1가 샘표 본사에서 열린 가정식 실습 프로그램에는 20, 30대 젊은층이 많이 참가했다. 최혁중 기자 sajinman@donga.com
요리 연구가 홍신애 씨는 최근 내놓은 책(‘하루 30분 요리가 된다’)에서 “건강한 요리는 신체적·정신적 에너지를 채워주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가 말한 건강한 요리는 집에서 해 먹는 ‘가정식(家庭食)’을 말한다.

우리는 한때 ‘한 끼 식사’를 거창하게 생각하기도 했다. 이성 친구와 한 끼 식사를 할 때면 근사한 레스토랑에 가서 ‘칼 질’ 한 번 쯤은 해야 했고 자녀와의 외식 때도 패밀리 레스토랑 정도는 가야 했다.

하지만 최근에는 분위기가 바뀌었다. 한동안 밖에서 음식을 사 먹었던 사람들이 재료만 사서 집에서 음식을 직접 해 먹는 추세다. 오프라인 공간에서도 가정식 강좌 및 실습 프로그램이 잇달아 열리고 있다. 자취를 하는 대학생부터 신혼부부, 중장년층까지 소박한 음식을 직접 만들어 먹겠다는 사람들이 넘쳐난다.

미역국·달걀말이… 소박한 음식을 해 먹겠다는 사람들

“가정식은 거창한 음식이 아닌, 실용적인 음식이랍니다.”

지난달 말 서울 중구 필동1가의 샘표 본사 요리원. 가정식 요리 실습 프로그램인 ‘집에서 밥 먹자’에 모인 10여 명의 사람들은 이홍란 샘표 식문화연구소 ‘지미원’ 원장의 얘기에 귀를 쫑긋 세웠다.

이 프로그램은 샘표가 요리 초보들을 위해 올해 처음 마련했다. 3번째 강좌가 열리는 이날은 ‘신혼부부를 위한 밑반찬’, ‘김치 담그기’에 이어 ‘삼첩반상’을 만드는 자리였다.

실습 대상은 현미밥과 달걀말이, 미역국 등이었다. 대학생 김다솜 씨(23·여)는 이 원장의 말 한마디 한마디를 노트에 적으며 열의를 보였다. 올해로 자취 생활 5년째인 김 씨는 그동안 대부분의 끼니를 밖에서 해결해 왔다고 했다. 그는 “취업할 시기(대학교 4학년)가 되다보니 스트레스를 많이 받는다”며 “한 끼라도 식사를 든든하게 하면서 위안을 받고 싶었다”라고 말했다.

프로그램에 참가한 사람들은 20, 30대 대학생과 직장인들로 대부분 자신이 먹을 한 끼 식사를 만들고 있었다. “미역을 볶아야 비린 맛이 없어진다”, “물은 종이컵 가득 4번 부으면 된다”, “깻잎 양념장은 한 장씩 바른다” 등 이 원장의 강의를 들으며 참가자들은 땀을 흘리며 재료들과 ‘씨름’을 하고 있었다.

감자볶음을 만들고 있던 허명회 씨(25)는 이날 유일한 남자 참가자였다. 그는 “파스타 같은 서양 음식이 아닌, 흰 쌀밥과 미역국을 여자친구에게 만들어 주고 싶었다”고 말했다.

수강생들은 실습이 끝난 후 함께 빙 둘러 앉아 직접 만든 음식을 먹었다. 이 원장은 “양념을 많이 넣은 자극적인 외식 메뉴에 사람들이 피로를 느끼고 있다”며 “그 때문에 자극이 덜한 가정식을 통해 치유를 받고 싶은 것”이라고 말했다. 가정식을 배워 보겠다는 사람들이 예상외로 많아 샘표는 내년에도 프로그램을 계속 이어 나갈 계획이다.

가정식은 지친 현대인을 위한 ‘위로식’

이홍란 샘표 식문화연구소 지미원 원장(왼쪽)이 미역국 만드는 법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최혁중 기자 sajinman@donga.com
이홍란 샘표 식문화연구소 지미원 원장(왼쪽)이 미역국 만드는 법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최혁중 기자 sajinman@donga.com
가정식에 대한 관심이 늘자 유통업계도 이를 반영한 메뉴를 개발하는 등 발 빠르게 대응하고 있다.

도시락 브랜드 ‘본도시락’은 최근 ‘우렁강된장쌈밥 도시락’과 ‘고등어조림 도시락’ 등 가정식에 가까운 메뉴를 잇달아 내놨다. ‘묵은지 김치찌개’, ‘버섯 된장찌개’ 등 찌개류도 개발했다. 이진영 본도시락 경영지원실장은 “튀김 위주의 즉석 요리 느낌에서 벗어나 집에서 먹는 건강한 한 끼 이미지를 주고 싶었다”고 말했다.

가정식 느낌을 강조한 가공식품도 나왔다. CJ제일제당은 냉동 가공식품 브랜드 ‘비비고’를 통해 남도떡갈비와 언양식바싹불고기를 내놨다. 이들 제품은 소고기와 돼지고기를 직화 방식으로 구워 집에서 직접 해 먹는 느낌을 냈다.

온라인에서는 가정식을 하는 식당이나 백반집이 ‘맛집’으로 평가받고 있다. 서울 용산구 한남동과 이태원, 마포구 홍익대 앞, 강남구 신사동 가로수길 등 젊은층이 즐겨 찾는 지역에 이런 식당들이 속속 생겨나고 있다.

전문가들은 가정식의 인기를 1인 가구가 늘고 핵가족화가 심화되는 등의 사회 변화에 따른 현상으로 보고 있다.

여준상 동국대 교수(경영학)는 “불황이 장기화되면서 외식을 자제하고 집에서 소박하게 식사를 하는 분위기가 이어지고 있다”며 “술을 자제하고 일찍 퇴근하는 아버지들이 많아지는 것도 가정식의 인기와 무관하지 않다”고 말했다. 또 원산지를 속인 음식점들에 대한 적발 사례가 끊이지 않는 데 따른 식재료에 대한 불신도 가정식의 인기에 한몫하는 분위기다.

그렇다면 가정식을 쉽게 하는 방법은 뭘까. ‘스피드 가정식’의 저자 이성연 씨는 “감자나 두부, 호박, 양파 등 어떤 찌개에도 들어가는 공통 재료를 다져 놓고 국을 만들 때 필요한 멸치를 미리 끓여 놓는 등 요리의 ‘기본’이 되는 것들을 미리 준비하는 것이 손쉬운 가정식의 기본”이라고 말했다.

김범석 기자 bsism@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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