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서-벽지 의료접근성 개선” vs “대형병원 배만 불릴것”

  • 동아일보
  • 입력 2013년 12월 17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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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긴급 진단 원격 진료]<上>정부-의료계 왜 대립하나

환자가 병의원을 찾지 않아도 진료를 받는 길이 이르면 2015년부터 생긴다. 정보통신기술(ICT) 덕분에 의료 서비스가 개선되는 셈이다. 문제는 의료 현장에 생기는 변화가 중소병원이나 동네의원의 생존권에 영향을 미칠지 모른다는 점이다. 대형 병원까지 적용된다면 중소병원이나 동네의원은 환자를 뺏길지 모른다. 지방 의료기관은 특히 그렇다. 이런 갈등은 용어를 둘러싼 신경전에서 나타난다. 대한의사협회는 “정부가 원격의료라는 말로 본질을 흐린다”고 주장하고, 정부는 “의사-환자 간 원격의료라는 식의 구절을 앞에 쓰니까 문제가 없다”고 한다.  

○ 달라지는 진료실 풍경

원격진료의 기본개념은 이렇다. 환자는 전화를 걸거나 개인용 컴퓨터(PC), 스마트폰, 태블릿PC에 설치한 원격진료 시스템을 통해 사전 예약을 한다. 약속된 시간에 의사와 화상으로 만나 진료를 받는다. 지금은 큰 병원에 가기 힘든 환자에 한해 보건소 의사의 도움을 받아 화상으로 멀리 떨어진 의료기관에 있는 의사의 자문을 받는다.

진료가 끝나면 e메일 또는 팩스로 처방전이 나온다. 노인, 장애인 등 움직임이 불편하거나 전자기기 사용에 익숙하지 않은 환자는 미리 지정한 대리인을 통해 처방전을 받고 약을 구하면 된다. 정부는 대리인 제도를 활성화하기 위해 자원봉사자를 활용할 계획이다.

원격진료를 통해 처방받는 약은 52개 질환으로 제한된다. 계속 같은 처방이 필요한 고혈압과 당뇨 등 만성질환, 그리고 가벼운 감기나 소화불량으로 국한된다. 처방전을 보내면 약을 집까지 배달하는 원격택배 서비스는 배달사고 등 부작용 우려 때문에 금지된다.

환자가 원한다고 아무 때나 원격진료가 가능하지는 않을 것으로 보인다. 부작용이 생기지 않도록 정부가 이용 횟수와 시간을 제한할 방침이다. 보건복지부 관계자는 “경증, 중증 환자를 막론하고 원격 진료를 두세 번 받은 뒤에는, 의사를 직접 만나는 대면진료를 꼭 한 번 받는 방향으로 의료법 개정안을 보완할 예정이다”라고 밝혔다.

정부는 전국의 동네의원을 중심으로 2015년부터 원격진료를 도입할 계획이다. 수술을 받은 환자나 증상이 아주 나빠 병원을 다시 찾기 어려운 환자에 한해 대형병원에 허용할 방침이다. 장애인, 저소득층, 노인요양시설에는 원격진료 시스템 설치비용을 지원한다. 어느 수준으로 도울지는 아직 결정되지 않았다.

동네의원은 원격진료 시스템이 24시간 가동되는 상황을 가장 우려한다. 의협 관계자는 “정부가 이용시간을 제한한다고 했지만 지금도 대형병원이 환자를 싹쓸이하는 상황에서 무의미한 조치”라고 지적했다. 동네 의원이나 중소병원을 고사시키는 제도라는 주장.

○ 이용도-만족도 두고 정반대 해석

정부안대로라면 섬이나 산골 오지마을 주민, 군대와 교도소 등 특수지역 거주자, 성폭력 피해자 등 병원 출입이 어려운 환자에게 큰 도움이 된다. 특히 비슷한 약을 타러 병원에 정기적으로 가야 하는 만성질환자가 편해진다. 한국에서 치료 받은 외국인 환자도 자기 나라에 돌아가 한국 의사에게서 재진을 받을 수 있다.

의협은 지역 면적을 감안한 한국의 의사 수가 호주와 캐나다의 100배, 뉴질랜드와 핀란드의 20∼30배 수준이라 원격진료가 필요 없다는 논리를 편다. 의료 복지를 강화하고 환자 전달체계를 보강하는 게 더 효과적이라고 반론을 펼친다. 또 원격의료 도입으로 동네 병의원이 줄줄이 도산하면 오히려 가까운 병원을 찾지 못하는 상황이 닥친다고 주장한다.

정부는 ‘원격진료 U-Health 서비스’ 30개 시범사업 결과를 두고 원격진료 효과와 환자 만족도가 비교적 높다고 설명한다. 특히 강원도와 한림대가 2004∼2012년 42개 보건진료소 2266명을 대상으로 진행한 ‘강원도 원격진료 시범사업’의 결과를 내세운다.

원격진료로 만성 당뇨병을 관리한 환자는 평균 60일간 몸속 혈당상태를 알려주는 당화혈색소(HbA1c)가 일반 환자보다 많이 개선됐다. 일반 당뇨병 환자의 30.5%가 겪는 합병증(저혈당 현상)이 원격진료 환자에게는 하나도 생기지 않았다. 환자 5명 중 4.5명이 원격진료에 만족한다고 답했고 4.6명은 계속 이용하겠다는 의사를 나타냈다.

분당서울대병원의 허찬영 교수도 환자 60명을 대상으로 스마트폰과 태블릿PC를 이용한 원격관리 프로그램을 3년간 가동했더니 만족도가 높았다고 발표했다.

이에 대해 의료계는 시범사업 결과가 과대 포장됐다고 항변한다. 정부가 추진한 30개 시범사업의 대부분은 환자와 의사가 같이 있는 자리에서 원격 시스템을 통해 다른 지역의 의사에게 자문을 받는 식이어서 환자 혼자서 멀리 떨어진 곳의 의사에게 진료 받는 원격진료의 추진 근거로 삼으면 곤란하다고 지적한다.

실제로 환자가 의료인의 도움 없이 의사와 직접 화상진료를 하는 방식은 독도경비대와 경찰병원 사이의 u-Health 시범사업밖에 없었다. 의협 관계자는 “정부의 견강부회가 도를 넘었다. 현재 의사-환자 간 원격진료 효과는 세계 학계에서도 논쟁 중인 사안이다”라고 주장했다.

:: 원격진료 ::

환자가 예약한 시간에 화상을 통해 의사에게서 진료와 처방을 받는 방식이다. 원격의료는 이보다 폭넓은 개념으로 원격진료는 물론 원격모니터링과 원격자문까지 포함한다. 원격모니터링은 의사가 환자로부터 혈압, 혈당 수치를 전송받아 관리에 참고하는 방식을 말한다. 원격자문은 병원에 가기 힘든 환자가 현지 의사의 도움을 받아 멀리 떨어진 의사의 도움을 받는다는 뜻이다.

유근형 기자 noel@donga.com
#의료계#원격 진료#의료 접근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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