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신민영]경상수지 흑자 마냥 좋아할 일 아니다

  • 동아일보
  • 입력 2013년 12월 17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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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민영 LG경제연구원 경제연구부문장
신민영 LG경제연구원 경제연구부문장
10월 경상수지 흑자가 95억 달러를 넘어서면서 1∼10월 누적 흑자가 583억 달러를 기록했다. 현재 추세라면 올 연간 경상흑자는 국내총생산(GDP) 대비 6%에 육박하는 700억 달러 전후로 사상 처음 일본의 경상수지 흑자를 넘어설 것으로 전망된다. 우리처럼 국제통화를 갖고 있지 않은 나라에 경상수지 흑자는 상당히 중요하다. 1990년대 초중반 우리나라는 적자가 늘면서 외환위기를 겪었다. 올해만 해도 5월 하순 미국이 양적완화 축소를 예고하면서 국제금융시장 불안이 확산됐을 때 대규모 경상수지 적자를 겪는 주요 신흥국들이 몇 달 동안 위기에 휩싸인 적이 있다.

문제는 흑자라고 무조건 좋은 게 아니라는 것이다. 우리 경상수지 흑자의 대부분(84%)을 차지하고 있는 상품수지 흑자의 질이 좋지 않다. 상품수지 흑자는 수출과 수입이 동시에 견실하게 늘어나면서 발생할 경우 바람직하다. 그러나 최근 수출 증가세가 급격히 낮아지는 가운데 수입은 줄고 있다. 올해 10월까지 수출이 1.9% 느는 데 그쳤고 수입은 오히려 1% 남짓 줄었다. 다시 말해 지금의 흑자는 세계경기 회복세가 미진해 수출이 부진한 증가세에 그치고 수입이 줄어 생기는 ‘불황형 흑자’의 특성을 나타내고 있다는 말이다.

수입이 늘지 않고 있는 것은 투자와 소비가 부진해서다. 투자가 위축되어 자본재 수입이 줄면서 상품수지 흑자 폭은 늘어난 것이다. 우리나라 전체 수입에서 자본재가 차지하는 비중은 2000년 40%에서 지난해와 올해 27∼28% 수준으로 떨어질 정도로 줄어왔다. 우리는 1998년 외환위기와 2009년 글로벌 금융위기 당시 투자가 큰 폭으로 감소하면서 경상흑자가 대폭 늘어난 바 있다.

한편 소비 부진 역시 수지 흑자를 늘리는 요인이다. 내수용 원자재 수입이 전체 수입액의 35%에 달하는 상황에서 내수가 줄고 있기 때문에 수입이 줄고 있는 것이다.

흑자 규모도 부담스럽다. 경상수지 흑자 폭이 너무 크면 원화절상 압력을 높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주요국 가운데 독일, 대만 등과 더불어 가장 높은 경상수지 흑자율을 기록하고 있다. 그나마 독일은 유로존에 속해 있어 독자적인 환율 조정이 어렵다는 점을 감안하면 원화야말로 미국 등 국제수지 적자국들로부터 가장 거센 절상 압력에 노출될 수 있다. 10월 미국 재무부 환율보고서의 원화에 대한 비판이 그 한 예다. 원화 강세가 아베노믹스와 미국의 양적완화 축소에 따른 엔화 약세와 맞물리면서 기업들의 수출경쟁력과 수익성이 거세게 위협받고 있다.

원화가 강세를 띠게 되면 이론상 수출이 줄고 수입이 늘면서 경상수지가 균형을 이루는 방향으로 가 흑자가 줄게 된다. 그러나 현 상황에서 원화 강세의 경상수지 조정 메커니즘은 원활하게 작동하기 어려울 수 있다. 인구 고령화와 저성장세 등으로 가뜩이나 부진한 모습을 보이고 있는 소비와 투자가 원화 강세에 따른 경기 하강 압박으로 더 위축될 수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환율 조정보다는 수지 흑자의 질과 양을 개선하는 직접적인 대응이 바람직해 보인다. 장기적 성장기반 확충을 위해 투자를 늘린다면 자본재 수입이 늘어 흑자 폭도 줄고 원화절상 압력이 완화될 것이다. 특히 우리 경제의 질적 전환과 저성장세 탈피의 핵심 과제로 떠오르고 있는 서비스 산업 활성화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의료와 관광, 교육 등 고부가가치 서비스 분야에 대한 투자가 늘어난다면 그간 충족되지 못해 왔던 서비스 소비를 통해 국민들의 행복도가 늘어나는 동시에 소비 증가에 따라 원자재 수입을 늘리게 하는 해법이 될 것이다.

신민영 LG경제연구원 경제연구부문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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