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물로 본 2013년 한국축구 명암] 위기를 기회로…황선대원군 성공한 쇄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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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3년 12월 17일 07시 00분


올 시즌 내내 화제를 몰고 다녔던 포항 스틸러스의 황선홍 감독은 정규리그와 FA컵 우승이라는 더블(2관왕)을 달성하며 행복한 한해를 보냈다. 정규리그 우승 후 트로피를 들고 환호하고 있는 모습. 스포츠동아 DB
올 시즌 내내 화제를 몰고 다녔던 포항 스틸러스의 황선홍 감독은 정규리그와 FA컵 우승이라는 더블(2관왕)을 달성하며 행복한 한해를 보냈다. 정규리그 우승 후 트로피를 들고 환호하고 있는 모습. 스포츠동아 DB
2. 더블 달성 포항 황선홍감독

구단의 긴축정책으로 용병 영입 포기
국내선수 연봉문제 등 직접 팀 추슬러
스틸타카 압박축구로 선수단 똘똘 뭉쳐
즐기는 축구·냉정한 자기관리 등 적중


2013년도 K리그 클래식(1부 리그)은 포항 스틸러스를 빼곤 이야기할 수 없다. 시즌 내내 화제의 중심에 섰다. 키워드는 대략 이렇다. ▲위기론 ▲외국인 선수 부재 ▲황선대원군 ▲스틸타카 ▲FA컵 우승 ▲사상 첫 더블. 위기에서 무한한 가능성과 기회를 만들어낸, ‘가진 것 없는 자의 성공스토리’와 맞닿아있다. 그래서 팬들은 더욱 열광적으로 환호하고 즐거워했는지 모른다.

중심에는 황선홍 감독이 있다. 프로 감독 6년차. 올 시즌 개막 전까지 우승 타이틀이라곤 2012년 FA컵 우승 밖에 없었다. 2008년 부산에서 첫 감독을 맡았을 때까지만 해도 ‘스타 출신 감독은 좋은 사령탑이 될 수 없다’는 통념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것처럼 보였다. 그러나 황 감독은 자신을 옭매었던 욕심과 승부욕을 조금씩 내려놓았다. 냉정함을 되찾고 마음을 비우면서 ‘황선홍 스타일’을 만들어냈다. 그가 그토록 바랐던 합리적인 지도자상과 포용의 리더십이 덧붙여진 결과다. 열매는 달콤했다. 정규리그와 FA컵 우승이라는 더블(2관왕)의 금자탑을 쌓았다. 2013년을 빛낸 황 감독을 되돌아봤다.

● 위기에서 기회를 보다

포항의 새 시즌은 암울했다. 모기업 포스코가 긴축정책을 뽑아들면서 구단 예산이 줄어들었다. 외국인 선수 영입을 포기해야만 했다. 국내 선수들은 연봉 협상에서 어려움을 겪었다. 작년 후반기 가파른 상승세를 타며 3위로 시즌을 마쳤다. 연봉 인상의 지렛대가 되면서 부족한 구단 사정과 엇박자가 났다. 황진성, 신화용, 신광훈 등 주축 선수들이 마음고생을 했다. 이를 바라보는 황 감독의 마음도 무거웠다. 팀을 정비해 시즌을 맞아야 했지만 여건은 미흡했다. 선수들을 설득해가며 가까스로 전훈지인 터키로 출발했다.

황 감독은 열악한 환경 속에서도 최선을 다했다. 자신이 있었다. 그는 “(외국인 선수가 없어) 나도 두려운 건 사실이다. 근데 자신은 있다. 신선한 바람을 일으킬 준비가 돼 있다”고 말했다. 수시로 선수들을 모아놓고 자신의 생각을 공유했다. 선수단은 똘똘 뭉쳤다. 이미 2012시즌 후반기를 몸으로 기억했다. 국내 선수들을 중심으로 FA컵 우승과 후반기 돌풍을 이끈 바 있다. 터키 전훈에서 디나모 자그레브(크로아티아), FK파르티잔(세르비아) 등 강호들과 거푸 연습경기를 치르며 내구력을 길렀다.

포항은 시즌 내내 승승장구했다. 꾸준히 선두를 유지했다. 치고나갈 힘은 떨어졌지만 버티는 힘은 좋았다. 그러나 스플릿시스템으로 나뉜 상위그룹에서 중대한 고비를 맞았다. 울산이 선두로 치고 올라간 반면 포항은 5경기 연속 무승(4무1패)에 그쳤다. 선수단 분위기는 말이 아니었다. 황진성이 무릎 부상으로 시즌 아웃됐고, 신진호가 카타르SC로 임대를 떠났다. 공격형 미드필더 자원이 모두 동난 상황. 황 감독은 신선한 자극을 가했다. 언론과 바깥 반응을 전해주면서 동기부여를 주입했다. 선수들은 절실함을 안고 싸웠고, FA컵 결승에서 승부차기 끝에 전북을 꺾고 첫 2연패를 거뒀다.

부담을 던 선수들은 가벼운 마음으로 경기를 펼쳤다. 역전 우승을 위해선 매 경기 모두 이기고 울산의 결과를 기다려야 했다. 하지만 황 감독은 선수들에게 별다른 주문을 하지 않았다. 선수들이 제 몫을 충분히 해줄 것으로 믿었다. 그는 “내가 욕심을 가지면 선수들이 부담을 갖고 압박을 받는다. 즐겁게 축구하자는 약속을 스스로 어기는 것이고 신뢰를 잃을 수 있다”고 말했다. 젊은 선수들이 압박을 받으면 제 실력을 발휘하지 못한다는 판단이 섰기 때문이다. 홀로 스트레스를 감당하며 선수들에겐 싫은 내색을 하지 않았다. 냉정함을 주문하되, 스스로 철저하게 관리하며 본보기가 됐다.

울산이 포항과 최종전을 앞두고 벌인 경기에서 부산에 패했다. 역전 우승의 희망이 찾아온 것이다. 승점차는 불과 2점. 황 감독이 첫 정규리그 우승컵을 들어올릴 수 있었다. 그토록 바라던 시나리오였다. 그러나 울산과 최종전에서 포항은 90분 동안 단 1골을 얻지 못했다. 후반 추가시간이 주어졌고 많은 이들이 울산의 우승을 점치던 순간. 마침내 집념의 골이 터졌다. 중앙 수비수 김원일이 오른발로 결승골을 우겨넣으며 종료 휘슬이 울렸다. 김태수, 박성호, 김광석 등이 1골을 위해 페널티 박스에서 몸을 던져 이룬 쾌거다. 선수들은 얼싸안고 눈물을 흘렸다. 황 감독은 감격스런 첫 정규리그 우승 트로피를 안고 활짝 웃었다. 그 순간을 맞이하기 위해 9개월간의 대장정을 고뇌하고 마음 졸였던 것이다.

황 감독은 선수들과 무언의 믿음을 주고받으며 불가능해 보였던 역전 우승을 가능케 했다. 부산 시절부터 자신을 보좌한 강철, 윤희준 코치와 호흡도 결코 지울 수 없는 우승의 원동력이었다.

박상준 기자 spark47@donga.com 트위터 @sangjun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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