볼거리 뜨면 → 사람 모이고 → 카페 붐빈뒤 → 옷가게 뜬다

  • 동아일보
  • 입력 2013년 12월 17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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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4대 길거리 상권’의 탄생과 발전… 비씨카드 매출액 통해 분석해 봤더니

함박눈이 내린 14일 방화진 씨(26·여)는 서울 종로구 삼청동을 찾았다. 방 씨는 주말에 특별한 일이 없으면 삼청동 좁은 길 옆 카페테라스에 앉아 산 밑 한옥들을 쳐다보거나 주변 가게에서 쇼핑을 즐긴다. 그는 ‘삼청동 단골’이다.

“예전에 맛본 소박하면서도 세련된 느낌이 좋아 계속 찾아요. 그런데 요즘 많이 변한 것 같아요. 프랜차이즈 커피숍이랑 화장품 가게도 생기고….”

삼청동은 서울에서 젊은이들이 많이 찾는 ‘핫 플레이스’라 불리는 거리다. 젊은이들 사이에서는 삼청동길(진선북카페∼정암아트갤러리 840m)과 함께 가로수길(신사동 주민센터∼기업은행 신사동지점 660m), 상수동길(홍익대 정문∼상수역∼합정역 1.5km), 경리단길(경리단 입구∼그랜드하얏트서울호텔 920m)이 서울 ‘4대 길’로 꼽힌다.

동아일보 취재팀은 비씨카드의 매출액 분석을 통해 ‘4대 길’의 발달 과정과 미래 모습을 분석했다. 비씨카드는 카드 시장 점유율이 20%를 넘는다. 이 때문에 이 회사의 매출을 분석하면 전수(全數)는 아니지만 상권의 움직임을 읽을 수 있다.

○ 예술이 흐르는 길 위로 사람이 모이다

4대 길은 서울에서 가장 변화가 두드러진 곳이다. 강남역, 명동과 비교했을 때 4대 길의 성장 추세는 뚜렷하다. 삼청동길의 올해 6월 기준 비씨카드 가맹점 수는 전년 대비 23.9% 증가했다. 가로수길 가맹점 수는 전년 대비 27.6%, 상수동길은 31.6%, 경리단길은 22.8% 각각 늘었다. 반면 올해 3월 기준(신한카드 가맹점 수)으로 강남역은 전년 대비 12%, 명동은 1.6% 증가하는 데 그쳤다.

4대 길의 현재 성장 속도는 제각각이다. 삼청동길 가로수길 상수동길 경리단길 순서로 주목받았다. 삼청동길의 올해 상반기 매출액은 전년 같은 기간보다 1.8% 줄었다. 가맹점은 증가했지만 성장세는 꺾인 것이다. 같은 기간 가로수길은 10.1%, 상수동길은 12.3% 매출액이 늘었다. 경리단길의 매출액 증가율은 22.6%. 현재 가장 뜨는 길이다. 특히 경리단길은 연 매출 10억 원 이상 가맹점 수가 지난해보다 20% 증가했다. 대형 가맹점이 늘고 있다는 의미다.

삼청동은 원래 한옥과 작은 갤러리가 모인 조용한 동네였다. 지난달 문을 연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이 삼청동에 들어설 것이라는 얘기가 나온 2005년경, 서서히 언론의 주목을 받았다. 연예인들이 인터뷰를 위해 이곳을 찾았다. 사람들의 발길이 이어졌고 돈도 모였다. 본격적인 상업화가 시작된 것. 갤러리들은 점차 레스토랑과 옷가게에 밀려났다.

2008년경부터 가로수길은 삼청동과 비슷한 길을 걸었다. 처음에는 패션디자이너들이 모인 곳. 사진 찍기 좋다는 소문을 타고 사람들이 몰렸다. 상수동길은 ‘홍대 미대’로 대표되는 젊은 예술가들의 공간이 바탕이 됐다. 가장 최근에 뜨기 시작한 경리단길은 인근 이태원 문화의 영향을 받았다. 가까운 리움미술관과 공연장 블루스퀘어도 이곳을 핫 플레이스로 자리매김하게 했다. 4곳 모두 예술이 있는 길 위로 사람들이 모였다는 공통점이 있다.

○ 사람 따라 맛과 멋이 모이다

사람들이 모이기 시작하면 가장 먼저 따라오는 건 음식점이다. 상수동길의 업종별 가맹점 수 비율에서 음식점은 2011년 34.9%에서 2013년 44.8%로 증가했다. 같은 기간 경리단길의 음식점 비율도 32.7%에서 42.2%로 늘었다.

박대원 상가정보연구소장은 “젊은 소비층은 주로 저녁에 모인다. 저녁 상권은 ‘먹자 상권’이 되기 마련”이라고 설명했다.

먹을 곳이 자리를 잡으면 패션 업종이 늘어난다. 현재 옷 가게가 늘고 있다면 한창 뜨고 있는 길이란 의미. 신규 가맹점의 업종별 비율을 보면 경리단길은 2011년 7.4%였던 의류업종 비율이 올해 15.6%로 2년 만에 2배를 넘어섰다.

예술을 즐길 수 있는 길을 찾아 젊은이들이 모인다. 그 다음 맛(음식점)이 모이고 그 사이로 멋(옷가게)이 들어선다. 이런 과정은 영국 런던의 핫 플레이스들이 밟은 과정과 비슷하다. 과거 런던의 이스트엔드는 낙후된 지역이었다. 이곳에 화이트큐브라는 미술관이 들어섰다. 인근 지역이 번화하기 시작했다. 1990년대 시작된 상업화는 점차 확산됐다. 예술가를 위한 값싼 가게들은 밀려났다. 그 자리를 높은 집세를 감당할 수 있는 레스토랑, 카페들이 차지했다.

서울의 길들과 비슷한 양상이다. 문제는 서울은 상업화가 너무 급하게 이뤄졌다는 것. 문화지리학 박사인 김이재 경인교대 사회교육과 교수는 “런던에서 20년 동안 이뤄진 상업화가 서울에서는 2년 만에 이뤄졌다”고 꼬집었다. 김 교수는 “서울에서는 어떤 길이 뜨면 2, 3년 안에 모두 비슷한 모습으로 바뀌어 버린다. 어딜 가도 똑같다면 그때는 더이상 굳이 그곳에 갈 이유가 사라지는 것”이라고 말했다.

한우신 기자 hanwshin@donga.com
#비씨카드#길거리#상권#상수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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