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의원 민원성 예산 없애는 게 국회 개혁 첫걸음

  • 동아일보
  • 입력 2013년 12월 16일 03시 00분


정부의 새해 예산안을 심의 중인 국회 15개 상임위원회가 9조 원가량의 예산 증액을 요구하고 있다. 내년 6월 지방선거를 앞두고 국회의원들이 지역구 예산이나 선심성 예산 확보에 경쟁적으로 달려드는 판이다. 복지에 대한 수요가 늘어나고, 경제 사정이 어려워 재원 마련이 녹록지 않은 현실을 감안한다면 참으로 염치없는 처신이다.

국회의 예산안 심의 때마다 한 해도 거르지 않고 논란을 빚는 것이 선심성, 민원성 예산이다. 잘못된 관행을 뿌리 뽑아야 한다는 여론이 높지만 고래힘줄보다 더 질기게 이어가고 있다. 국민 세금으로 지역구 주민 등에게 쉽게 생색을 낼 수 있기에 여야나 정파와 관계없이 ‘누이 좋고 매부 좋다’는 식으로 담합을 한다. 일부 지역구 의원들은 ‘뒷돈 예산’ 요구가 드러나도 아무 부끄러움 없이 “비판을 들으며 예산을 따왔다”며 자기선전을 하는 데 열을 올린다.

대통령선거가 있었던 지난해 특히 심했다. 각 상임위에서 모두 12조 원이 넘는 예산 증액을 요구했고, 예산안 심의를 총괄하는 예산결산특위가 결국 1조 원만 늘리는 것으로 조정했지만 민원 예산은 여전했다. 예결위 계수조정소위 일부 의원들과 정부 관계자들은 쇄도하는 ‘쪽지 민원’이 외부에 드러나는 것을 숨기기 위해 국회가 아닌, 호텔 방을 잡아놓고 1주일가량 비공개 심사를 했다. 계수 조정이 난항을 겪으면서 헌정 사상 처음으로 새해 예산안이 해를 넘겨 국회를 통과하는 나쁜 기록을 세웠다. 쪽지 민원 예산을 반영하느라 일부 복지 예산은 물론이고 국방 및 공공 예산이 대폭 삭감됐다.

올해라고 이런 꼴불견이 되풀이되지 말라는 보장이 없다. 국회에 예산 심의를 맡긴 것은 국민의 세금 부담을 줄여주고, 혈세가 불필요한 곳에 낭비되지 않도록 감시하라는 취지다. 하지만 예산 심의 행태를 보면 오히려 고양이에게 생선가게를 맡긴 격이다. 뒤로 자기 잇속을 챙기기에 바쁜 의원들의 위선과 직무 유기를 더는 내버려둘 수 없다.

정치 개혁은 원칙 있는 예산 심의로부터 출발해야 한다. 의원들 스스로 자기 돈을 쓴다는 마음가짐으로 심의에 임할 필요가 있다. 국민도 국회의원들이 더이상 ‘예산 도둑질’을 하지 못하도록 두 눈 부릅뜨고 감시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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