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강동순]교회 떠나는 평신도들 바라보며

  • 동아일보
  • 입력 2013년 12월 16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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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동순 가톨릭 언론인협의회 고문 전 방송위원회 상임위원
강동순 가톨릭 언론인협의회 고문 전 방송위원회 상임위원
최근 주일(12월 8일) 미사 시간에 정의평화위원회(정평위)의 담화문이 주보의 간지로 전달됐다. 평소에도 주교의 뜻보다 정의구현사제단 편에 서 오던 본당 신부가 강론을 대신하여 낭독한 담화문의 내용을 접한 후 많은 평신도들이 “이제는 한국 가톨릭이 교회로서 넘어서는 안 될 선을 넘었다”고 한탄하며 교회를 떠나고 싶은 심정을 토로하고 더러는 이미 냉담해하는 상태다. 임의단체인 정의구현사제단과는 달리 주교회의 산하 공식기구인 정평위조차 담화문에서 하느님의 이름으로, 교회의 이름으로 여러 정치 현안이나 환경문제와 관련하여 현 정부에 대해 매우 비판적인 입장을 취하고 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필자는 여러 정치 현안에 대한 정평위 담화문의 논리적 타당성 여부를 논하려는 것이 아니다. 다만 신자들이 교회에서 영혼의 구원을 받기는커녕, 마음의 상처를 안고 교회를 떠나는 주요 원인이 교회가 사회의 논쟁적 사안에 대해 직접 개입함으로써 교회와 사회 간의 갈등과 교회 안의 분열을 유발시키고 있기 때문임을 밝히고자 하는 것이다.

돌이켜보면 기독교는 지난 2000년 동안 수차례에 걸친 십자군전쟁에서 수많은 생명을 희생시켰고, 나치 독일의 유대인 학살에 침묵했고, 수많은 식민지 전쟁에서 원주민의 대량학살에 참여하는 등 종교를 앞세워 정의라는 이름으로 많은 오류를 범한 적도 있다. 이슬람교는 현재도 중동과 아프가니스탄 등에서 지하드라는 이름으로 피를 흘리고 있다. 그러나 다행히 로마 가톨릭은 2차 바티칸 공의회를 거친 교회 쇄신운동으로 과거의 권위주의적이고 배타적인 모습에서 겸허한 자세로 변모했다. 더욱이 “교회 밖에서도 구원을 받을 수 있다”는 놀라운 선언을 하기에 이르렀고, 요한 바오로 2세 때는 교회가 행한 오류에 대하여 용감하게 성찰하는 모습을 보이며 교회의 쇄신을 위해 꾸준히 노력해 왔다.

그런데 한국 가톨릭은 여전히 권위주의적인 모습을 버리지 못하고 일부 해방신학을 추구하는 세력이 교회를 흔들고 있는 현실을 볼 때 안타까운 마음을 금할 수 없다. 남미의 특수한 상황에서 ‘이 땅에 낙원과 구원을 이루겠다’는 취지로 발생한 해방신학(민중신학)을 그 좋은 의도에도 불구하고 로마 교황청에서도 공인하지 않는 이유는 해방신학이 마르크시즘적 유물사관에 근거한 계급투쟁을 목적으로 증오심과 폭력을 동원하기 때문이다. 이는 예수의 메시지인 ‘사랑’에 반하는 운동이고 결국 이 같은 방법으로는 세상을 변화시킬 수 없기 때문이다.

인간은 자유와 평등이라는 가치를 끊임없이 추구해 왔지만 그것은 쉽게 이루기 어려운 이데아의 세계라고 볼 수 있다. 더욱이 ‘정의’라는 개념은 시대와 입장에 따라 다른 얼굴을 하기 때문에 더욱 그렇다. 그래서 정의라는 이름의 폭력이 가장 무섭고 ‘의’라는 글 속에서 피비린내가 난다고 하지 않는가.

예수님은 여러 가지 비유로 제자들을 가르쳤다. 사랑의 권면과 훈계의 채찍으로 수많은 진리와 교훈을 가르치면서도, 유대 왕 헤롯과 로마정부를 직접적으로 비판한 적은 없었다. 예수의 말을 빌미로 당신을 붙잡으러 온 앞잡이들이 황제에게 세금을 내는 문제에 대해서 물었을 때도 “그러면 황제의 것은 황제에게 돌려주고, 하느님의 것은 하느님께 돌려 드려라” 하시면서 직선적인 비판을 하지 않았다.

한국 천주교 통계를 보면 가톨릭 신자의 78%가 마음의 평온을 얻기 위해서 신자가 되었다고 한다. 필자도 그러한 평신도의 한 사람으로서 신부님들에게 간곡히 부탁을 드린다. 교회를 정치적 비판과 논쟁의 장이 아니라 오로지 사랑과 평화를 위한 ‘기도의 집’으로 되돌려 주었으면 한다.

강동순 가톨릭 언론인협의회 고문 전 방송위원회 상임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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