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속의 이 한줄]자본주의 세상, 자본주의에 적용 안받는 것들

  • 동아일보
  • 입력 2013년 12월 16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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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시대에 자본주의를 무시하는 것은, 중세 때 신을 무시하는 것과 같다. ―그따위 자본주의는 벌써 끝났다(캐서린 깁슨, 줄리 그레이엄·알트·2013년) 》

‘그따위 자본주의는 벌써 끝났다’라니. 대체 뭐가 끝났다고 이렇게 뺨이라도 후려칠 듯 도발적인 제목을 달았을까. 책의 얼개는 간단명료하다. 거대담론과 총체성 이론에 반기를 든 프랑스발 포스트구조주의의 세례를 받은 미국과 호주의 여성주의 지리학자 두 사람이(‘J K 깁슨-그레이엄’이라는 공동필명으로) ‘우리가 알고 있던 그런 자본주의’의 끝을 선포하기 위해 쓴 책이다.

돈이 모든 것을 해결한다는 무소불위의 자본주의가 거의 전 지구를 뒤덮은 오늘날 ‘자본주의의 종말’이라니, 이 무슨 시대착오?

그런데 자본주의를 중세 때의 신에 비유한 대목에 이르면 문득, 저자들의 의도가 아연 확연해지며 고개가 끄덕거려진다. 그때 언감생심 신을 무시하지 못했듯 오늘날 우리도 자본주의 앞에서 잔뜩 주눅 들어 있다면, 그것은 중세 때와 마찬가지로 ‘신화화한’ 자본주의 탓임이 분명하다. 저자들이 파고드는 지점도 바로 이 자본주의의 ‘헤게모니의 신화’이다. 사실 오늘날의 자본주의는 너무 신비화, 추상화, 금융화되어 여느 경제주체들(바꿔 말하면 바로 우리 자신들)의 범접을 허용치 않는다.

깁슨-그레이엄의 전략은 치밀한 하방운동이다. 필리핀 간호사와 호주 광원의 결혼에 따른 온갖 색다른 계급 과정들을 꼼꼼히 따지고, 지역주민들이 다국적 기업을 길들이기도 한 사례들을 분석하면서 국민총생산에 시장생산물과 가계생산물을 모두 포함하게끔 국가회계를 뜯어고치자는 주장까지 소개한다. 우리의 경제적 삶이 실제 이렇게나 많은 ‘자본주의 아닌 것들’로 가득했던 건가, 놀라울 지경이다. ‘여가시간에 집에서 일하면서 자본주의를 으깨버리는 방법’이라는 논문을 쓴 두 공동체 경제론자의 색다른 경제이론, 그 거침없는 질주가 참으로 흥미진진하다.

박유안 번역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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