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악 통해 자신감-희망 찾았어요”

  • 동아일보
  • 입력 2013년 12월 16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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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문화가정 청소년 대안학교 다솜학교에 울리는 신나는 로큰롤

다문화가정 청소년을 위한 서울다솜학교 학생들과 이들에게 음악을 가르치는 유명 인디밴드 소속 멘토들이 10일 오후 서울 중구 흥인동 서울다솜학교 교실에서 미국 록밴드 그린데이의 ‘불러바드 오브 브로큰 드림스’를 함께 연주했다. 왼쪽부터 학생 김진호 군과 유기 군, 이정호(코어매거진), 학생 전설매 양, 조정빈(피네), 김기원(코어매거진). CJ문화재단 제공
다문화가정 청소년을 위한 서울다솜학교 학생들과 이들에게 음악을 가르치는 유명 인디밴드 소속 멘토들이 10일 오후 서울 중구 흥인동 서울다솜학교 교실에서 미국 록밴드 그린데이의 ‘불러바드 오브 브로큰 드림스’를 함께 연주했다. 왼쪽부터 학생 김진호 군과 유기 군, 이정호(코어매거진), 학생 전설매 양, 조정빈(피네), 김기원(코어매거진). CJ문화재단 제공
10일 오후 6시, 서울다솜학교 학생들의 ‘나머지 공부’는 퍽이나 시끄러웠다.

책상이 한쪽으로 밀어진 교실 안에서 드럼, 베이스, 기타, 앰프와 마이크가 각자 임자를 만나 굉음을 뿜었다. 마이크를 잡은 박준호 군(16)은 왜소한 몸집이었지만 미국 록 밴드 린킨 파크의 ‘넘’을 대차게 열창했다. 악기 연주는 학생들 몫이었지만 그 옆에는 ‘어른’들이 붙어 있었다. 학생이 박자를 놓치거나 음을 틀리게 잡을 때마다 잽싸게 코치하는 이 멘토들은 로큰롤라디오, 마호가니킹, 바이바이배드맨, 세컨세션, 아시안체어샷, 아홉 번째, 코어매거진, 피네, 이정아 같은 실력파 인디 밴드와 음악인들이다.

서울 흥인동 성동공고 창조관 6층에 자리한 서울다솜학교는 고등학교에 진학하지 못한 다문화가정 청소년을 위해 지난해 국내 최초로 개교한 고교 학력 인정 공립 대안학교다. 120명 정원으로 출발했지만 경제난이나 부모의 급거 귀국 같은 여러 이유로 일부 학생들이 학교를 떠나 지금은 전교생이 73명뿐이다.

이 학교에 힘찬 ‘희망의 로큰롤’이 울리기 시작한 것은 작년부터다. CJ문화재단이 운영하는 복합문화공간 CJ아지트의 ‘튠업우르르음악여행’의 경유지였다. ‘…음악여행’은 CJ아지트에서 매년 발굴하는 신인인 ‘튠업 뮤지션’들이 전국에서 문화적 혜택이 적은 학생들을 찾아 음악을 가르치는 프로그램이다. 서울다솜학교는 작년에 시범사업으로 아이들의 손에 악기를 쥐여 줬다.

학생들 대부분은 중국, 베트남 같은 고국에서 피아노 건반 한 번 만져보지 못한 아이들이었다. 올해 전교생의 절반에 가까운 33명이 보컬, 기타, 베이스, 키보드, 드럼 같은 악기를 배우면서 새로운 에너지를 얻고 있다. 중국, 베트남, 필리핀, 몽골…. 출신지도 제각각이고 언어도 달라 뭉치지 못했던 학생들이 쉬는 시간, 점심시간마다 만나 악기를 두드려 대더니 교내 밴드 ‘PPT(팝 펑크 트래디션의 약자)’도 올해 생겼다.

PPT의 보컬 박준호 군은 마이크를 잡고 성격이 바뀌었다. 그는 “다른 사람 앞에서는 쑥스러워서 말도 노래도 잘하지 못했는데 밴드 보컬이 되면서 어느새 팀을 이끄는 자신을 발견했고 친구들과도 잘 어울리게 됐다”고 했다.

2학년 신지은 양(18)은 “어려서부터 음악을 좋아했지만 중국에 살 땐 집안 형편이 어려워 피아노도 배우지 못했는데 음악을 스스로 연주하고 친구들과 어울릴 수 있게 됐다”고 했다. 중국 옌볜에서 태어난 신 양은 다섯 살 때 부모의 이혼으로 친척집에서 10년간 살다 2년 전 한국에 들어와 아버지, 새어머니, 이복동생과 살고 있다. 최근에는 새어머니의 암 투병으로 힘든 시기를 보내고 있다.

밴드 PPT를 포함한 서울다솜학교 학생들이 26일 서울 신정동 CJ아지트에서 콘서트 ‘차라리 공부가 쉬웠어요’를 연다. 2AM의 ‘이 노래’부터 그린 데이의 ‘불러바드 오브 브로큰 드림스’까지, 학생들이 선곡한 다양한 노래를 뮤지션 교사들과 함께, 또는 자기들끼리 연주한다. 박 군도, 신 양도 부모님께 이 공연을 빨리 보여주고 싶다며 웃었다.

밴드 바이바이배드맨의 고형석은 “제가 가르친 키보드반 아이들 모두 피아노에서 ‘도’의 위치도 모르는 아이였다”면서 “학생들이 무대 위에서 스스로 ‘멋있는 사람’이라는 걸 깨달았으면 한다”고 했다. 학생들은 한국에서 가장 따뜻한 크리스마스를 기다리고 있었다. 이번 공연의 마지막 곡은 ‘올 유 니드 이스 러브(당신에게 필요한 것은 사랑입니다)’다.

임희윤 기자 imi@donga.com
#대안학교#다문화가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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