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빅3가 세계 빅3… 中 거품 잠재운 ‘코리아 프리미엄’

  • 동아일보
  • 입력 2013년 12월 16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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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역 5强 향해 우리가 뛴다]<5·끝>현대중공업 울산조선소 가보니

10일 울산 동구 전하동 현대중공업 울산조선소 작업장에서 이 회사 조선사업본부 기본계획부 직원들이 도면을 살펴보고 있다. 이들의 뒤로 보이는 1만500TEU급 컨테이너선 ‘캡 샌안토니오’는 내년 1월 독일 선사로 인도된다. 현대중공업 제공
10일 울산 동구 전하동 현대중공업 울산조선소 작업장에서 이 회사 조선사업본부 기본계획부 직원들이 도면을 살펴보고 있다. 이들의 뒤로 보이는 1만500TEU급 컨테이너선 ‘캡 샌안토니오’는 내년 1월 독일 선사로 인도된다. 현대중공업 제공
‘우리가 잘 되는 것이 나라가 잘 되는 것이며, 나라가 잘 되는 것이 우리가 잘 될 수 있는 길이다.’

10일 울산 동구 전하동 현대중공업 울산조선소. 방어진 순환도로를 따라 달리다 보면 동해에 인접한 조선소 공장 벽면에 쓰인 이 문구가 눈에 들어온다. 고(故) 정주영 현대그룹 명예회장이 남긴 말이다. 이 조선소의 슬로건이기도 하다.

1972년 3월 준공된 현대중공업 울산조선소는 같은 해 4월 초대형 원유 운반선 ‘아틀랜틱 배런’을 수주해 1974년 11월 선주인 그리스 리바노스에 인도했다. 이 조선소는 지난해 수주금액 기준 세계 1위(305억3000만 달러·약 32조 원)인 한국 조선업의 대표 사업장으로 성장했다.

조선소 안에 들어가자 초대형 빌딩을 가로로 눕힌 크기의 배 여러 척이 한창 건조되고 있었다. 이 가운데 1만500TEU(1TEU는 20피트짜리 컨테이너 1대분)급 대형 컨테이너선 ‘캡 샌안토니오’는 99%가 완성돼 막판 페인트 작업 중이었다. 독일 선사인 함부르크 수드로부터 수주한 이 배는 이달 중 시운전을 거쳐 내년 1월 7일 인도될 예정이다.

승강기를 타고 이 배의 갑판 위로 올라갔다. 지상 27m 높이에서 내려다본 풍경은 장관이었다. 축구장 3개를 이어 붙인 것과 비슷한 길이 330m의 갑판은 컨테이너를 적재하기 위한 1만500개의 칸으로 나뉘어 있었다. 승선을 안내한 장재우 현대중공업 기본설계실 차장은 “칸막이 오차가 1mm도 안 되는 정교함이 우리의 경쟁력”이라고 말했다.

밖으로 눈을 돌려 보니 6만여 명(협력업체 포함)의 현장 근로자들이 조선소 작업장에 가득한 배들에 올라 건조작업에 열중하고 있었다. 이 조선소는 2015년까지의 일감을 확보하고 있다.

현대중공업과 대우조선해양, 삼성중공업 등 국내 조선업체 ‘빅3’는 세계 조선소 순위에서도 1∼3위를 차지하고 있다. 한국 조선업은 2011년 480억5000만 달러(약 50조4525억 원)어치의 일감을 수주해 세계시장 점유율 41.1%로 중국(33.3%)과 일본(12.8%)을 제쳤다. 중국은 싼값을 무기로 2010년 세계 1위에 올랐지만 기술력을 앞세운 한국이 왕좌를 탈환했다. 한때 세계 조선업계를 호령하던 유럽은 높은 인건비를 감당하지 못해 직접 생산을 포기하고 엔지니어링에 주력하고 있다.

허의범 현대중공업 기본계획부 부장은 “한국 배는 중국산보다 약 10% 비싸지만 기술력과 내구성이 뛰어나 해외 선주들로부터 ‘코리아 프리미엄’을 인정받고 있다”고 말했다. 운항 중 고장이 적고 유지 보수 능력이 뛰어나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는 것이다. 허 부장은 “일본 조선업계는 생산 효율성을 높이려고 설계 구조를 규격화했는데 맞춤형 설계를 원하는 선주들의 까다로운 주문을 소화하지 못해 점차 도태되고 있다”고 설명했다.

한국산 선박의 또 다른 강점은 높은 연료소비효율(연비)이다. 고유가 때문에 연비에 민감한 선주가 늘어나면서 배의 설계도 바뀌고 있다. 평균 운항속도를 낮추고 물살의 흐름에 따른 저항이 적은 선형(배 형태)을 만드는 게 최근 세계 조선업계의 흐름이다.

현대중공업을 비롯한 국내 조선업체들은 풍부한 건조 경험을 통해 쌓은 노하우를 바탕으로 중국, 일본의 배보다 5∼10% 우수한 연비를 실현하고 있다. 부품 국산화 과정에서 연비에 큰 영향을 미치는 프로펠러 등 선체 부착물을 자체 개발하면서 쌓은 기술력도 효과를 발휘하고 있다. 높은 연비 덕분에 선박을 중고로 팔 때도 잔존가치를 높게 평가받아 한국산 선박의 인기가 많다고 한다.

국내 조선업계는 지난해 유럽발 경기침체에 따른 세계 해운업 불황으로 어려움을 겪었다. 지난해 조선해양플랜트(해양구조물 및 부품 포함) 부문 수출액은 전년보다 29.7% 감소한 397억5300만 달러에 그쳤다. 국내 업체들은 벌크선이나 대형 컨테이너선 같은 기존 주력 분야에서 벗어나 고부가가치 선박과 해양구조물 사업 비중을 늘려 대응했다. 올해는 하반기(7∼12월)부터 해양구조물이 호조를 보여 조선해양플랜트 수출액은 지난해보다 1.9% 증가한 405억 달러에 이를 것으로 전망된다. 국내 ‘빅3’도 올해 수주 목표를 무난히 달성할 것으로 보인다.

현대중공업은 15일 프랑스 GDF수에즈 컨소시엄으로부터 9억7000만 달러 규모의 발전·담수플랜트를 수주해 올해 목표치(238억 달러)를 초과 달성했다. 쿠웨이트 아라비아 만에 지어질 이 플랜트는 2016년 완공될 예정이다. 이날 현재 삼성중공업은 126억 달러(연초 목표의 97%), 대우조선해양은 119억8000만 달러(92%)를 수주해 목표 달성을 눈앞에 두고 있다.

한국무역협회는 내년 조선해양플랜트 수출액이 올해보다 1.2% 늘어난 410억 달러를 기록할 것으로 전망했다. 최근 해외 선사들의 선박 발주량이 회복세를 보이고 있기 때문이다. 국내 조선사들은 컨테이너선과 액화천연가스(LNG) 운반선, 해양구조물 부문의 높은 경쟁력을 바탕으로 세계 발주량의 대부분을 수주할 것으로 협회는 내다봤다.

조선업계 관계자는 “셰일가스 생산량이 늘 것으로 전망되면서 가스선 수요가 증가했고 해양구조물 수출도 꾸준히 늘고 있어 한국 조선업의 위상이 흔들리지는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울산=이진석 기자 gene@donga.com

▼ 탄소섬유-기능성소재로 수출 제2도약 ▼

섬유업계, 신소재 개발로 中 견제


“회사 이름만 빼고 바꿀 수 있는 것은 모두 바꿔야 한다.”

심재혁 태광산업 부회장은 8월 열린 사업부문별 혁신(Reformation) 보고회에서 이렇게 말했다. 1950년 회사 설립 이후 처음으로 열린 전사 차원의 이 경영전략 회의에는 전 임원은 물론이고 팀장, 과장급 이상 엔지니어 등 200여 명이 참석했다. 태광산업 관계자는 “대내외적으로 어려운 경제 환경을 극복하기 위해 환골탈태(換骨奪胎)할 것을 다짐하는 자리였다”라고 설명했다.

섬유업계가 체질 개선을 통해 재도약을 꿈꾸고 있다. 섬유산업은 1970년대 ‘수출 효자’로 꼽혔다. 그러나 계속된 불황과 중국 업체들의 급성장으로 과거와 같은 활약을 최근에는 보여주지 못하고 있는 게 사실이다. 한국무역협회 무역통계에 따르면 2000년 188억 달러(약 19조7400억 원)였던 국내 섬유업계의 수출 실적은 2009년 116억 달러로 떨어졌지만 지난해 156억 달러 수준으로 회복됐다.

내리막을 걷던 섬유 수출이 다시 살아나는 것은 신소재 개발 덕분이다. 태광산업은 지난해 3월부터, 효성은 올해 5월부터 ‘꿈의 신소재’로 불리는 탄소섬유를 생산하고 있다. 강도는 철의 10배에 이를 만큼 세지만 무게는 5분의 1 정도에 불과한 탄소섬유는 자동차, 항공기, 압력용기 등 다양한 분야에서 철을 대체할 첨단소재로 각광받고 있다. 올해 20억 달러 수준인 세계 시장은 2020년 50억 달러 규모로 커질 것으로 전망된다. 효성은 탄소섬유 제품의 90% 이상, 태광산업은 60% 이상을 해외에 수출하고 있다.

아웃도어 제품이 섬유산업의 기회가 될 것이라는 분석도 나온다. 코오롱그룹 내에서 섬유사업을 담당하는 코오롱패션머티리얼은 아웃도어, 캐주얼 등 패션 분야 전체로 확장되고 있는 기능성 소재에 대처하기 위해 지난달 경기 양주시에 니트 전문 공장을 세웠다. 회사 관계자는 “국내 시장을 강타했던 아웃도어 열풍이 중국 등 해외로 확산되고 있다”며 “투습성 등을 강화한 부가가치 높은 제품을 개발하는 데 공을 들이고 있다”고 말했다.

강홍구 기자 windup@donga.com
#현대중공업#울산 조선소#무역#수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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