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의 향기]아내의 병은 깊어가고 건보는 무용지물… 美중산층의 좌절

  • 동아일보
  • 입력 2013년 12월 14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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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아내에 대하여
라이오넬 슈라이버 지음·박아람 옮김/540쪽·1만5800원·알에이치코/리아

집 수리공으로 시작해 집수리 전문 회사의 사장님이 된 자수성가의 본보기 같은 50대 남성 셰퍼드. 100만 달러(10억5000여만 원)를 받고 회사를 팔아 통장 잔액이 넉넉해진 그는 조기에 은퇴해 생활비가 덜 드는 외국에서 심리적, 경제적으로 여유 넘치는 제2의 인생을 시작할 꿈에 부풀어 있다. 하지만 출발을 1주일 앞둔 어느 날 아내 글리니스가 복막암 선고를 받았다는 사실을 털어 놓으면서 앞으로의 삶에 대한 그의 꿈도, 중산층으로 누려 왔던 현재의 안정된 삶에도 서서히 금이 가기 시작한다.

이 소설은 소시오패스 아들(케빈)을 둔 어머니의 독백을 그린 전작 ‘케빈에 대하여’로 2005년 오렌지상을 수상한 작가의 2010년도 발표작이다. 의료보험 제도를 민간 보험사에 내맡긴 미국의 의료서비스 체계가 서민과 중산층의 삶을 어떻게 붕괴시킬 수 있는지 생생히 보여준다. 민간 의료보험마다 보험료 납입액과 혜택이 천차만별인 상황에서 보험이 없는 서민은 병원에 갈 엄두도 못 내고, 보험에 들었어도 보험사가 인정한 ‘적정’ 치료를 사실상 강제 받아야 하는 미국 시민의 우울한 현실을 날카롭게 파고든다.

모두 19개의 장으로 이뤄진 이 소설은 매 두 장마다 한 번씩 본문 첫머리에 셰퍼드의 은행 잔액을 알려준다. 아내의 병이 깊어지고 항암 치료가 길어지면서 급감하는 잔액 수치…. 국가 건강보험이라고 하지만 감기 치료에나 도움이 되고 암 같은 큰 병에는 속절없이 막대한 경제적 부담을 져야 하는 한국 독자에게도 남의 일 같지 않은 서늘함을 안겨준다. 미국 버락 오바마 정부가 공화당의 반발과 연방정부 폐쇄를 감수하면서 건강보험 개혁안(오바마케어)을 도입한 배경도 이해할 수 있다.

미국의 건강보험 개혁 논쟁에 익숙지 않더라도 공감할 대목이 적지 않다. 노부모를 누가 모실 것인가를 두고 벌이는 자식들 간의 책임 떠넘기기, 장애가 있는 자녀를 둔 부모의 메말라가는 일상…. 산다는 일의 팍팍함과 위태로움은 미국과 한국 그 어디에서나 매한가지임을 보여준다. 2010년 전미도서상 최종 후보작에 올랐다. 원제 ‘So Much for That’.

우정렬 기자 passion@donga.com
#내 아내에 대하여#집 수리공#서민#의료서비스 체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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