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양과 다른 군산… 권익위 중재로 ‘새만금 송전탑 5년 갈등’ 해결

  • 동아일보
  • 입력 2013년 12월 13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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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부세력 개입 막고 주민-한전 대화로 풀었다
미군 수용땐 ‘대안 송전선로’ 건설, 거부땐 기존案대로 공사재개 합의

송전탑 건설을 강행하려는 한국전력 및 전북 군산시와 이를 반대하는 지역주민들 사이의 극한 갈등이 12일 극적으로 해결됐다. 5년간 갈등을 빚어온 군산 새만금 송전선로 건설사업을 약 6개월 뒤 재개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새만금 송전선로 사업은 한전이 새만금산업단지에 부족한 전력을 공급하기 위해 30.4km 구간에 걸쳐 송전탑 88개를 건설하는 사업이다. 2008년 12월부터 지난해 8월까지 14.3km 구간에 송전탑 42개를 설치했으나 군산시 회현면 옥구읍 미성동 구간의 46기는 주민들이 △땅값의 1조 원 이상 하락 △백혈병과 암 발생 등 건강 악화 등을 이유로 강하게 반대하면서 지난해 4월 공사가 중단됐다.

주민들은 인가가 없는 새만금 건설용지(만경강 방수제∼남북2축도로)를 지난해 ‘대안 송전선로’로 제시했지만 이 구간에 주둔 중인 미군(제8전투비행단) 측이 전투기 운항에 방해가 된다며 ‘수용 불가’ 의사를 밝혔다. 주민들은 “한전과 군산시가 미군 측에 무조건 안 된다고 답하라고 했을 것이다. 한전과 군산시가 공사를 강행하기 위해 우리를 속이고 있다”며 반발했다.

한전은 지난해 4월부터 공사를 재개하려 했지만 주민들과의 충돌로 부상자가 발생하는 등 대립이 계속됐다. 하지만 이달 11일 이성보 국민권익위원회 위원장과 한전 조환익 사장, 문동신 군산시장, 고윤석 주민대책위원장이 군산시청에서 조정회의를 열고 오랜 갈등을 끝내는 조정서에 합의했다.

권익위가 미군 측에 △송전탑의 높이를 건설이 가능한 최저 높이인 39.4m로 하면 수용할 수 있는지 등을 물은 뒤 미군 측의 수용 여부에 관계없이 그 결과를 한전과 군산시, 주민들이 조건 없이 받아들이기로 한 것이다.

미군이 받아들이면 ‘대안 송전선로’ 공사가 재개된다. 미군이 거부하면 기존 구간대로 공사를 재개하고 한전 군산시 전북도가 법에 따른 보상과 함께 지역사업을 지원한다. 권익위는 늦어도 6개월 뒤 미군으로부터 답이 올 것으로 보고 있다.

9월까지도 실마리가 보이지 않았던 오랜 갈등이 돌파구를 찾게 된 비결은 결국 ‘대화와 경청’이었다. 주민대책위가 10월 권익위에 고충 민원을 제기했고, 권익위와 주민들은 이달까지 14차례 만났다. 처음 서너 차례는 권익위가 5시간 이상씩 주민들의 얘기를 경청하기만 했다. 주민들은 “공사를 반대만 한 게 아니라 자비 3000만 원을 들여 전북대의 한 교수에게 용역을 맡겨 ‘대안 송전선로’까지 제시했다. 하지만 우리 말을 한 번도 귀담아듣지 않은 채 공사 강행 논리만 강요했다”고 호소했다.

권익위 측은 주민들의 얘기를 충분히 들은 뒤 한전 고위관계자를 대화에 참여시켰고 한전 측은 그동안의 태도에 대해 주민들에게 사과했다.
▼ 권익위, 주민 주장 경청… 한전, 송전탑 낮춰 양보… 주민들, 마음 열고 수용 ▼

주민대책위 법률 간사를 맡고 있는 강경식 씨는 본보와의 통화에서 “주민들은 차차 권익위가 미군에 보내는 객관적인 질의라면 그 결과가 무엇이든 납득하겠다며 양보하는 태도로 바뀌었다”고 말했다. 한전도 미군 측에 제의할 송전탑의 건설 높이를 한계선까지 낮췄다. 권익위 관계자는 “행정기관이 자기 집 부동산을 계약하는 자세로 주민들을 대하기만 했어도 진작 주민들이 마음을 열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권익위와 주민들은 경남 밀양 송전탑이나 제주해군기지 갈등과 달리 새만금에서 갈등이 해결된 또 다른 중요한 요인으로 환경·시민단체 등 외부 세력의 개입을 주민들이 막은 점을 꼽았다. 강 씨는 “외부 단체에서 같이 하자는 제안이 왔지만 주민들이 거부했다. 우리는 우리 지역 문제를 해결하고 싶은 것이지 사회 갈등으로 만드는 운동권이 아니다. 외부 단체가 개입했다면 우리가 그만두고 싶어도 그만둘 수 없는 상황이 됐을지 모른다”고 말했다.

윤완준 기자 zeitung@donga.com
#군산시#송전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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