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화문에서/부형권]종북의 진짜 천적은 ‘바보’

  • 동아일보
  • 입력 2013년 12월 13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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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형권 정치부 차장
부형권 정치부 차장
“어디까지가 종북(從北)세력입니까.”

정보 당국의 간부에게 따지듯 물었다. 그는 바로 답했다.

“1 대 9 대 90의 법칙이다. 1은 북한 지령을 직접 받는다. 9는 그 1의 지시를 받는다. 90은 1과 9의 정체를 모른 채 동조한다. 1과 9만 종북세력이고 척결 대상이다.” 덴마크 인터넷 전문가 야코브 닐센의 ‘90 대 9 대 1’ 법칙을 원용한 설명이다. ‘인터넷 이용자의 90%는 관망하며 9%는 재전송이나 댓글로 확산에 기여하고 1%만이 콘텐츠를 창출한다.’

1과 9의 존재는 새삼스럽지 않다. 2004년경 노무현 정부 안보라인의 고위관계자도 비슷한 얘기를 했다. “현직 교사가 북한의 선전선동을 그대로 인터넷에 올리는 세상이다. 김정일이 ‘(남한의) 우리 가족들이 다 잘하고 있다’고 하더라.” 그는 대북(對北) 감청(監聽) 내용까지 언급했다.

1과 9는 요즘 더 흔해졌다. 남파공작원이 주인공인 ‘은밀하게 위대하게’ ‘동창생’ 같은 영화에선 포장마차 할머니, 집배원 아저씨도 1과 9다. 이 영화를 본 수백만 관객 중 몇 명이나 ‘종북세력 척결하자!’고 다짐했을까. 종북과의 전쟁이 힘든 싸움인 이유가 여기 있는지 모른다. 사제복을 입은 백발의 신부가 “종북주의자가 적(敵)입니까”라고 말한 순간 정보 당국이 세워놓은 ‘1과 9 vs 90’의 구분선이 흐려진다. 종북 논란이 치열해질수록 ‘종북 몰이’에 대한 우려도 커간다. 보수 일간지 논설위원이 ‘그렇다면 나도 종북일까’라고 자문하는 칼럼을 쓰게 된다.

종북과의 전쟁은 네거티브 싸움의 한계를 벗어나기 어렵다. 국민에게 희망과 감동을 주는 생산적 경쟁이 필요하다. 정부와 여당에, 보수 우파에 ‘바보 시합’을 제안해본다. 진보의 대표 바보는 노무현 전 대통령이다. ‘당신은 시작부터 바보였습니다/떨어지고 떨어지고 또 떨어지면서도/정직하게 열심히 일하는 사람이 잘살 수도 있다고/웅크린 아이들의 가슴에 별을 심어주던 사람.’ 시인 박노해는 이렇게 추모했다.

‘노무현 정신’이 있다면 이런 ‘바보 정신’일 것이다. 민주당 대선 패배 요인 중 하나는 모든 걸 다 던지는 바보 정신의 결여라고 나는 진단한다.

보수 우파는 바보 되기가 더 어렵다. 다 던지고 다 버리기엔 가진 게 너무 많다. 박근혜 내각 중 조윤선 여성가족부 장관에게 ‘보수 정치인의 아이콘이 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막연한 기대가 있다. 따로 만난 적도 없지만 그냥…. 그의 인사청문회(3월 4일) 속기록을 꼼꼼히 읽어봤다. 변호사 부부인 그의 10년간 소득은 142억 원. 그가 나라에 낸 세금 47억 원은 아무 주목을 받지 못한다. 야당 의원들은 “연간 수억 원을 썼다. 서민이 느낄 상대적 박탈감을 아느냐”고 따진다. “세금 한 푼 안 냈다. 납세의무조차 못 지키면서 무슨 정치냐”는 지적은 한국 인사청문회에는 없다.

오른쪽, 우파를 뜻하는 라이트(right)는 ‘옳은, 바른’이란 의미도 있다. 진보적 가치에 모든 걸 다 거는 ‘노무현식 바보’가 당장 어렵다면 보수적 가치를 올곧게 실천하는 ‘바른 보수(Right Right)’ 바보라도 많아졌으면 좋겠다. 그런 멋진 바보가 청와대와 내각에 몇 명씩만 있어도 국민이 느끼는 답답함이나 아쉬움이 크게 줄어들지 않을까. 통합진보당 이석기 의원의 RO(Revolutionary Organization) 같은 지하비밀조직도 설 땅이 좁아질 것 같다.

RO(혁명조직)의 진짜 천적은 RR(바른 보수)이다.

부형권 정치부 차장 bookum90@donga.com
#보수#종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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