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규혁 “올림픽 메달후보 못들었지만, 마지막 반전이 남았다”

  • 동아일보
  • 입력 2013년 12월 13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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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번째 출전 빙속대표 이규혁

이규혁이 10일 서울 노원구 공릉동 태릉선수촌 내에 세워진 소치 겨울올림픽 응원 플래카드 밑에서 환하게 웃고 있다. 김동욱 기자 creating@donga.com
이규혁이 10일 서울 노원구 공릉동 태릉선수촌 내에 세워진 소치 겨울올림픽 응원 플래카드 밑에서 환하게 웃고 있다. 김동욱 기자 creating@donga.com
익숙해지려고 하지만 미련은 남는다. 한국 스피드스케이팅 대표팀의 맏형 이규혁(35·서울시청)은 10일 월드컵 시리즈를 마친 뒤 귀국했다. 인천공항에 몰린 수많은 취재진은 이상화(24·서울시청) 등 빙속 삼총사에게 관심을 쏟을 뿐이었다. 20년 가까이 스포트라이트를 받아온 이규혁은 그 모습을 물끄러미 바라보다 자리를 떴다.

이날 태릉선수촌에서 만난 이규혁은 “그동안 1등을 습관처럼 했는데 이제 메달 후보에서도 벗어난 선수가 됐다. 아무도 신경써주지 않으니 오히려 홀가분하다”고 말했다. 하지만 씁쓸한 표정은 숨길 수 없었다. 그는 1991년 열세 살의 나이로 태극마크를 단 뒤 1994년 릴레함메르 대회에서 처음으로 올림픽과 인연을 맺었다. 내년 소치 대회 출전을 확정지으며 6회 연속 올림픽 출전이라는 대기록을 작성했다. 한국 선수로는 역대 최다 올림픽 출전이다.

이번 소치는 그에게 은퇴 무대다. 2010년 밴쿠버 올림픽을 마친 뒤부터 생각했다. 23년간 태극마크를 다는 동안 그는 올림픽 때마다 유력한 메달 후보였다. 하지만 이번에는 턱걸이로 출전권을 획득했다. 메달도 노리기 힘든 상황이다. “지금은 스케이트를 죽도록 타고 싶지 않을 정도다”고 밝힌 그는 올림픽 6회 출전이라는 기록에 만족하지 못했다. 그는 “올림픽 참가에 의의를 두기는 자존심이 상한다. 올림픽 메달을 위해 몇 년을 준비했는데…. 기회는 있다고 생각한다. 남은 2개월 동안 반전을 마련하고 싶다”고 말했다. 마음 한곳에는 걱정도 있다. 그는 “두 달을 어떻게든 버텨야 하는 상황인데 올림픽 때까지 몸이 버텨줄지 모르겠다. 망가지는 것은 아닌지 두렵기도 하다”고 털어놨다.

그는 유독 ‘지기 싫어하는 선수’로 알려져 있다. 모든 선수들이 다 지기 싫어하지만 그는 작은 국내 대회라도 최선을 다한다. 외할머니 때문이다. 올해 81세인 할머니는 그가 출전하는 대회마다 빠짐없이 찾아가 응원한다. 그는 “할머니는 손자가 지는 것을 싫어한다. 간발의 차이로 이기면 마음 졸이실까봐 정말 있는 힘을 다 짜내 대회에 나선다. 이런 모습이 남들에게는 ‘지기 싫어하는 성격’으로 비치는 것 같다”며 웃었다.

오랫동안 그가 스케이트를 탈 수 있었던 힘은 ‘후회하기 싫은 성격’과 ‘1등의 재미’ 덕분이다. 그는 “후회하지 않으려고 지금까지 스케이트를 탄 것 같다. 사실 올림픽 메달을 일찍 따고 누구보다 일찍 은퇴할 줄 알았는데 메달을 못 따니 지금까지 왔다”고 말했다. ‘1등만이 누릴 수 있는 기쁨’도 매일 아침 일찍 빙상장으로 갈 수 있는 힘을 줬다. 그는 “힘들 때마다 1등 했을 때의 재미를 생각하며 더 이를 악물었다. 다른 대회는 다 누려봤는데 올림픽 1등 재미는 느껴보지 못했으니 올림픽을 포기하지 않았던 것 같다”고 밝혔다.

현재 고려대 체육학과 석사 과정을 밟고 있는 그는 은퇴 뒤 박사 과정까지 마치며 학구열을 불태울 계획이다. 지도자 자격증도 따놓아 공부하는 지도자를 꿈꾸고 있다. 20년 넘게 선수생활을 하면서 누리지 못했던 것들도 하고 싶어 했다. 크리스마스와 송년회다. “대회가 겨울에 열리니 크리스마스를 즐겨본 적이 한 번도 없어요. 내년엔 선수촌 밖에서 제대로 크리스마스와 송년회를 보내고 싶어요. 운동도 이제 취미가 되는 것이 조금 시원섭섭하네요.”

김동욱 기자 creati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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