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공이 있기에 너와 내가 존재할 수 있죠”

  • 동아일보
  • 입력 2013년 12월 12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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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양학 하는 목사님’ 이현주 목사, 신간 ‘공’ 펴내

1944년생인 이현주 목사는 10일 우리 나이로 칠순을 맞았다. 이날 전화 인터뷰에 응한 그는 “칠순잔치랄 것 없이 후배들과 미리 모여서 밥 한 번 먹어서 오늘은 집에서 조용하게 보내고 있다”고 했다. 지난해 겨울 서울 마포구 성산동 샨티출판사 사무실을 찾았을 때 모습. 샨티 제공
1944년생인 이현주 목사는 10일 우리 나이로 칠순을 맞았다. 이날 전화 인터뷰에 응한 그는 “칠순잔치랄 것 없이 후배들과 미리 모여서 밥 한 번 먹어서 오늘은 집에서 조용하게 보내고 있다”고 했다. 지난해 겨울 서울 마포구 성산동 샨티출판사 사무실을 찾았을 때 모습. 샨티 제공
‘저 날아가는 새가 허공에 안겨 허공을 드러내듯이, 아, 그대 참사랑이여, 내 이 초라한 삶과 죽음이 그대 품에 안겨 그대를 드러내는 것이기를!’

‘동양학 하는 목사님’으로 유명한 이현주 목사가 우리 나이로 칠순을 맞아 불가의 스님에게 어울릴 법한 제목의 책을 냈다. 신간 ‘공’(샨티·사진)이다. 부제는 ‘저는 어디에도 없으면서 모든 것을 있게 하는…’이다.

책에는 2008년부터 2011년까지 그가 먹을 묻힌 붓으로 선물 포장지나 판지 같은 쓸모없는 종이에 그린 다양한 형태의 ‘空(공)’ 글씨 70점과 공을 화두로 붙잡고 쓴 글 149편이 담겨 있다. 글씨를 보고 있자면 불가의 달마도가 생각날 정도다. 2004년부터 충주에서 살고 있는 그에게 10일 전화를 걸었다.

“마침 오늘이 생일이에요. 칠순이 되니 손님들이 종종 찾아와서 자비로 책 200부만 찍어 선물로 나눠 주려고 했다가 정식 출간하게 됐어요. 누군가를 염두에 두고 쓴 글이 아니라 정직하게 썼고, 그저 자유롭게 읽어주시면 그만입니다.”

이 목사는 몇 년 전부터 방안에 쭈그리고 앉아 입으로 ‘공공공공…’ 하고 읊조리며 다양한 모양의 ‘공’자를 썼다. 그러곤 마치 표구하듯이 둘레를 다른 종이로 풀칠해 붙였다. 재작년 사별한 아내는 생전에 그 모습을 보고 “나가서 산책이라도 하지 왜 그러고 있느냐”며 한마디씩 했단다. 완성된 작품은 주변 사람들에게 “공을 공짜로 드립니다”라며 나눠 줬다.

이 목사는 평생 수십 권의 철학서, 동화, 번역서를 내며 왕성한 저작 활동을 벌여 왔다. 특히 ‘대학중용읽기’ ‘기독교인이 읽는 금강경’ ‘무위당 장일순의 노자 이야기’ ‘장자산책’처럼 유불선 사상을 넘나드는 책이 많다.

“갓난쟁이 때부터 어머니를 따라 교회에 나갔습니다. 남이 알려주는 예수에 대한 이해나 설명보다 직접 배우고 만나고 싶었습니다. 그런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노자 공자 부처도 만나게 됐습니다.”

개신교 목사인 그에게 불가의 화두처럼 들리는 공이란 무엇일까?

“허공이 없으면 세상에 아무것도 존재할 수 없습니다. 우리가 손을 머리 위로 드는 것도 허공이 있어서 가능한 것처럼 아무 데도 없지만 다른 것을 존재하게 하는 게 허공입니다. 저도 허공처럼 존재하면 좋겠는데 육신이 있어 불가능하죠. 그래서 마음만이라도 허공처럼 살려고 합니다.”

하나님과 허공이 닮았다고 했다. 그는 “‘허공=예수’라고 할 수는 없지만 형상이 없는 하나님을 몸으로 경험한다면 가장 근접한 것이 허공 같다”며 “유불선과 기독교의 경계도 그 앞에서 다 허물어진다”고 했다.

그런 그가 ‘고마운, 정말 좋은 친구’였던 아내가 별세한 다음엔 글을 더 이상 쓸 수 없게 됐다고 한다. “아내가 임종할 무렵에 이 책에 담길 글을 마쳤어요. 책을 낼 땐 마지막이란 생각도 했는데, 아직 모르겠어요. 제가 할 말은 거의 다 했단 생각은 드네요.”

마지막으로 종교인으로서 한마디 해 달라고 부탁했다. 그는 “가끔 집으로 찾아오는 분들이 고민을 털어놓지만 그저 들어드리기만 한다. 다들 열심히 사니까 그저 하시는 일 거리낌 없이 하시면 좋겠다”며 더는 말을 아꼈다. 통화 내내 그의 목소리는 가벼웠다.

박훈상 기자 tigermask@donga.com
#이현주#공#종교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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