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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arrative Report] 황혼의 청천벽력…몹쓸 짓 당했건만 돌아온 건 손가락질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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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arrative Report] 황혼의 청천벽력…몹쓸 짓 당했건만 돌아온 건 손가락질뿐

동아일보입력 2013-12-12 03:00수정 2013-12-12 15: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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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요일인 8일 오후 3시 40분 경기 평택시의 한 병원 2층 로비. 비상구등을 제외한 전등이 모두 꺼져 있다. 지난해 8월 12일 일요일 오후 3시 40분, 60대 여성 환자가 “30대 남자 간호조무사에게 성폭행을 당했다”고 한 곳이다. 본보 취재기자가 사건 당시와 같은 요일, 같은 시간에 현장을 찾아 둘러보고 있다. 평택=김재명 기자 base@donga.com
《 젊은 남자에게 성폭행 당한 할머니들을 향한 사회의 시선은 싸늘하다.
'먼저 유혹하지 않았는데도 그랬을까' '늙은 꽃뱀'…. 이런 편견 때문에 할머니들은 숨죽이며 2차, 3차 피해를 입는다.

본보가 노년기에 성폭력 피해를 당한 여성들을 심층 취재한 결과 자살하거나 정신적 충격으로 남은 삶 전체를 고통 속에 몸부림치다 생을 마감한 피해자가 적지 않았다. 가해자들에게서 공통적으로 나타나는 특성은 약자인 노년 여성을 공격함으로써 자신의 뒤틀린 욕구와 적개심, 지배욕을 풀려는 것이었다. 아동을 대상으로 한 성범죄와 본질적으로 같은 것이다. 경기 평택시의 한 병원에서 벌어진 비극적 사건의 전모를 추적했다. 》

엘리베이터 문이 열렸을 때 병원 로비는 암흑에 잠겨 있었다. 오후 3시 40분, 한낮이었다. 일요일이었던 8일 경기 평택시의 한 병원 2층 로비. 천장의 백열등 수백 개는 모두 꺼져있었다. 빛이 들어들 창도 없었다. 평일 이곳은 환자와 보호자가 몰려 대기석 80여개가 꽉 찬다. 하지만 진료가 없는 일요일엔 인적이 끊긴다.

1년 4개월쯤 전인 지난해 8월 12일 일요일 오후 3시 40분경. 서모 씨도 이런 적막을 경험했다. 당시 62세이던 서 씨는 오른쪽 다리에 하지정맥류 수술을 받고 이 병원 7층에 입원해 있었다. 수술 부위를 감은 붕대가 풀려 붕대를 새로 갈아달라고 하기 위해 병실을 나섰다. 그날 서 씨가 타고 내려온 엘리베이터 문이 2층에서 열렸을 때 문 앞에 한 남자가 서 있었다. 남성 간호조무사 A 씨(33)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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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 씨는 A 씨의 안내를 받아 오른손으로 링거액이 걸린 거치대를 끌며 2층 복도 끝 '석고실'에 도착했다. '드레싱(소독) 받으실 분은 밖에서 대기해주세요'라는 안내문이 붙어 있었다. 두 사람이 들어가고 닫혔던 방문이 다시 열리기까지 34분. 그 사이 석고실에서 60대 할머니 환자와 30대 남자 간호조무사 간의 '성행위'가 있었다.

● 결혼 앞둔 딸, 대쪽 같은 남편

사건 직후 서 씨는 경찰에 신고하지 않았다. 방금 전 일을 주변에 알리는 것도 망설여졌다. 7층 병실로 돌아오다 간호사와 마주쳤을 때 서 씨는 엉거주춤 입을 뗐다.

"혈압 좀 재주세요."

심장이 뛰고 호흡이 가빠왔다. 서 씨는 심장으로 오가는 혈관이 좁아지는 협심증을 오래 앓아왔다. 수축기 최대 혈압이 157mmHg이었다. 가슴이 조여들다 뒷목이 뻣뻣해졌다. 5분쯤 뒤 다시 혈압을 재자 167mmHg까지 올라갔다.

서 씨는 이 때의 심경을 며칠 뒤 글로 남겼다.
'혼란의 연속이었습니다. 결혼을 앞둔 딸, 대쪽 같은 남편의 얼굴이 떠올랐습니다. 창피했습니다. 온몸을 락스에 담가 닦고 싶었습니다. 몸에 벌레가 스물스물 기어 다니는 것 같았습니다.' (서 씨가 검사에게 보낸 탄원서 중)

서 씨는 병실에서 나와 딸(25)에게 전화를 걸었다. 들릴 듯 말 듯 속삭이며 울먹였다.
"엄마가 병원에서…."
한참을 머뭇대다 딸의 재촉에 말을 이었다.
"붕대 갈아주는 사람이 성(性)적으로 무슨 짓을 했어."

딸에게서 전화를 건네받은 남편에게도 서 씨는 '성폭행'이나 '강간' 같은 표현을 하지 않았다.
서 씨의 남편은 병원으로 곧장 달려왔다. 남편은 병원을 뒤져 업무 중이던 A 씨를 찾아냈다. 남편은 "일단 경찰을 부를 테니 그 앞에서 얘기해보자"고 말했다. A 씨는 "병원에서 알면 큰일 난다. 살려달라"고 했다.

이때 서 씨가 남편을 말렸다.
"신고하면 경찰에 계속 불려나가고 그럴 거 아냐. 평택 사람들이 환갑 넘은 노인네가 지저분한 일 당했다고 수군거리면 내가 고개나 들고 다닐 수 있겠어. 소문나면 나 못살아. 신고는 좀 더 생각해보자."

서 씨는 평택에서 60년 넘게 산 토박이였다. 90세 노모와 동생들도 평택에 살고 있었다. 남편은 신고를 보류하는 대신 알고 지내던 경찰관에게 연락해 대처 방법을 물었다. 이 경찰관은 "신고는 나중에 하더라도 그 사이에 가해자가 말을 바꿀 수 있으니 성폭행 사실을 시인하는 자인서라도 받아놓으라"고 조언했다.

남편은 A 씨에게 자인서를 요구했다. A 씨는 종이와 펜을 가지고 왔지만 손을 벌벌 떨어 펜을 제대로 쥐지 못했다. 남편이 A 씨를 대신해 자인서 문구를 쓰고 A 씨는 '자인서가 강제로 쓰여진 것이 아니다'라는 내용의 문장과 함께 자신의 이름과 연락처를 썼다. 자인서에는 이렇게 쓰여 있었다.

'본인은 서OO 환자를 치료하던 중 강제로 강간하였습니다. 이 자인서는 어떤 강제에 의한 것이 아님을 확인합니다.'

● 가해자의 돌변

서 씨는 다음날 다른 병원으로 옮겨 입원했다. 경찰관의 조언에 따라 성폭행 사실을 뒷받침할만한 병원 진단을 받았다. 산부인과 전문의는 "성기에 성폭행 흔적으로 보이는 열상이 발견됐다"는 소견을 냈다. '외부 충격에 의한 의치 손상'(치과) '급성스트레스에 따른 협심증 악화'(내과) 등의 진단도 나왔다.

서 씨는 여전히 신고를 망설였다. 딸 결혼을 앞두고 한 달 뒤 상견례가 예정돼있었다. 서 씨는 15년 전 첫 남편과 이혼하고 당시 초등학생이던 늦둥이 외동딸을 여인숙을 전전하며 키웠다. 딸에게 가난에 찌든 사춘기를 겪게 했다는 자책감을 떨치지 못했다. 딸에게 6.6㎡(약 2평) 남짓한 딸만의 방을 마련해준 것도 5년 전 지금의 남편을 만난 이후 실현된 일이었다. 딸에게 '성폭행 피해자의 딸'이란 굴레를 덧씌울 순 없었다.

'가슴에 묻으면 되겠지'하는 서 씨의 바람은 곧 헛된 기대가 됐다. 사건 이틀 뒤인 8월 14일 저녁 A 씨는 서 씨에게 휴대전화 문자메시지를 보내왔다. 56줄에 이르는 장문이었다.

"아주머니가 해달라고 했잖아요. (제가) 그만하려는데 계속하라고 해서 하는데 (중략) '끝났어? 옷 입어도 되지?' 그러고는 제 손 잡고 고맙다고 수고했다고 하고서 (중략) 이런 식으로 나오시면 안 되죠."

서 씨는 이날 오후 11시 남편과 함께 평택경찰서에 성폭행 피해 신고를 했다. 사건 발생 후 55시간을 흘려보내고 나서야 신고를 한 게 얼마나 치명적인 실수였는지 부부는 알지 못했다.
이 사건을 담당한 평택서 민범식 형사는 "서 씨가 신고를 망설였던 3일은 가해자가 마인드 컨트롤을 하며 자기만의 시나리오를 짜기 충분한 시간"이라고 했다. 범행 자인서는 A 씨가 "(서 씨 측의) 강압에 의한 것"이라고 주장하면서 나중에 법원에서 효력을 인정받지 못했다.

● 진실 밝히려고 용기냈지만…

서 씨는 사건 한 달 뒤인 지난해 9월 11일 병원 석고실에 다시 들어서야했다. 경찰과 현장검증을 하기 위해서였다. 성폭력 사건에서 피해자가 현장검증에 동원되는 것은 극히 이례적이다. '신체 건강한 30대 남성이 뭐가 아쉬워서 60대 여성을 성폭행하겠는가.' 수사팀으로선 이 의문을 풀어야 했다. A 씨는 성범죄 전과가 없고 부인과 어린 자녀를 둔 외형상 평범한 가장이었다. 석고실 안에는 폐쇄회로(CC)TV가 없었다. 목격자도 없었다. 피해자가 직접 피해 사실을 증명해야 했다.

5㎡(약 1.5평) 남짓한 비좁은 석고실에 서 씨와 민 형사, 다른 형사 2명 등 4명이 들어섰다. 서 씨가 민 형사에게 당시 상황을 설명하면 나머지 형사 2명이 각각 서 씨(피해자)와 A 씨(가해자) 역할을 맡아 재연했다.

서 씨는 길게 한숨을 쉬며 설명을 이어갔다.
"그놈이 '여기(사타구니)에 반창고가 엉겨 붙어있어 떼어주겠다고 하기에 '딸한테 떼어 달라고 하겠다'면서 말렸는데…. 이불로 내 입을 틀어막고…."

'피해자 역' 형사가 침대 아래쪽에 걸터앉은 채 서 있는 '가해자 역' 형사와 마주보는 모양새가 되자 서 씨가 "심장이 터질 것 같다"며 주저앉았다. 현장검증은 2,3분쯤 뒤 다시 이어졌다.
최근 취재팀과 만난 민 형사는 "당시 검사가 누구 말이 맞는지 가리려면 피해자도 현장 검증을 해야 한다고 지휘해 어쩔 수 없었다"고 했다.

경찰은 저항이 불가능했을지를 눈여겨봤다. 당시 서 씨의 오른쪽 다리는 하지정맥류 수술 직후라 거동할 수 없었고 오른팔에 링거 바늘이 꽂혀 있었다. 왼손은 10여 년 전 강도가 휘두른 칼에 중상을 입어 장애 4급 판정을 받고 거의 움직이지 못했다. 움직일 수 있는 건 왼쪽 다리뿐이었다.

가해자 A 씨에 대한 현장검증은 서 씨보다 일주일 앞서 진행됐다. 그때도 두 사람의 행위와 자세가 대부분 일치했지만 A 씨는 "아줌마가 원해서 한 것이다"라고 주장했다. 현장검증 직전인 지난해 9월 4일 경기지방경찰청에서 거짓말 탐지기 조사가 진행됐다. A 씨의 진술은 대부분 거짓 반응이 나왔다.

수사가 진행되는 동안 서 씨에 대한 악소문이 퍼졌다. '늦바람이 나서 젊은 남성과 성관계를 했다' '합의금을 뜯어내려 남편과 공모한 꽃뱀 사건이다' '늙은 여자가 젊은 남자와 성관계를 했으면 고마워해야 할 판에 신고를 했다'는 등의 내용이었다. 소문은 서 씨와 가족의 귓속에도 흘러들었다. 병원 관계자들이 경찰 조사에서 "서 씨가 성관계 후 석고실에서 나오면서 흐뭇하게 웃는 장면이 병원 CCTV에 찍혀 있다"는 취지로 진술한 뒤에는 소문이 더 덩치를 키웠다.

지난해 8월 12일 서모 씨가 병원 2층 치료실에서 나오는 모습이 찍힌 폐쇄회로(CC)TV화면. 서 씨가 치료실에서 성폭행을 당하고 나오는 모습이라는 게 경찰의 설명이다.
취재팀이 해당 CCTV 영상을 확인한 결과 화질이 떨어져 등장인물의 표정을 식별할 수 없었다.

사건 한 달 만인 지난해 9월 13일 서 씨는 뜬눈으로 새벽을 맞았다. 검찰이 경찰의 4번째 요청 만에 법원에 A 씨에 대한 구속영장을 청구해 영장실질심사가 있는 날이었다. 앞서 경찰이 A 씨에 대해 신청한 구속영장은 검찰에서 3차례 기각됐다. 서 씨가 저항한 흔적이 별로 없어 성폭행으로 단정하기 어렵다며 보완 수사 지휘가 내려왔다. 지휘 내용을 관통하는 일관된 의문은 "젊은 남성이 나이 든 여성을 성폭행했을 개연성이 과연 충분한가"였다.

서 씨는 신고 후 한 달 간 6차례 경찰에 출석해 자신이 피해자라는 사실을 입증하는 조사를 받느라 쇠약해져 있었다. 신경 안정제를 맞거나 환자복 차림에 링거를 꽂고 나와 조사 받는 일도 많았다. 서 씨는 딸에게 "세상 사람들이 모두 나한테 눈치를 준다"고 했다.

사건 당일 가해자 A 씨가 쓴 자인서. A 씨가 “손이 떨려 못 쓰겠다”고 버텨 A 씨 대신 피해자의 남편이 문구를 쓰고 A 씨는 자인서가 강제로 작성된 것이 아니라는 내용의 문장과 서명을 남겼다는 게 피해자 가족의 설명이다. 그러나 나중에 A 씨는 강압에 의해 서명했다고 주장했다.
법원은 A 씨에 대한 구속영장을 기각했다. 증거인멸이나 도주 우려가 없다는 이유였다. 양측 주장이 상반돼 피의자의 방어권을 보장해야 한다는 취지도 반영됐다.
구속 영장이 기각되자 소문은 '강간이라면 당연히 구속감인데 늙은 여자가 먼저 꼬드긴 게 맞다'는 내용으로 진화했다.

서 씨는 영장이 기각되던 날 밤 딸에게 하소연을 했다.
"나이 많은 여자라고 이런 식으로 다 나를 죽이려고 해도 되는 건가. 나이 많은 게 이렇게 큰 죄인가."

그날 이후 서 씨는 집 밖에 나가지 않았다. 딸이 퇴근해 돌아오면 딸에게 "나도 같은 여자인데 날 왜 이렇게 벼랑으로 모는지 모르겠다"라며 중얼거리고는 했다. 6차례 경찰 조사가 진행되는 동안 "죽고 싶다"는 말을 자주 했지만 기각 이후에는 이런 말도 하지 않았다.
A 씨는 불구속 기소돼 현재 재판을 받고 있다. 11일 수원지법 평택지원에서 열린 4차 공판은 증인으로 출석한 병원 관계자 2명이 "신변의 위협을 느끼고 있다"며 비공개를 요청해 공개되지 않았다. 취재팀은 A 씨의 해명을 듣기 위해 여러차례 인터뷰를 요청했지만 응하지 않았다.

● 밥상에 남겨놓은 A4용지 5장

스마트폰으로 QR코드를 찍으면 ‘노인 성폭행’ 기사 전문을 보실 수 있습니다.
법원의 불구속 결정 18일 만인 지난해 10월 1일 오전 8시. 누군가 아파트 현관문을 주먹으로 마구 쳤다. 서 씨 가족은 평택 변두리의 낡은 아파트 5층에 살고 있었다. 방안에서 자고 있던 서 씨의 딸이 문을 열었다. 추석 연휴 마지막 날이라 친척이 찾아온 줄 알았다.

"밖에 있는 사람이 이 집 사람인지 확인 좀 해주세요."

119대원은 숨을 헐떡이며 물었다. 베란다 창문이 열려 실내로 찬 바람이 불어 들어오고 있었다. 서 씨의 방안 밥상에 놓여있던 A4용지 5장이 바람에 흩어졌다.

'내가 아이였거나 젊은 여자였다면 그놈이 구속됐겠지. 그놈이 나보다 나이가 많았다면 나쁜 소문도 안 났을 거야. 너하고 아빠 눈을 못 보겠어.'

서 씨는 이런 내용의 유서를 남기고 아파트에서 투신자살했다.

손효주기자 hjson@donga.com 
신광영 기자neo@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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