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의 눈/니컬러스 크리스토프]아이티에서 일어나는 진짜 구호활동

  • 동아일보
  • 입력 2013년 12월 11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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니컬러스 크리스토프 뉴욕타임스 칼럼니스트
니컬러스 크리스토프 뉴욕타임스 칼럼니스트
대지진이 아이티를 휩쓸고 지나간 지 4년. 13세 소녀 다린 루크(13)는 다른 수십만 명의 이재민처럼 제대로 된 집도 없이 살고 있다. 그의 거처는 구호물자 포대로 만든 판잣집으로 비가 새고 쥐가 득실댄다.

다린은 고기 맛은 물론이고 달걀 맛이 어땠는지조차 기억이 나지 않는다. 올해 9월엔 학업을 포기했다. 아버지가 세상을 떠난 뒤 교복과 책 구입비 200달러가 없었기 때문이다. 다행히도 12월부터 다시 학교에 다니고 있다. 하지만 국제기구의 도움이 아니라 고문시설을 학교로 탈바꿈시킨 놀라운 아이티 여성 덕분이었다.

국제구호단체에서 경력을 쌓은 미국 프린스턴대 개발경제학자 앵거스 디튼 씨는 “국제구호 활동은 도움은커녕 오히려 해가 될 뿐이다”라고 말했다. 그는 최근에 쓴 책 ‘대탈출’에서 국제구호는 경제성장 대신 그 나라의 부패만 키운다고 지적했다.

동의하지는 않지만 이는 주요한 쟁점임에는 틀림없다. 때로 동맹국 정부를 지지하거나 미국인 사업을 지원하기 위한 목적으로 집행되는 미국의 국제구호 활동이 비효율적임을 인정하는 것이 논쟁의 출발점이다. 디튼 씨는 미국 구호품의 70%가 제대로 전달되지 않는다고 지적한다. 현금일 때는 더욱 그렇다. 그토록 많은 구호품이 아이티로 갔지만 다린의 삶을 개선하지 못한 것은 놀라운 일이 아니다. 국제구호가 경제성장에 도움이 되는지는 의문이지만 생명을 구한 것만큼은 틀림없다. 아이티 유아사망률은 1990년대 이후 절반 가까이 줄었다.

국제구호가 경제성장에 기여하는지 따지는 것은 복잡한 문제다. 다만 교육을 받고 나은 영양상태를 유지하면 더 나은 경제시스템과 생산성을 요구하게 됨으로써 성장률 개선에 필요한 기반을 만들 것이라고 보는 게 합리적이다.

아이티 문제에 회의감이 들겠지만 다시 움직이고 있음을 주목하는 것도 의미가 있다.

아이티 경제는 미국보다 빨리 성장하고 있고, 납치도 줄어들고 있으며 의류 산업도 활기를 띠고 있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다린 같은 소녀들을 구하기 위해 아이티인들이 스스로 구호 네트워크를 구축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다린이 다니는 학교인 ‘SOPUDEP’는 46세의 아이티 여성 리아 돌 씨가 설립한 교육기관이다. 지역 공동체의 지원을 받아 유치원부터 고등학교 과정까지 저소득층 어린이 835명에게 무료로 교육의 기회를 제공한다.

이 학교는 지역의 지도층과 해외의 기부자가 결합된 가장 모범적인 사례다. 캐나다의 한 재단이 적극적으로 지원하고 있다. 돌 씨는 더 나은 아이티를 건설하려는 다른 단체들과도 연계해 슬럼가로 악명 높은 ‘시테 솔레’에 책을 보내고 있다. 이곳에선 지역 주민들이 스스로 문제를 해결하고 구호에 길든 의존적인 문화를 극복하자는 도서관 프로그램인 ‘사칼라’를 운영하고 있다. 사칼라를 이끌고 있는 다니엘 틸라스 씨는 “일각에선 ‘왜 우리가 도서관을 지어야 하나. 유니세프가 해야 할 일’이라고 말한다”라며 “하지만 더 나은 인생은 자신만이 설계할 수 있음을 깨달아야 한다”고 말했다.

다린은 여전히 수많은 도전에 직면해 있다. 진료를 받은 적도 없고, 공중화장실을 이용하다가 두 언니처럼 성폭행을 당할까 봐 걱정하고 있다. 이런 암울한 현실에서도 SOPUDEP는 한 줄기 희망이다. 다린의 영양상태는 개선됐고, 빈혈증세도 줄었다. 다린은 대학을 가겠다는 꿈을 꾸고 있다. 다린의 이웃에 사는 어린이 5명도 무료수업을 원하고 있다. 돌 씨는 이를 위한 지원을 물색하고 있다. 이런 올바른 구호가 아이들의 삶을 바꿀 수 있다.

니컬러스 크리스토프 뉴욕타임스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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