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연 리뷰]디자이너 정구호의 색채미, 버선코처럼 오뚝

  • 동아일보
  • 입력 2013년 12월 10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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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립무용단 ‘묵향’ ★★★★

무대 위에 한 폭의 수묵화를 그려낸 국립무용단의 ‘묵향’. 국립무용단 제공
무대 위에 한 폭의 수묵화를 그려낸 국립무용단의 ‘묵향’. 국립무용단 제공
안무와 의상, 무대, 음악 모두 우리의 것이었으나 이 하나의 공연은 더없이 현대적이었다.

총연출을 맡은 디자이너 정구호의 손길을 입은 국립무용단의 ‘묵향’(6∼8일 국립극장 해오름극장)은 우리의 전통을 얼마나 세련되게 그려낼 수 있는지 제대로 보여준 무대였다.

‘묵향’은 무용가이자 안무가였던 최현의 유작 ‘군자무’(1993년 국립무용단 초연)를 윤성주 국립무용단 예술감독이 재창작한 작품이다. 이야기가 있는 극 무용이 아니라 매란국죽 사군자를 그리는 선비의 정신에 초점을 맞췄다. 몸짓을 통한 감정의 표현을 최소화했고 화려한 동작도 자제했다. 많은 것을 덜어내고 구축한 절제미 가운데 정구호의 색채미가 활짝 피어났다.

무대는 네 폭의 화선지를 펼쳐놓은 듯 담박했다. 매란국죽은 무용수들의 한복을 통해 선명하게 나타났다. 꽃분홍색 저고리를 입은 무용수의 몸짓은 굽은 가지에서 작은 매화 봉오리가 탁 피는 듯했다. 선비가 난을 그리는 자태를 녹색 저고리의 무용수가 표현했고, 노란색의 풍성한 한복치마가 점점이 피어나는 가을의 국화를 그려냈다. 2∼3m 대나무를 든 남성 군무는 선비의 기개를 펼쳐보였다.

한국 무용에서 잘 쓰지 않는 정가를 배경음악으로 쓴 점이 눈길을 끌었다. 정가는 독창으로 시작해 돌림노래처럼 노래가 겹치면서 독특한 분위기를 만들어냈다. 거문고 산조는 서양악기 콘트라베이스와 어우러지고, 가야금 산조는 바이올린 선율과 결합했다. 전통적인 선율의 박자가 아니어서 무용수들이 연습과정에서 어려움을 표시했다지만 무대에서는 어색함이 느껴지지 않았다.

정구호는 의도적으로 무용수들의 동작이 덜 보이도록 한복치마를 살짝 더 부풀렸다. 무용수들은 처음에 “이런 치마를 입고 어떻게 춤을 추지”라고 했다고 한다. 하지만 살짝 들어올린 치마 밑으로 드러난 봉긋한 버선코, 지그시 디디고 누르는 발놀림에 더욱 집중하게 하면서 우리 무용의 선이 이렇게 곱고 은은했는지 새삼 눈뜨게 했다. 옛것에서 태어났으되 과거를 넘어 현재와 소통하는 우리 춤이었다.

조이영 기자 lycho@donga.com
#묵향#정구호#한복#안무#의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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