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자-마약까지… 씌울수 있는 죄는 다 적용

  • 동아일보
  • 입력 2013년 12월 10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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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北 장성택 숙청]
“장성택 일당 반당반혁명종파 행위”… 北이 발표한 죄목은

북한이 9일 노동당 정치국 확대회의를 통해 발표한 ‘장성택 일당’의 혐의는 사실상 전 분야에 걸쳐 있다. 마치 북한 체제의 모든 부조리와 잘못을 ‘장성택 책임’으로 씌우는 것처럼 보일 정도다. 김태우 동국대 석좌교수(전 통일연구원장)는 “혐의가 광범위한 것은 그만큼 장성택이 갖고 있던 권력의 크기가 컸다는 점도 보여주는 것”이라고 말했다.

가장 눈길을 끄는 혐의는 장성택이 ‘주체철과 주체비료, 주체섬유(비날론) 공업을 발전시키라는 유훈을 관철할 수 없게 했다’는 대목이다. 3가지 주체물질은 북한에 풍부하게 매장된 무연탄을 원료로 자체 생산에 성공함으로써 ‘자력갱생’의 성과로 내세워 온 품목들이다. 하지만 코크스 대신 무연탄을 써서 2009년부터 생산한 주체철이 철강산업에 필수적인 제선, 제강, 연속주조, 압연 공정을 다 거쳤는지, 품질은 어떤지 확인된 바 없다. 2010년 출하를 시작했다고 선전한 주체비료는 잇따른 공장 화재로 생산과 중단을 반복해 왔다. 북한은 주체섬유가 1939년 개발돼 1951년부터 생산을 시작했다고 주장하고 있다. 이에 따라 세 주체물질 모두 경제성이 떨어져 생산 중단이 불가피해진 것을 장성택 탓으로 돌리려는 것 아니냐는 의구심이 나온다. 특히 ‘국가재정관리체계를 혼란에 빠뜨리고 나라의 귀중한 자원을 헐값으로 팔아버린 매국행위’를 지적한 것은 중국에 지하자원 수출을 문제 삼는 것이어서 향후 북-중 경협에도 영향을 줄 것으로 전망된다.

‘내각 중심제, 내각책임제 원칙을 위반했다’는 혐의는 박봉주 총리를 중심으로 내각의 권한을 강화하는 경제정책을 위반했음을 뜻한다. 하지만 군부가 여전히 경제활동 수단과 이권사업의 핵심을 쥐고 있고 김정은이 마식령 스키장, 미림 승마장 등 과시형 사업에 치중하면서 내각 주도 경제개발의 실패는 예견돼 왔다. 이에 따라 2009년 화폐개혁 실패의 책임을 뒤집어씌워 당시 박남기 당 계획재정부장을 총살했듯이 지지부진한 경제정책을 장성택에게 돌렸을 가능성이 적지 않다.

‘사법검찰·인민보안기관의 당적(黨的) 지도를 약화시켰다’는 혐의도 나왔다. 사법검찰과 인민보안부서(경찰에 해당)는 북한 주민 생활 단속의 최일선을 맡고 있는 곳이다. 김정은은 지난해 직접 전국 분주소장(파출소장)회의, 사법검찰일꾼 회의를 소집하고 “불순적대분자를 모조리 색출하라”고 지시하는 등 영도체계 강화를 시도했다. 하지만 이 조직들이 뜻대로 장악되지 않자 그 책임을 장성택이 부장으로 있던 당 행정부에 돌린 것으로 풀이된다.

‘적대세력의 반공화국 압살공세에 투항해 계급투쟁을 포기했다’는 표현은 반체제 세력 견제의 단골메뉴. 핵개발조차 미국의 ‘반공화국 적대시정책’ 때문이라고 주장하는 북한에서 외부세력의 압력에 항복해 결탁했다는 혐의는 씻을 수 없는 ‘주홍글씨’나 마찬가지다. 한국 안보부서의 한 관계자는 “가택 수색을 통해 집에 숨겨 놓은 달러 뭉치를 찾아내고 이를 ‘국정원에서 받은 공작금’이라고 혐의를 씌우는 것이 북한식 숙청작업의 상투적 수법”이라고 말했다. 장성택 일당도 같은 전철을 밟게 될 가능성이 있다. 대북 소식통은 “북한은 주요 인물을 숙청하면 ‘여독(餘毒)청산’이라며 측근들을 숙청해 나간다”며 “장성택의 권력기반이 워낙 광범위하고 깊기 때문에 장기간 측근 숙청이 이어질 것”이라고 내다봤다.

장성택을 회복불능 상태에 몰아넣기 위해 북한은 도덕적 파렴치한으로 몰아가는 방법도 동원했다. 정치국 확대회의 결정문은 “장성택은 권력을 남용하고 부정부패 행위를 일삼고 여러 여성과 부당한 관계를 가졌으며 고급식당의 뒷골방에서 술놀이와 먹자판을 벌였다”고 주장했다. 또 “마약을 쓰고 다른 나라에 병 치료를 가 있는 기간에 외화를 탕진하며 도박장까지 찾아다녔다”고 했다. 북한에서 마약은 ‘인민의 적’, 도박은 ‘인민의 아편(마약)’으로 각각 불리며 강력한 처벌을 받아야 하는 혐오대상 취급을 받고 있다.

조숭호 shcho@donga.com·정성택 기자
#장성택#장성택숙청#북한#김정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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