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사 이정렬의 병원 이야기]환자의 소박한 다섯 가지 부탁

  • 동아일보
  • 입력 2013년 12월 10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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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존스홉킨스대 병원. 동아일보DB
미국 존스홉킨스대 병원. 동아일보DB

이정렬 서울대병원 흉부외과
이정렬 서울대병원 흉부외과
2010년 피터 프로노보스트가 쓴 ‘존스홉킨스도 위험한 병원이었다’(Safe Patients, Smart Hospitals·강병철 역·청년의사)에 나오는 조시라는 이름의 아이 이야기는 세계적 수준의 병원이 되기 위해서 병원들이 얼마나 솔직해야 하고 얼마나 강한 실천 의지와 공감대 형성, 그리고 투자가 있어야 하는지를 잘 보여주고 있다.

미국 중산층 가정의 막내로 태어난 조시는 여느 막내와 마찬가지로 귀여움을 독차지하고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잠시 엄마가 방심하는 사이 목욕탕 뜨거운 물에 전신 화상을 입게 된다. 미국의 잘 준비된 응급의료전달 시스템 덕분으로 적시에 응급실에 도착한 조시는 존스홉킨스대 병원의 훌륭한 화상 치료와 항생제 치료, 통증완화 치료 덕에 다행히 퇴원을 앞두게 되었다.

그러다 황당한 일이 발생한다. 중심정맥관 감염, 탈수, 패혈증, 과도한 통증완화 부작용 등 여러 악재가 갑자기 겹쳐 목숨을 잃게 되기 때문이다.

책에는 그렇게도 유명한 존스홉킨스대 병원조차도 의료진 간 의사소통의 부재, 간과하지 않았다면 더 좋은 결과를 보일 수 있었던 업무 처리과정, 일선 근무자들과 전문 의료진 간의 의사 소통 부재 등 진료의 혼선이 있었음을 보여준다. 또 엄청난 연구를 통해 중심정맥관 삽입 시 감염을 방지하기 위한 다양한 방법이 이미 개발되어 있음에도 이를 실현할 가이드라인이 있는지 아는 의사도 별로 없었고 심지어 알고 있는 의사도 이를 따르지 않았다.

책은 존스홉킨스대 병원은 바쁠 때는 제멋대로 해 온 현실들을 솔직히 인정하고 치부를 들어내는 고통을 감내하면서 혁신을 시작했다는 이야기로 마무리된다.

그렇다면 우리의 현실은 어떨까?

한국 병원의 경우는 다소 권위주의적이고 강압적으로 공급자 위주의 의료서비스를 제공해왔던 것이 사실이다. 또한 대형 병원 중심의 의료서비스 체계로 과거부터 의료의 질과 환자의 안전에 대한 불감증이 있었던 것 같기도 하다. 그래서 그런지 몰라도 너나 할 것 없이 환자들은 병을 잘 치료받고 있으면서도 병원에 대해서는 부정적인 시각과 불만을 토로하는 경우가 비일비재해 왔다. 정성을 다해 양심껏 환자를 돌보아 온 의사의 한 사람으로서 어떤 때는 이런 환자들이 야속하기까지 한 적도 꽤 있다.

의료의 질을 항상 점검하고 환자 안전의 중요성을 시시각각으로 인식하면서 지속적으로 개선하고 실천하여 서비스를 받은 환자들이 ‘불만 제로’가 되는 경지가 바로 세계 최고 수준의 병원이 되는 길이다. 그러면 어떤 병원이 질 높고 안전한 병원일까?

답은 의외로 간단하다. 몇 가지 안 되는 환자들의 소박한 부탁을 들어주는 데 실패가 없는 병원이면 족하다.

다음과 같은 많지도 않은 환자의 간단한 다섯 가지 부탁에 자신 있게 증거를 가지고 답할 수 있고 실천할 수 있는 병원이면 누가 뭐래도 세계 제일의 좋은 병원이라고 생각한다.

환자의 부탁 1: “저를 죽이지 말아 주세요”(사망률이 낮은 병원)
부탁 2: “해로운 약을 주지 말아 주세요”(투약 오류가 적은 병원, 약물 부작용을 미리 간파하는 병원)
부탁 3: “치료 후 상처가 곪지 않게 해주세요”(병원감염이 적은 병원, 합병증이 적은 병원)
부탁 4: “오른쪽 다리가 아프니 왼쪽을 수술하지 말아 주세요”(정확한 치료 부위의 확인)
부탁 5: “아프게 치료하지 말아주세요”(통증 완화 치료가 잘 되어 있는 병원)


말은 간단하지만 환자에게 최대 만족을 가져다주는 경지에 도달하기 위한 준비가 의료 공급자의 입장에서 그리 만만하지는 않다. 그렇다면 이를 위해 가장 필요한 것들은 무엇일까.

이정렬 서울대병원 흉부외과
#존스홉킨스#병원#응급실#의사소통#환자#의료의 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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