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태석기자의 이슈&포커스] 땅에 떨어진 심판의 위상을 회복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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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3년 12월 10일 07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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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 심판 출신의 정해성 경기위원장이 9일 신임 심판위원장으로 발탁됐다. 선수, 지도자, 경기위원장을 하며 얻은 현장 경험을 살려 심판의 개혁을 이끌어내겠다는 각오다. 스포츠동아DB
비 심판 출신의 정해성 경기위원장이 9일 신임 심판위원장으로 발탁됐다. 선수, 지도자, 경기위원장을 하며 얻은 현장 경험을 살려 심판의 개혁을 이끌어내겠다는 각오다. 스포츠동아DB
■ 정해성 신임 심판위원장이 할 일

심판위원장의 독점 배정권, 권력 줄서기로
제식구 감싸기식 과도한 온정주의도 문제
깨끗한 심판이 자부심 갖는 환경 만들어야


대한축구협회가 심판 개혁을 위해 칼을 빼들었다. 축구협회는 9일 “올해 5월 발생한 심판 체력테스트 부정행위와 관련해 L심판위원장에게 모든 책임을 물어 권고사직 시켰다”고 발표했다. 당시 대전에서 열린 체력테스트에서 C심판이 테스트를 치르기 직전 H심판이 몰래 코스에 들어가 체력 측정거리를 짧게 만들기 위해 트랙에 설치된 콘의 위치를 바꿨다가 발각됐고, 축구협회 진상조사 결과 L심판위원장이 이를 지시한 것으로 파악됐다.(스포츠동아 9월27일, 11월26일자 보도) 현장에 있던 Y심판위원은 부정행위를 묵인한 행위로 자격정지 6개월, 콘을 옮긴 H, S심판은 출전정지 6개월의 징계를 받았다. C심판은 체력테스트에 합격하기 위해 콘을 옮기도록 부탁한 사실이 인정돼 1년 간 자격이 정지된다.

후임 심판위원장 인사가 파격적이다. 정해성 현 경기위원장이 선임됐다. 전문심판 출신이 아닌 정 위원장이 심판수장이 됐다는 점은 큰 의미를 지닌다. 위에서부터 싹 바꾸겠다는 의지가 읽힌다. 정 위원장은 후임이 선임될 때까지 심판과 경기위원장을 겸임한다.

심판 위상은 땅에 떨어질 대로 떨어졌다. 왜 이 지경까지 왔을까. 배정권을 둘러싼 줄서기가 큰 원인 중 하나다. 심판계에서 배정을 못 받은 심판은 심판이 아니다. 배정에서 빠진 심판들은 자신들을 “죽었다”고 표현한다. 심판위원장과 소수의 심판위원들은 배정권이라는 막강한 무기로 심판들을 장악한다. 모 심판은 “심판 A와 B가 인성, 실력 등 모두 비슷하다면 배정하느냐 마느냐는 전적으로 위원장에게 달려 있다. 눈 밖에 나면 끝나는 구조다”고 토로했다. 앞으로 배정과 관련해 객관적이고 투명한 시스템이 마련돼야 한다.

지나친 온정주의도 문제다. L심판은 올해 9월 초 파주NFC에서 진행된 교육 도중 술을 마시고 들어와 행패를 부렸다.(스포츠동아 9월27일자 보도) 결국 제명됐다. 그러나 그는 현재 지방축구협회 심판이사로 버젓이 활동 중이다. 심판에서 잘렸으니 이 정도는 봐 주자는 제 식구 감싸기의 전형적인 모습이다. 이번에 물의를 빚은 체력테스트도 예전부터 말이 많았다. 모 심판 관계자는 “체력테스트 참가 심판들이 몸을 풀며 콘을 발로 툭툭 밀어 거리 줄이는 일이 종종 있었다. 감독관, 참가자 모두 좋은 게 좋은 거라는 식으로 눈감아 주곤 했다”고 폭로했다. 최근 잇따른 구설에 기준을 엄격하게 적용하자 합격률이 뚝 떨어졌다. 이 관계자는 “우리 지역도 15%% 이상 합격률이 낮아졌다”고 했다.

프로구단과 특정 심판의 오랜 유착관계도 뿌리 뽑아야 한다. 수도권 모 구단은 어떤 심판의 자녀 유치원 운동회에 구단 사인 볼 300개를 보냈다. 불과 몇 년 전 이야기다. 이 정도면 선의가 아니라 뇌물이다.

취재를 하며 많은 심판들을 만나고 통화도 했다. 이들 대다수는 현재 벌어지고 있는 잘못된 관행과 행태에 분개했다. 물을 흐리는 것은 소수 고위층과 그 라인이라 불리는 몇몇 심판들이었다. 깨끗한 심판들이 자부심을 갖고 일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 주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sportic@donga.com트위터@Bergkamp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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