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는 新중년시대]추억을 태우는 달콤함… 불꽃이 지피는 따뜻함…

  • 동아일보
  • 입력 2013년 12월 10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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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목난로 공모전
‘나는 난로다’에서 만난 마니아들

겨울이다. 즐거움과 재미에 여러 가지 결이 있다면 중·장년은 그 다양한 결을 즐길 수 있는 지혜를 갖춘 나이다. 스키와 겨울 산행도 나름의 즐거움이 있겠지만 겨울을 따뜻하게 보낼 수 있도록 해주는 ‘화목(火木)난로’를 만드는 재미에 푹 빠진 남자들이 있다. 화목난로란 나무를 땔감으로 해 고효율 난방 효과를 내는 난로를 뜻한다.

6∼8일 전북 완주군 완주군청 옆 옛 잠사시험장에서 열린 ‘나는 난로다’의 화목난로 공모전에서 이들을 만났다. ‘나는 난로다’는 간벌로 버려지는 나무와 공사장에서 나오는 폐목 등을 ‘로컬 에너지’로 활용하자는 취지에서 완주군이 개최하는 전국 최대규모 고효율 화목난로 공모전이다. 이번이 세 번 째 행사. 화목난로를 만들며 활력을 유지하는 이들은 안도현의 시 구절을 연상시키면서 ‘너는 한 번이라도 뜨거운 사람이었느냐’를 묻는 듯 했다.

“아내가 유난히 추위를 많이 타서…”

“겨울 난방비가 걱정이었다. 아내가 유난히 추위를 많이 탔다. 그렇다고 기름보일러를 마구 켤 수도 없다. 기름값은 추위보다 더 아내를 괴롭히는 녀석이기 때문이다. 화목난로와 인연은 그렇게 아내로부터 왔다.”

부산 수영구에서 온 박정원 씨(63)는 ‘나이아가라 난로’로 인기를 끌었다. 불이 타는 모습까지 즐길 수 있도록 난로에 내열유리로 만든 창을 만들었다. 불꽃이 아래쪽으로 내려와 연통을 타고 나가도록 만들었는데 불꽃이 아래쪽으로 내려오는 모습이 마치 나이아가라 폭포를 연상시켜 붙인 이름이라고 했다.

1년 전 겨울 추위를 많이 타는 아내 때문에 만들기 시작했다. 도시가스가 들어오지 않는 집이어서 마음 놓고 기름보일러를 땔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주변에서 나무를 구하기는 쉬웠다. 조선소에서 설계와 검사 업무를 했던 경력 때문에 만들기에는 자신이 있었다. 집 마당은 그날부터 절단기와 용접기, 철판 조각들로 너저분해졌다.

난로는 단번에 완성되지 않았다. 내열유리에 그을음이 끼지 않도록 고안하는 일은 무엇보다 힘들었다. 출품한 난로는 여덟번 시도한 끝에야 완성한 ‘자식 같은 작품’이었다. 1년 동안 만들어 불을 땠다가 제대로 되지 않으면 다시 분해해서 만들고…. 평균적으로 1개월 반마다 1개씩 난로를 만든 셈이니 주말은 말할 것도 없고 아내와 함께 하는 가구점 일이 끝나면 외출도 하지 않고 난로 만들기에만 매달렸다. 내친 김에 불꽃이 화려하게 아래쪽으로 내려가는 기술과 내열유리에 그을음이 끼지 않도록 하는 방법 등 두세가지는 특허 신청까지 했다. 그것도 변리사를 통하지 않고 직접 서류를 작성해 진행 중이다.

친구들은 나이 들어 생고생을 한다며 놀렸다. 박 씨는 “그때마다 속으로만 ‘사랑하는 사람을 위해 뭔가를 만들어 내는 즐거움을 너희들이 모르는 거야’ 하며 웃기만 했다”라고 말했다. 그는 이어 “진짜, 정말, 이 난로 덕분에 활력을 찾게 됐다”고 강조했다. 난로를 만들며 인연을 맺게 된 네이버카페 ‘흙부대 생활기술네트워크’는 인생의 새 동반자 같은 존재가 됐다.

박 씨는 “거실 한구석에 설치한 난로 속에 석쇠를 넣고 구운 고기를 아내와 나눠 먹는 재미가 그렇게 달콤할 수가 없다”고 말한다. 난로 뒤에는 간접적으로 공기를 데울 수 있는 통을 달고 벽에 구멍을 뚫은 뒤 그 공기를 안방까지 공급하는 ‘공사’도 감행했다. 그는 “아내가 더 따뜻하게 겨울을 지낼 수 있기 때문”이라고 설명하며 웃었다. 난로 이름은 ‘나이도 물리친다’는 의미인 ‘나이야 가라’로 읽혔다.

“노후의 에너지 자립을 위한 방편”

“많은 사람이 물어요. 어떻게 경영학을 한 사람이 용접까지 해가며 난로를 만드느냐고. 용접도 공구를 하나 더 다루는 정도라고 생각하고 만들어 보는 게 중요하다고 말하죠.”

지난 대회 때 ‘착한 난로’를 출품해 입상했던 김일환 씨(47)는 이번 대회에서 특별초청 형태로 작품을 전시했다. 난로 이름은 ‘착한 난로 버전 2’.

경남 거제에 살고 있는 김 씨는 공학을 전공하지 않았다. 그러나 난로를 만드는 데 중요한 요소는 전공보다 ‘열정’이었다. 경영학을 전공한 덕분인지 그는 화목난로의 경제성을 눈여겨봤다. 가스비나 기름 가격 등을 생각하면 기존 화석연료의 가격은 계속 오를 수밖에 없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겨울을 따뜻하게 나려면 돈이 적게 드는 방법을 찾는 것이 좋겠다고 생각했다. 조선소에 가면, 외국에서 들여오는 부품을 포장했던 나무상자가 많이 나오는 것을 보고 이 나무들을 땔감으로 활용하기로 했다.

단독주택에서 겨울을 따뜻하게 나려면 기존 기름보일러로는 100만 원을 들여도 모자랄 판이었다. 하지만 화목난로를 완성한 이후로는 돈을 거의 들이지 않고 겨울을 나고 있다. 2년 전에 난로를 만들기로 마음 먹은 뒤 그는 미국, 유럽의 여러 사이트를 돌아다니며 효율이 높은 난로의 구조를 열심히 연구했다. 대부분의 화목난로 제작자들이 그렇듯 재료는 고물상에서 구한 것들이다.고물상에서 두께 12mm짜리 철판을 구해 연소실을 만들었다. 실내에 열기가 오래 머물도록 하기 위해 만든 둥근 통은 액화석유가스(LPG)통을 잘라 만든 것이다. 대부분의 연료가 재활용이지만 세련된 디자인 덕분에 그런 티가 전혀 나지 않는다.

김 씨는 “노후에는 고정비를 줄여야 하는데 이 난로가 그 역할을 톡톡히 하고 있다”며 “튼튼하게 만들어 자식들에게까지 물려 줄 수 있을 것 같다”라고 자랑했다. 그는 화목난로의 정서적 효과에 대해서도 강조했다. “고정비용인 연료비를 쓸 일이 없어졌으니 노후 대비가 된 셈이지만따뜻한 난로가 있으면 자연스럽게 사람들이 그 앞으로 모이게 돼요. 매일 저녁 난로 앞에서 차를 마시고 고구마를 구워 먹으면서 아내와 이야기꽃을 피우게 돼 가정도 더 화목해졌어요.”

“고효율 화목난로 만들기 보급에 재미”

“나무를 천천히 태워야 해요. 일반적인 난로는 나무를 너무 한꺼번에 태우기 때문에 나무 소비가 심하니 고쳐서 써야 해요. 나무를 쌓아서 윗부분부터 불을 붙여 태우는 것만 알아도 훨씬 효율이 올라가지요.”

진일수 씨(50)는 6일 ‘나는 난로다’ 현장 입구에서 화목난로의 기본원리를 열심히 설명하고 있었다. 그는 지난 대회 때 ‘고물딱지 난로’를 출품해 장려상을 받았지만 올해는 작품 출품 대신 ‘강사’와 ‘병원장’으로 활동했다. 화목난로 원리를 설명한 뒤에는 화목난로 수선 현장인 ‘화목난로병원’으로 이동해 기존 저효율 난로를 무료로 수리해 줬다. 식용유통이나 페인트통 같은 깡통을 활용해 효율 높은 난로를 만드는 방법을 현장에서 만들어 내는 시범도 보였다. 울산에 사는 그는 직장이 따로 있지만 퇴근 후나 주말에는 공방에서 아내와 함께 갖가지 물건을 만들거나 고효율 화목난로 만들기 강연을 다닌다. 주로 주변에서 흔히 구할 수 있는 재료를 활용한 장치들이다.

그는 “만드는 것 자체에서 재미를 느낀다”고 말했다. 이런 활동을 자발적으로 하는 이유를 묻자 “그냥 많은 사람들이 추운 겨울을 더 따뜻하게 나게 하고 싶어서…”라고 답하며 씩 웃었다.

진 씨는 설계도를 그려 세련되게 화목난로를 만드는 것보단 못쓰게 된 LPG통, 깡통 등을 활용해 투박하지만 쓸모 있는 물건을 만드는 데 더 재미를 느낀다고 했다. 화목난로도 수입품 등은 500만∼1000만 원에 달하지만 재활용 제품만을 고집한다.

“버려질 물건이 쓸모 있게 되는 것, 생각만 해도 재미있지 않나요?”

김일웅 자유기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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