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의 시민에 “이리와, 패줄테니” 거리의 무법자 활개친 도심시위

  • 동아일보
  • 입력 2013년 12월 9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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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진당 등 7일 서울 차로 점거 합법행진 약속 깨… 경찰 속수무책

“이쪽으로 들어와 봐, 실컷 두들겨 패 줄 테니.”

차도를 점거하고 있던 시위대 속에서 30대로 보이는 한 남성이 어머니뻘 돼 보이는 행인에게 이렇게 고함을 쳤다. 7일 오후 4시 40분 서울 중구 서울시청 을지로별관 앞. 서울역 광장을 출발한 ‘박근혜 정권 규탄 비상시국대회’ 시위대는 을지로1가에서 서울광장 방향 3개 차로를 모두 차지한 채 행진했다. 주말을 맞아 백화점 등을 찾은 행인과 시위대가 뒤섞여 주변 인도도 인파로 넘쳐났다. 길을 걷던 60대로 추정되는 여성이 시위대를 향해 “왜 이렇게 길을 막고 불편을 주는 거예요?”라고 말한 참이었다.

“나도 같은 대한민국 시민이에요. 불편하다는 말도 못 하나요? 이런 게 사상의 자유예요?” 여성이 시위대에 물었다. “씨×!” 일부 시위대가 삿대질을 하며 여성에게 거친 욕설을 퍼부었다. 여성의 남편으로 보이는 사람이 여성을 데리고 무교동 골목 안쪽으로 급히 자리를 피했다.

이날 비상시국대회는 통합진보당, 민주노총 등 25개 단체가 모여 지난달 19일 발족한 시국대회 준비위원회가 개최했다. 이날 시위에는 단체 깃발로 추산하면 200개가량의 단체가 참가했다. 금속노조, 공공운수노조, 전국공무원노동조합 등 민주노총 산하 조직을 포함해 정의당, 평화와통일을여는사람들, 민중연대, 화물연대, 조국통일범민족연합남측본부, 전국농민회총연맹, 전국교직원노동조합 등이다.

오후 4시 46분. 시위대 1만1000여 명(경찰 추산) 중 선두 그룹이 예정된 행진 경로의 끝 지점인 서울광장에서 멈추지 않고 소공로 쪽으로 좌회전했다. 불법 집회로 변질된 것이다. 소공동 웨스틴조선호텔 앞을 지난 시위대 5000여 명은 롯데백화점 앞 도로 전 차로(8개)를 불법 점거했다. 이 중 3000여 명은 “청와대로 가자”는 구호를 외치며 을지로3가를 거쳐 종로3가까지 진출했다. 나머지 2000여 명은 종로1·2가 사이의 골목길을 거쳐 이들과 합류했다.

이날 오후 서울 을지로·종로 일대 도심은 시위대가 차로를 점거한 탓에 몸살을 앓았다. 수십, 수백 명 단위로 행진하는 시위대는 빨간 신호를 무시한 채 도로를 건넜다. 버스를 비롯한 수많은 차가 한 시간 넘게 발이 묶였다. 오후 5시 반 청계1가 대우조선해양 빌딩 앞에서 한 시간째 꼼짝도 못하고 갇힌 143번 버스(정릉∼개포동) 안. 자리가 없어 서 있던 승객들은 한숨을 내쉬며 아픈 다리를 두드렸다. 일부 지친 승객은 버스 운전사에게 “문을 열어 달라”고 부탁한 뒤 도로 한가운데에서 내렸다.
▼ 시위대 4차례 해산명령 불응… 결국 물대포 ▼

주말 불법시위 몸살


버스 승객 홍모 씨(29)는 “시위도 다른 시민들에게 피해를 끼치지 않는 범위 내에서 해야 하는 거 아니냐”며 분통을 터뜨렸다. 택시와 자가용 운전자들도 차 안에서 발을 동동 굴렀다. 시동을 아예 끈 차도 있었다.

오후 5시 14분부터 32분까지 경찰이 4차례에 걸쳐 차량에 달린 확성기로 해산 명령을 내렸지만 시위대는 오히려 경찰들에게 “야, 이 ××야. 나와서 얘기해”라며 욕설을 퍼부었다. 오후 5시 50분경 경찰은 종로3가 국일관 앞에서 시위대가 청와대로 진출하려 하자 물대포를 쐈다. 시위대는 청계광장에서 재집결해 오후 6시 30분에야 해산했다.

이날 시위대는 오후 3시부터 4시까지 서울역 광장에서 집회를 갖고 일몰시까지 한쪽 차로에서만 서울시청 앞 서울광장 쪽으로 가두행진을 하겠다고 사전 신고해 경찰의 허가를 받았다. 7일은 일몰 시간이 오후 5시 13분이어서 이 시간에 시위대들은 가두행진을 멈추고 해산했어야 했다. 집회와 시위에 관한 법률에 따르면 일몰 후에는 허가받은 집회는 허용되지만 가두행진 등 옥외 시위는 할 수 없도록 돼 있다.

주말 도심 교통을 마비시키는 불법 시위 집회가 수년째 거의 매주 되풀이되고 있지만 경찰은 무기력하고 속수무책인 모습이다. 시위대가 갑작스레 도로로 뛰어들어 점거하는 게 고질적으로 되풀이되고 있지만 경찰은 이를 예방하려는 적극적인 대책을 세우지 않았다.

시민 박모 씨(41)는 “시위대가 차로를 막고 시민들의 교통을 방해하면 미국이나 프랑스처럼 경찰이 공권력을 발휘해 엄정하게 대처해야 하지 않으냐”며 “지금이 군사독재 시절도 아니고 합법적인 집회와 시위의 자유가 보장돼 있는데 도심을 마비시키는 이런 불법 집회를 언제까지 그대로 놔 둬야 하느냐”고 분통을 터뜨렸다.

백연상 baek@donga.com·곽도영·조종엽 기자
#박근혜 정권 규탄 비상시국대회#시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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