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전우택]‘성적등수 폐지’ 延大 의대의 작은 혁명

  • 동아일보
  • 입력 2013년 12월 9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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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우택 연세대 의대 교수·정신과·의학교육학과
전우택 연세대 의대 교수·정신과·의학교육학과
연세대 의대가 내년부터 학생들의 전체 학업평가를 학점과 등수가 아닌 통과, 비통과(pass, non-pass) 제도로 바꾸기로 하였다. 그리고 학생들의 연구 능력과 사회활동 등을 종합적으로 평가하는 시스템을 도입하기로 하였다. 그동안은 의대 졸업 후 자신들이 원하는 전문 진료과를 선택하는 데 있어 오직 학교 성적과 등수가 절대적 기준이었기에, 단 1점, 단 한 등수를 높이는 데 목숨을 걸고 있는 의대생들에게 이것은 거대한 혁명적 변화를 의미한다. 연세대 의대는 왜 이런 결정을 내린 걸까?

첫째, 학업 내용을 더 많이 아는 경쟁을 통해서는 진정한 국제적 경쟁력을 가질 수 없기 때문이다. 현재 우리나라에서 의대에 입학하는 학생들은 학업 능력적인 면에서 이미 최고 수준임이 증명된 학생들이다. 이런 학생에게 또다시 학업 경쟁을 통하여 더 많이 외우는 경쟁을 시키는 것은 의미가 없다. 오히려 새로운 의학 지식을 창출하는 연구 능력과 국제보건의료 영역에서의 정책 개발 능력, 고통 받는 사람들과 대화하며 그들 곁에 함께 있을 수 있는 능력의 개발이 중요하다. 그동안 이루어진 학업 성적을 위한 무한경쟁 시스템은 학생들의 이런 진정한 능력 개발에 오히려 장애가 되었다고 판단하였다.

둘째, 개인 간 경쟁이 아닌, 공동의 협동 능력을 키워야 하기 때문이다. 대학수학능력시험에서 만점에 가까운 성적을 받아야만 의대에 들어올 수 있기에, 많은 의대생들은 타인에 대한 배려와 관심, 그리고 다른 사람들과 함께 공동 작업을 하여 공동의 목표를 이룬다는 점에 있어서 원천적인 한계를 가지고 있는 경우가 많다. 그런데 이것이 수많은 직종의 사람들과 협력을 하여야 하는 병원 상황에서, 그리고 큰 연구 결과를 만들어 내기 위하여 많은 연구자들이 공동으로 협력하여야 하는 실험실 상황에서 근본적인 장애가 된다. 새로운 학생 평가 시스템은 학생 간의 경쟁을 유발하지 않고 서로가 함께 도우며 노력하여 공동의 학습 목표에 도달하도록 유도한다. 그를 위하여 학생들은 새롭게 구성되는 ‘학습공동체’에 들어가 함께 공부하며 자신들의 진로를 탐색하게 된다. 그들 평생에 새로운 경험을 하게 되는 것이다. 연세대 의대 학생 평가에 대한 이번 결정은 한 대학의 작은 변화이다. 그러나 21세기 한국 사회가 지향하여야 하는 본질적 변화의 방향을 가늠해 볼 수 있는 큰 의미를 가지기 바란다.

전우택 연세대 의대 교수·정신과·의학교육학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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