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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파원 칼럼/박현진]디트로이트에서 아테네를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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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파원 칼럼/박현진]디트로이트에서 아테네를 보다

동아일보입력 2013-12-09 03:00수정 2013-12-09 03: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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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현진 뉴욕 특파원
미국 연방 파산법원이 3일 자동차산업의 메카이자 한때 미국 4위의 도시였던 디트로이트의 파산보호신청을 승인했다. 지방자치단체로서는 미 최대 규모의 파산신청이다. 이 결정을 전후해 이 도시는 연일 극심한 시위에 시달리고 있다. ‘전면전을 선포한다’는 피켓 구호는 온건한 표현에 속한다. 거리로 나선 사람들은 대부분 전현직 공무원이다. 파산신청으로 공무원연금 수령액이 크게 줄기 때문이다. 7월 하급심을 맡았던 미시간 주 법원은 주 헌법에 의거해 파산보호 신청안에 담긴 연금 삭감을 수용할 수 없다며 이를 기각했다. 그런데 5개월 만에 연방법원은 이를 뒤집었다.

미 언론에 따르면 지금까지 공적연금은 미국에서 한 번도 삭감된 적이 없다. 디트로이트 비상재정관리관인 케빈 오르 변호사는 이미 올해 초 디트로이트 3만6000여 명의 은퇴 공무원들에게 연금의 20%만 받을 것을 요구했다. 현 추세로 보면 연금 삭감을 관철할 가능성이 높다. 180억 달러(약 19조440억 원)의 부채 가운데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는 것이 퇴직 공무원에게 지급해야 할 공적연금 채무 35억 달러다. 디트로이트의 파산보호신청이 받아들여지던 날 일리노이 주 의회도 결단을 내렸다. ‘제2의 디트로이트’가 될 수도 있는 시카고 시 등의 파산을 막기 위한 예방조치였다. 공적연금의 향후 지급 금액을 줄여나가는 것이 주요 내용이다.

미국의 공무원들은 두 사례를 보면서 잔뜩 긴장하고 있다. 반면 지자체는 재정 악화 해결을 위해 ‘먼저 총대를 멘’ 디트로이트와 미시간 주의 결정을 내심 반기고 있다. 미국기업연구소(AEI)에 따르면 시 및 주 정부가 공적연금으로 지급해야 할 금액 중 부족한 금액이 4조 달러(약 4232조 원)에 이른다. 이는 미 전체 지자체의 적자 금액보다 큰 수치라고 AEI는 밝혔다.


공적연금이 ‘애물단지’로 자리 잡게 된 이면에는 도덕적 해이(모럴해저드)도 한 요인이 되고 있음이 디트로이트 파산에서도 드러났다. 10월 공개된 시 감사보고서에 따르면 경기침체로 공무원연금의 수익률은 급감하는데도 7.9%의 고정수익률을 보장했다. 심지어 호황기에는 예정수익률을 초과해 보너스 연금을 지급하기도 했다. 2012년 말까지 직전 12년 동안 연금 순자산의 3분의 1인 20억5000만 달러를 까먹는 동안 12억2000만 달러를 이자로 지급했다. 연금 운용에서 마이너스를 기록하자 약속한 수익률을 재정에서 보전해 지급한 것이다. 앤드루 빅스 AEI 선임연구원은 “민간 퇴직연금 펀드에서는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라고 비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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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트로이트의 시위를 보면서 몇 년간 그리스에서 긴축을 반대해 벌어졌던 공무원 등 공공기관 종사자들의 시위가 연상됐다. 그리스도 정부 곳간이 비어가는 것을 알면서도 계속 연금 개혁을 미뤄왔다. 연금 수령자들은 더이상 뒤로 물러설 수 없는 상황이 되자 더 많은 것을 잃었다. 디트로이트 사례도 예외는 아니다. 정부와 지자체, 그리고 거기서 인생을 바쳤던 퇴직 공무원들의 상생(相生)을 위해서라도 빨리 결단을 내려 묘안을 찾는 것이 지혜로운 길이다. 전문가들은 불입 금액을 늘리고 향후 연금 지급액을 줄이는 연금 개혁을 유일한 대안으로 내놓고 있다.

이명박 정부 5년간 7조7000억 원이 투입됐고 박근혜 정부에서 15조 원을 공무원 연금 적자를 메우는데 써야 할 한국도 ‘강 건너 불’이 아니다. ‘제2의 아테네’ ‘또 다른 디트로이트’가 되지 않기 위해선 말이다.

박현진 뉴욕 특파원 witness@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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