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의 향기]장래 직업? 아버지-어머니처럼 살겠습니다

  • 동아일보
  • 입력 2013년 12월 7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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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업을 잇는 청년들/백창화 장혜원 정은영 지음/256쪽·1만5000원/남해의봄날
대장장이 등 가업이은 6가족 인터뷰

서울 송파구 떡집 ‘시루가’에서 아버지 김순배 씨와 큰딸 진희 씨가 떡 만들 준비를 하고 있다. 부모는 딸들의 미래를 생각하며 떡집을 창업했고 딸들은 새벽부터 고생하는 부모를 돕다가 적성을 발견했다. 남해의봄날 제공
서울 송파구 떡집 ‘시루가’에서 아버지 김순배 씨와 큰딸 진희 씨가 떡 만들 준비를 하고 있다. 부모는 딸들의 미래를 생각하며 떡집을 창업했고 딸들은 새벽부터 고생하는 부모를 돕다가 적성을 발견했다. 남해의봄날 제공
지난달 8일 인천에서 50대 기러기 아빠가 자살을 택했다. 4년 전 아내와 중고등학생 두 아들을 유학 보내고 외로움을 자주 호소했다고 한다. 당시 유서에는 가족에 대한 미안함과 함께 아빠처럼 살지 말란 당부도 덧붙였단다.

“아버지처럼 살지 마라.” 한국 보통 아버지들이 한 번 이상 내뱉었을 말. 혹시나 해서 인터넷에 저 말을 검색해 보니 저마다 사연이 쏟아진다. 아버지들은 마치 본능인 양 자식들은 자기와 달리 좋은 대학을 나와 번듯한 직장에 다니길 소원한다. 가족을 찢어 외국에 보내서라도 성공하길 바란다.

책은 우리에게 다른 삶을 보여 준다. 부제는 ‘닮고 싶은 삶, 부모와 함께 걷기’다. 가업을 이어받은 대장장이, 시계수리공, 장돌림, 농부, 떡장수, 두석장 가족을 만나 심층 인터뷰한 내용을 담았다.

충북 충주시 엄정면 ‘엄정 임경옥 족발’ 대표 소성현 씨(31)는 전국 장터를 돌며 족발을 파는 13년 차 장돌림이다. 대학을 졸업한 젊은 장돌림이라 ‘학사 노점상’으로 불리는 장터 명물이다.

2000년 그의 어머니 임경옥 씨는 장터 노점을 접고 족발 장사를 시작했다. 어머니를 돕던 아들은 힘든 하루를 마감하며 소주 한 병을 비워야 잠이 드는 어머니의 고된 삶을 보면서 애틋함과 자랑스러움을 느꼈다. 아들도 어머니를 따라 자신도 장터에서 인생을 시작하겠다고 결심했다. “어머니는 저희에게 남들 눈에 보잘것없어 보이는 하찮은 일을 하면서도 부끄러워하지 않는 법을 가르쳐 주셨습니다.”

장터에서 잡화를 팔던 아버지는 반대했다. “부모가 고생하는 이유는 가난과 멸시를 대물림하지 않기 위해서다. 대학을 졸업하고 넥타이 매고 펜대 굴리는 직업을 가졌으면 하는 간절한 바람이 있어서인데, 어릴 때부터 부모 잘못 만나 장터를 떠돌아다닌 것만으로도 가슴 아프다”고 했다. 하지만 족발은 잘 팔렸다. 아버지가 하던 일이 망해 쫓기듯 내려온 고향에서 번듯한 가게도 열었다. 몇 해 전 뇌출혈로 숨진 어머니에 이어 소 씨가 대표가 되어 어머니 이름을 건 족발가게를 프랜차이즈로 키울 꿈을 꾸고 있다.

소 씨는 장사 노하우만 물려받지는 않았다. 어머니는 처음 가게를 열면서 지역 학생들에게 매달 장학금을 줬다. 가난한 부모의 아픔은 본인이 가장 잘 안다며 도움이 되고 싶어 했다. 아들도 장학금 사업을 이어 가며 시골에 작은 도서관을 세울 계획을 갖고 있다.

아버지의 권위가 경제력에 좌우되는 가족 해체 시대에 잃어 가는 가족의 가치를 다시 짚어 보고자 책을 썼다고 한다. 책에서 만난 부모들은 자식들에게 기술 성실 끈기 땀 정직 같은 유산을 아낌없이 물려줬다. 자식들은 인터넷을 이용해 유통 경로를 개척하고 사람들의 지갑을 열게 하는 마케팅 기법을 고안하며 보답했다. 가끔 부모가 생업에서 벗어날 여유도 줬다. 부모님과 함께 떡집을 운영하는 김진희 씨(23)의 말이다.

“아직 어린 나이에 부모님 아래서 사업을 한다는 건 커다란 축복입니다. 누구보다 나를 믿어 주고 나의 성장을 지지하는 부모님을 통해 내가 꿈꾸는 모든 것들을 용기 있게 시도하고 모험할 수 있으니까요. 설령 실수하거나 실패하더라도 비난보다 격려하는 가족들과 함께라면 언제까지나 자신 있게 두려움 없이 나의 길을 갈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책은 한국출판문화산업진흥원이 처음 시행한 우수출판기획안 지원 사업 대상 수상작이다. 심사평은 시대가 요구하는 주제를 포착하고 주제에 대한 진정성을 담았기에 선정됐다고 밝힌다. 저자는 백창화 작가, 정은영 남해의봄날 대표, 장혜원 편집자가 함께 썼다. 이들은 2년여 동안 밀착 취재를 통해 10여 가족을 만났고 그중에서 진정 가업을 이을 각오가 선 가족만 추려 책에 담았다.

박훈상 기자 tigermask@donga.com
#가업을 잇는 청년들#부모#가업#직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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