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아광장/정지은]“아버지 뭐 하시노?”

  • 동아일보
  • 입력 2013년 12월 7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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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지은 사회평론가
정지은 사회평론가
친구들과 냉면을 먹었다. 그 냉면집은 번호표는 기본이고 주차 요원이 따로 있을 정도로 언제나 사람들로 가득한 곳이었다. 북적이는 실내에 자리를 잡고 앉자마자 음식이 나왔고, 수다가 시작되었다.

“역시 냉면은 많이 기다리지 않아도 돼서 참 좋아. 그러게, 나는 나중에 혹시 창업하면 냉면집 차릴 거야. 갑자기 왜? 내가 생각을 해봤는데 일단 메뉴가 심플하고 내놔야 하는 반찬이 별로 없어. 게다가 수육이나 녹두전처럼 꼭 하나씩 더 시키게 되는 메뉴도 있어서 끼워 팔기도 좋고, 사리 추가해도 돈 내야 하잖아? 육수랑 면만 신경 쓰면 되고 반찬도 백반처럼 이것저것 안 차려도 되니까 손도 덜 가고, 최고지?”

한 친구가 벌써 냉면집 사장이라도 된 것처럼 줄줄이 좋은 점을 읊어대자 앞자리 친구가 말을 받는다. “냉면은 계절을 너무 많이 타잖아. 설렁탕 집도 괜찮대. 반찬은 김치 두 종류만 내놓으면 되고, 메뉴도 많지 않고 얼마나 편하냐? 아서라, 식당은 아무나 하니? 그리고 우리야 아무것도 모르니까 편하게 얘기하는 거지, 장사가 그렇게 쉬울 리가 없잖아.”

충고에 상관없이 희망사항은 이어졌다.

“그래도 상상은 할 수 있잖아? 난 종류는 상관없으니 괜찮은 맛집 하나만 물려받을 수 있으면 소원이 없겠다. 프랜차이즈보다 훨씬 낫잖아. 3년 동안 설거지만 하더라도 당장 회사 때려치우고 나와 일손 거들 텐데 말이야. 하긴, 요새 조금이라도 유명해졌거나 오래된 집은 다들 아들딸한테 물려주잖아. 자식들도 회사 그만두고 나와서 돕거나, 아예 전공을 그쪽으로 해서 공부하는 경우도 많대. 재벌도 아니니 물려준다고 욕먹지도 않고, 가업을 잇는 거니까 말하기도 좋고…. 일본에 오래된 가게들이 많은 것도 그들이 특별히 장인정신이 있어서가 아니라, 우리보다 먼저 경제 불황을 겪으면서 취직 못 하는 사람이 늘고, 그 사람들이 부모 가게 물려받으면서 그렇게 된 거라잖아.”

“양념 배합은 특급 비밀이라고 며느리도 모른다지만 물려받는 며느리는 알걸? 요즘은 하나로는 모자라서 자식들한테 직영점으로 하나씩 내준다잖아. 그것도 사이 안 좋아지면 서로 원조니 뭐니 하면서 재판까지 간다더라. 그러고 보니 좀 오래된 음식점들 중에 프랜차이즈 안 하고 직영점 내는 데가 많던데 그게 다 자식들 위한 거였어? 그렇지, 가맹점 많아지면 경쟁력 떨어지잖아. 그것뿐이겠니? 요새 결혼 안 한 자식 있는 집주인이 가장 무섭고, 취직 못한 자식 있는 건물주가 제일 무섭다잖아. 하긴 ‘막내딸이 가게 한번 차려 보겠다는데 어쩌겠냐, 이해해 달라’ 그러면 할 말 없는 거지 어쩌겠어.”

냉면과 녹두전, 수육을 비우고 나서도 이야기는 계속됐다.

“내 동생 대학 졸업반이잖아. 요새는 인턴도 못 가서 난리라 ‘금턴’(금처럼 소중한 인턴)이라고 부르던데 그마저도 여기저기 연줄 타고 들어온 낙하산 인턴들 차지라는 거야. 얘도 답답하니까 좋은 얘기라도 들어 보겠다고 ‘멘토 콘서트’라는 행사에 갔는데 젊은 프랜차이즈 사장이 나와서 ‘토익 점수 등 스펙은 기업을 향한 배려다, 세상은 1등만 기억한다, 좋은 학교 간 것도 능력이다, 나는 이런 세상이 좋다’ 그랬다는 거야. 세상에, 그럼 잘난 부모 만나서 좋은 교육 받고 잘사는 것도 능력인 거야?”

“그럼, 요새 용돈 받는 직장인이 얼마나 많은데? 취직해 봤자 본인 월급은 얼마 안 되니까 적금 넣고 부모한테 용돈 받아서 생활하는 거지. 야, 내 친구는 결혼한 지 한참 됐는데도 손 벌리고 살아. 작은 회사 다녀서 그런지 맞벌이하는데도 매달 집에서 도움 안 받으면 적자라더라.”

냉면집에서의 대화는 커피숍으로 옮겨가 다음과 같이 끝났다.

“책에서 읽었는데 동물은 물려주는 게 없대. 사람만 그런다는 거지. 그렇지, 우리나라는 특히 더 심한 것 같아. 그러니까 ‘젊어서 고생은 사서도 한다’, ‘고생 끝에 낙이 있다’ 같은 얘기는 이제 끝이야. 박명수 어록에도 나오잖아. ‘어려운 길은 길이 아니다’, ‘고생 끝에 골병난다’. 웃어넘길 일이 아니라니까. 아무리 화려한 스펙이 있다 해도, 핏줄만 한 스펙이 어디 있겠어, 안 그래?”

정지은 사회평론가
#가업#부모#용돈#직장인#월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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