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아광장/최종찬]기업 임금 비용 올리면서 고용 늘릴 수 있나

  • 동아일보
  • 입력 2013년 12월 6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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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민주화-복지 명분 아래 임금 늘리는 법안 줄줄이 도입
기업들 수조원대 추가 부담… 근로시간 단축-정년연장땐
임금도 함께 조정돼야 일자리 크게 늘릴 수 있어

최종찬 객원논설위원 전 건설교통부 장관
최종찬 객원논설위원 전 건설교통부 장관
최근 경제정책의 최대 과제는 고용 증대라고 생각한다. 대학을 졸업하고 취직 못한 젊은이가 많다. 대기업, 공기업, 공무원 취직시험은 경쟁률이 100 대 1에 육박한다. 과거에 비해 경제성장률이 떨어진 데다 성장에 따른 고용 유발도 줄었기 때문이다. 기업은 인건비 부담이 커지고 불황 시 고용 조정도 어려워 고용을 꺼린다. 따라서 자동화를 촉진해 가급적 사람을 덜 쓰거나 노동집약적인 업종은 임금이 싼 동남아 등으로 공장을 옮기고 있다. 정부도 고용 문제의 심각성을 인식해 경제성장률보다는 고용률을 경제정책의 최우선 과제로 선정해 2017년 고용률을 70%로 끌어올리겠다고 약속했다.

어떻게 고용을 늘릴 것인가. 공무원이나 공기업의 증원은 그 비용이 납세자에게서 나오거나 아니면 다른 용도의 사업을 줄여서 조달한다. 다른 사업 예산을 전용하는 경우에는 그 부문의 고용은 줄어들 것이므로 공공 부문 전체의 고용효과는 비슷하다.

세금을 늘려 고용비용을 조달한다면 민간이 사용할 수 있는 재원은 줄어들고 그만큼 민간 고용도 줄게 된다. 일반적으로 공공 부문은 민간 부문에 비해 효율성이 떨어진다고 보면 공공 부문의 고용 증가는 일자리를 늘리는 데 좋은 방법이 아니다. 결국은 기업 활동이 좋아져 고용을 늘리는 것이 최선이다. 기업은 이익이 나면 왕성하게 투자하고 고용도 늘린다. 인건비 부담이 늘어나 기업 여건이 어려워지면 고용을 줄이게 된다.

최근 동향을 보면 경제민주화와 복지 증대라는 명분 아래 임금 비용을 오히려 늘리는 법안과 정책을 줄줄이 도입하고 있다. 예컨대 과거에는 퇴직금 등의 기준인 통상임금에 포함되지 않던 각종 수당, 상여금 등을 통상임금에 포함시키라는 판결이 나왔다. 대법원의 최종 판결이 남아 있긴 하지만 각종 수당이 통상임금에 새로 들어가면 기업은 수조 원의 임금을 추가로 부담해야 한다. 이를 받게 되는 근로자들이야 좋아하겠지만 기업은 이들 자금을 어떻게 조달할 것인가.

최근 공휴일이 토·일요일과 겹치면 추가로 휴무하는 대체휴일제 도입도 늘어나고 있다. 설날(구정)에 이어 어린이날도 대체휴일 대상이 됐다. 기업의 정년을 늘리는 제도도 마찬가지다. 고령화에 따라 정년 연장은 불가피하다. 그러나 정년 연장과 함께 임금제도도 바꿔야 한다. 연공서열식 임금제도의 개선 없이 정년만 연장하면 인건비 부담이 커져 젊은 신입사원의 고용은 줄어들 수밖에 없다.

근로시간 단축도 인건비 부담을 높일 것이다. 근로자의 건강을 위해 근로시간 단축은 필요하다. 그러나 근로시간이 단축되면 임금도 조정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임금 비용만 그만큼 올라가게 된다. 국가가 이 비용을 부담할 것인가. 저출산을 막기 위해 육아휴가 확대도 필요하지만 이 역시 기업의 부담이 된다.

이상 몇 가지 사례를 살펴봤다. 모든 시책이 나름대로 명분이 있다. 그러나 이런 시책들을 한꺼번에 도입할 경우 과연 기업이 그 부담을 감당할 수 있을 것인가. 기업의 수익률은 날로 나빠지고 있다. 2012년 매출액 대비 순이익이 2008년 이후 최저를 기록했다.

최근 세계적인 금융위기 속에서 독일이 낮은 실업률 등으로 전 세계로부터 부러움을 사고 있다. 이는 2003년 당시 사민당의 게르하르트 슈뢰더 총리 시절 노동시장 유연성 제고와 복지제도 축소 등 개혁에 힘입은 바 크다. 독일은 당시 개혁으로 임금 비용이 인근 국가에 비해 적게 올라 기업의 경쟁력이 커졌다. 즉, 2000년을 100으로 할 때에 2012년 단위당 노동비용이 프랑스 138, 이탈리아 134, 영국 137로 오른 데 비해 독일은 106에 불과했다. 결국 독일 근로자는 임금을 양보한 대신 고용을 선택한 셈이다. 임금 상승은 근로자의 소득을 올리고 소비를 증대시키는 면에서 바람직하다. 그러나 대중영합적인 법안이나 규제로 근로자 생활이 나아지는 것은 아니다.

과거 박정희 대통령은 기업 여건을 개선하기 위해 긴급조치 등으로 노동활동을 일부 억제하기도 했다. 그러나 그때의 기업은 높은 성장을 하면서 고용과 임금이 빠르게 상승해 근로자의 소득도 크게 나아졌다. 지금처럼 기업여건이 어려운 상황에서 정부의 규제로 임금 비용을 높이는 것은 오히려 고용기회를 줄여 근로자를 더욱 어렵게 만든다. 기업하기 좋은 여건을 만드는 것이 가장 확실한 고용 증대 대책이다.

최종찬 객원논설위원 전 건설교통부 장관 jcchoijy@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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