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리-미스터리 소설시장, 日流에 맥 못추는 한국 작가들

  • 동아일보
  • 입력 2013년 12월 6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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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르소설 역사 긴 일본… 하위 장르까지 다양하게 발달
독자 입맛에 맞는 작품 쏟아내
한국문단, 문학성 인정에 인색… 젊은 작가들 순수문학에만 몰려
작품수 적고 발표매체도 마땅찮아

《 영국 매클리호스 출판사의 폴 앵글스 편집장은 지난달 28일 주한 영국문화원에서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한국 문학 작품의 세계 진출을 위한 방법으로 “한국 작가도 추리소설 같은 장르 소설 분야를 공략하는 방법을 고민해 볼 만하다”고 조언했다. 하지만 그가 모르는 사실이 있다. 한국의 추리·미스터리 소설 시장은 현재 일본 작가들의 독무대라는 점이다. ‘화차’ ‘모방범’의 작가 미야베 미유키나 ‘용의자X의 헌신’ ‘백야행’을 쓴 히가시노 게이고 같은 작가의 새 책이 두세 달에 한 권꼴로 나온다. 이들 책의 판매 부수는 장르 소설의 ‘대박’ 기준인 1만 권을 훌쩍 넘는다. 》

이들뿐 아니다. 요시다 슈이치, 하라 료, 미나토 가나에, 히라노 게이치로, 온다 리쿠 등 탄탄한 독자층을 가진 일본 작가도 적지 않다. 장선정 김영사 비채 편집장은 “국내 출판시장에서 일본 작가의 미스터리·추리 소설의 인기는 붐 단계를 넘어 과열 조짐까지 보이고 있다”고 말했다.

반면 국내 작가의 미스터리 작품은 일본 작가들의 기세에 눌려 맥을 못 추고 있다. 올해 출간된 작품 중에서는 소설 ‘건축무한육면각체의 비밀’을 쓴 장용민 작가의 ‘궁극의 아이’(엘릭시르) 정도가 독자의 호평과 함께 시장에서 성공을 거둔 사례로 꼽힌다.

SF나 판타지 등 다른 장르 소설에서는 강세를 보이는 국내 작가들이 유독 미스터리 장르에서 일본 작가에 비해 약세를 보이는 이유는 뭘까? 출판계에서는 두 나라 미스터리 장르 생태계의 다양성 차이로 설명한다.

장 편집장은 “추리·미스터리 장르의 역사가 긴 일본은 사회파 미스터리, 학원물 미스터리, 스릴러 미스터리 등 다양한 하위 장르가 발달해 독자의 입맛에 맞는 다양한 작품이 쏟아지고 이들 작품이 드라마나 영화로 제작되는 사례도 많아 새 독자층이 계속 유입된다”며 “수작(秀作)이 계속 나올 수밖에 없는 구조”라고 말했다. 반면 한국에선 발표 작품 수도 적은 데다 발표할 매체도 마땅치 않다는 것이다.

문단에서 미스터리나 추리 장르가 차지하는 위상도 예비 작가군 육성에 불리하다는 얘기가 나온다. 장 작가는 “자기 작품에 미스터리적 기법을 쓰는 정유정, 김영하 같은 일부 작가를 제외하면 문단에서 장르 소설의 문학성을 인정해 주지 않는 분위기 때문에 재능 있는 젊은 작가들이 순수 문학으로만 몰린다”며 “미스터리물을 애들이나 보는 탐정물 정도로 생각하는 인식이 최대 걸림돌”이라고 말했다.

나아가 독자들의 높아진 눈높이를 만족시키기도 쉽지 않다고 지적한다. 장 작가는 “일본 작품들로 안목이 높아진 국내 독자의 안목에서 한 발짝 더 나간 작품을 내놓을 엄두가 안 나 발표 작품이 줄어드는 악순환 구조를 깨는 게 관건”이라고 말했다.

그렇다면 공상과학이나 로맨스, 판타지 장르에서 국내 작가들이 강세를 보이는 비결은 어떻게 설명해야 할까?

임지호 문학동네 엘릭시르 편집장은 “판타지나 로맨스는 장르 코드가 비교적 엄격하지 않고 사전 취재에 드는 품도 적어 진입 장벽이 낮은 반면 미스터리는 장르 코드에 대한 분석이나 자료 조사가 많이 필요해 진입 장벽이 높기 때문인 것 같다”고 말했다.

우정렬 기자 passio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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