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형모의 아이 러브 스테이지] 비극의 ‘형제복지원 사건’ 희극적 웃음으로 재해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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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3년 12월 6일 07시 00분


1987년 한 복지원에서 35명이 탈출하는 과정에서 1명이 사망하면서 세상에 알려진 일명 ‘부산 형제복지원 사건’을 다룬 연극 ‘해피투게더’. 사진제공|㈜다리
1987년 한 복지원에서 35명이 탈출하는 과정에서 1명이 사망하면서 세상에 알려진 일명 ‘부산 형제복지원 사건’을 다룬 연극 ‘해피투게더’. 사진제공|㈜다리
■ 연극 ‘해피투게더’

군데군데 연극적 장치로 세련된 연출
열정적인 퍼포먼스로 지루할 틈 없어


어둡고 불행한 기억. 1980년대 후반 학번인 기자의 뇌리에도 생생하게 박혀 있는 사건 하나. 부산 형제복지원 사건. 1987년 복지원에 갇혀있던 35명이 탈출을 하고 그 과정에서 1명이 사망하면서 비로소 세상에 처음 알려졌던 사건이다. 국가가 국민의 세금으로 지원하는 복지시설에 억울하게 갇혀 굶주림과 추위, 폭력에 시달린 사람들의 이야기다. 12년 동안 500여명 이상이 사망하였고, 심지어 희생자들의 시신들이 매매되었다는 사실로 인해 당시 사회는 엄청난 충격에 빠졌다. 하지만 복지원의 원장인 가해자는 2년 6개월형이라는 가벼운 처벌로 면죄부를 받았고 그 후 사건은 잊혀졌다. 1988년, 올림픽을 한 해 앞두고.

서울 대학로 아트센터K 동그라미극장에서 공연 중인 연극 ‘해피투게더’는 어느 한 남자의 긴(정말 길다) 독백으로 시작된다. 그는 사회의 정의와 질서, 그리고 신의 축복을 치열하게 설명한다. 하루하루 성실한 삶을 살아가는 사람들이 안전하고 행복하게 살 수 없는 세상을 탓한다. 관객들은 그의 말에 고개를 주억거리며 동의를 표한다.

하지만 그의 독백은 서서히 진짜 얼굴을 드러낸다. 부랑자, 노숙인, 거지를 ‘사회의 쓰레기’로 칭하며 이들을 위해 공짜로 먹여주고, 재워주고, 입혀준 것이 무슨 잘못이냐고 소리를 높인다. 시로부터 지원받은 연간 20억원(당시)은 3000여 명이 1년간 먹고 입는 데만도 빠듯하다고 주장한다. 비록 ‘약간’의 빼돌림이 있었다고 해도 그것은 ‘설거지 하다가 접시 몇 장 깨진 것’이라는 논리를 편다. 그리고 돌아선다. 하나님을 칭송하던 그의 입에서 욕설이 튀어나오고, 기도를 위해 모았던 손에서는 몽둥이가 망나니 춤을 춘다.

납덩이처럼 마음을 무겁게 짓누르는 이야기지만 극은 현실적이면서도 위트를 잃지 않는 대사, 연출가 이수인이 곳곳에 박아놓은 연극적 아이디어와 장치로 인해 세련되고 지적인 무대로 형상화되었다. 복지원 원장의 이중적 얼굴과 궤변, 수용자 배우들의 능숙한 연기와 땀이 튀는 열정적인 퍼포먼스는 관객들의 1시간 40분을 눈 깜짝할 사이에 가져가버린다. 두 명의 여배우를 해설자 역으로 기용한 아이디어도 참신하다.

연출가는 관객에게 묻는다. “비극 속에서 불편한 진실을 왜곡하지 않고, 있는 그대로 보고 있는가” 여기에 질문 하나를 더 얹고 싶다. “애써 보지 않고도 우리는 과연 ‘해피투게더’할 수 있을까.”

양형모 기자 ranbi@donga.com 트위터 @ranbi36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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