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일성 사망·성수대교 붕괴…터질 것은 다 터졌던 1994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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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3년 12월 6일 07시 00분


1994년 7월8일 북한 김일성 주석이 사망했고(위) 그해 10월21일 아침 서울 성수대교는 상판이 무너지면서 비극의 사고현장으로 기억되고 있다. 스포츠동아DB
1994년 7월8일 북한 김일성 주석이 사망했고(위) 그해 10월21일 아침 서울 성수대교는 상판이 무너지면서 비극의 사고현장으로 기억되고 있다. 스포츠동아DB
■ 당시의 세상풍경

대구·밀양 39·4도, 서울 38·4도.

“기상관측 이래 최고 무더위”가 기승을 부리던 7월의 어느 토요일. TV에 ‘김일성 주석 사망’이라는 굵은 자막이 뜨고 뉴스속보가 전해진다. 서울 시내엔 호외가 뿌려진다. 미국월드컵 독일전에서 홍명보의 대포알 중거리슛의 짜릿한 여운이 채 가시지 않던 어느 주말 아침은 급격히 뒤숭숭해진다.

서울 명동, 대학로, 압구정동 등 X세대가 즐겨 찾는 거리엔 활기가 넘친다. ‘길보드차트’에선 김건모의 ‘핑계’가 무한반복 흘러나온다. 탁자마다 전화기가 놓인 시내 카페에선 마로니에의 ‘칵테일사랑’, 공일오비의 ‘신인류의 사랑’이 흥겹게 흐르고, ‘빨간 말보로’ 담배를 피우던 미시족들은 무선호출기 ‘삐삐’의 음성메시지를 들으며 미소 짓는다.

1994년. 대한민국의 풍경이다. 유난히 대형 사건사고가 많았고, 대중문화 콘텐츠는 풍부했다. “12·12사태는 군사반란”이라는 역사적 심판도 있었고, “주사파 뒤에 사노맹(남한사회주의노동자동맹)이 있고 그 뒤에 북한의 사노청(사회주의청년동맹)과 김정일이 있다”는 박홍 서강대 총장의 말은 때 아닌 사상논쟁을 일으켰다.

거액의 재산을 노려 부모를 살해한 박한상, 사회에 대한 증오심으로 무고한 시민들을 잔혹하게 납치살해한 지존파, 훔친 택시로 여성들을 납치·성폭행한 뒤 살해한 온보현 사건 등은 온 국민을 경악하게 했다. 성수대교가 무너져 32명이 사망하고 17명이 부상을 입은 사고, ‘장교길들이기’로 불린 육군 제53사단 병사들의 조직적인 하극상 실태(장병 21명 실형), 인천북구청과 부천시 공무원들의 세무 비리로 78명이 구속된 사건 등은 분노를 안겼다. 서울 아현동 도시가스 폭발사건, 무주리조트의 덕유산 국립공원 생태계 파괴 논란, 김포매립지 부실공사, 낙동강 식수 오염 문제는 국민들을 불안하게 했다. 그야말로 ‘터질 것은 다 터진 한 해’(동아일보 1994년 12월22일자 칼럼)라고 작가 조성기는 한탄했다.

국민들은 한양대를 중퇴하고 미국 메이저리그 LA다저스에 입단한 박찬호에 열광했다. 서태지와 아이들은 세대를 아우르는 문화의 아이콘으로 자리 잡았고, 농구장은 ‘오빠부대’의 함성으로 가득 찼다. 황영조는 보스턴마라톤대회에서 한국 신기록을 수립했고, 태권도가 2000년 시드니 올림픽 정식종목으로 채택됐다.

다양한 문화콘텐츠도 대중을 사로잡았다. 한국영화 ‘게임의 법칙’ ‘장미빛 인생’ ‘헐리우드 키드의 생애’ ‘태백산맥’ 등이 주목받았다. ‘데미지’ ‘쇼생크탈출’ ‘레옹’ ‘포레스트 검프’ ‘스피드’ ‘덤 앤 더머’ ‘마스크’ ‘펄프픽션’ 등 인기 외화도 많았다.

서점에서는 ‘일본은 없다’ ‘무궁화꽃이 피었습니다’ ‘나의 문화유산 답사기’ ‘서른, 잔치는 끝났다’ 등이 베스트셀러로 팔려나갔다.

김원겸 기자 gyummy@donga.com 트위터@ziodad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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