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역의 날]포스코, 日과 치열하게 경쟁하며 성장… 후발서 세계 ‘톱5’로 자리매김

  • 동아일보
  • 입력 2013년 12월 6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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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량 2000배, 금액 6700배 증가.’

포스코가 1973년 포항제철소를 준공한 이래 40여 년간 거둔 ‘수출 성적표’다. 포스코가 해외 시장에 첫발을 들인 건 포항제철소를 다 짓기 전인 1972년, ‘백워드 건설 방식’으로 생산한 후판(두꺼운 판형 철강제품)을 미국과 대만에 수출하면서부터다. 철강 생산과정은 원료→제선→제강→압연으로 이뤄지는데 포스코는 마지막 단계인 압연공장부터 만드는 백워드 건설 방식을 택했다. 수출로 벌어들인 돈을 다시 건설에 투입해 부족한 자금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였다. 그해 7000t이던 수출 물량은 지난해 1460만 t으로 약 2000배, 매출로 따지면 95만 달러에서 64억 달러로 약 6700배 늘었다.

수출 주도형 경제 성장 이끌어

포스코는 1970년대 한국의 수출 주도형 경제 발전을 가능케 한 주역으로 평가받는다. 포스코가 국내 철강산업의 기틀을 마련했을 뿐만 아니라 삼성, 현대, 선경 등 국내 종합상사들이 성장하는 데 결정적인 도움을 줬기 때문이다. 1970년대 중반까지만 해도 포스코의 철강제품은 국내 종합상사들이 해외에서 파는 제품에서 가장 큰 비중을 차지했다. 종합상사들은 철강제품을 시작으로 점차 섬유, 기계 등 수출 품목을 늘려갔고 이를 기반으로 국내 경제도 함께 성장할 수 있었다.

포스코는 위기를 수출로 극복하며 성장해왔다. 1978년 2차 오일쇼크, 1997년 외환위기가 닥쳤을 때 포스코는 새로운 해외 판로를 뚫는 데 주력했다. 특히 1970년대 말 오일쇼크로 국내는 물론 전 세계 경기가 얼어붙었을 당시 포스코 직원들은 해외에서 수출 계약을 따내기 위해 발 벗고 나섰다. 이런 노력 덕분에 1980년대 중반부터 포스코 제품은 해외에서 그 경쟁력을 인정받기 시작했다. 포스코는 1986년 US스틸과 손잡고 미국에 첫 해외 생산법인인 UPI를 세우며 해외 시장 공략에 박차를 가했다. 이때부터 포스코가 생산하고 있는 냉연제품 원료인 핫코일은 현재 세계 최고 수준의 품질로 평가받는다.

후발주자에서 세계 3위 철강회사로

포스코는 해외 시장에서 줄곧 일본 철강회사와 경쟁하며 성장했다. 특히 1990년대 중국 문호가 개방된 뒤 중국 철강시장을 두고 일본 회사와 치열한 경쟁을 벌였다. 초기만 해도 중국의 철강시장은 일본 철강회사들의 독무대였다. 불리한 상황을 극복하기 위해 일본 회사들과 달리 포스코는 실제 철강제품을 사려는 기업들을 일일이 만나 설득하는 전략을 폈다. 적극적인 현장 마케팅 덕분에 중국 시장에 처음 진출했을 때만 해도 ‘한국에서도 철강제품을 만드냐’는 질문을 받던 낯선 회사가 현재는 중국 철강시장의 7%를 차지하는 중국 내 최대 외국계 철강회사로 자리매김했다.

포스코는 세계에서 품질 기준이 가장 까다롭기로 소문난 일본에서도 그 기술력을 인정받았다. 특히 자존심 센 일본 자동차 회사에 포스코가 만든 자동차강판을 수출하는 건 매우 의미 있는 일로 평가받는다. 포스코 관계자는 “당시 일본 기업들이 수입 철강제품을 사용하는 게 외부에 알려지면 브랜드 이미지가 떨어진다고 여겼기 때문에 기업의 구매 담당자를 만나는 것 자체가 매우 어려운 일이었다”고 설명했다.

현재 포스코는 세계 철강회사 ‘톱 5’로 꼽힌다. 세계철강협회에 따르면 지난해 포스코의 쇳물 생산량은 3990만 t으로 세계에서 다섯 번째로 많다. 포스코 관계자는 “40년 전만 해도 포스코는 철강 산업에 뒤늦게 뛰어든 후발주자였다”며 “이 약점을 땀과 열정으로 극복하며 수출 경쟁력을 키운 덕분에 회사도 비약적으로 성장했고 한국이 세계 10위권의 무역대국으로 성장하는 데 큰 도움이 됐다”고 말했다.

김호경 기자 whalefisher@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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