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arrative Report]깜깜이 수능 뒤엔 점점… 커지는 불안 占占… 붐비는 발길

  • 동아일보
  • 입력 2013년 12월 5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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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수능, 참 어려웠다. 선택형으로 치러져 입시전략을 짜는 데도 골머리가 아프다. 수험생들 못지않게 불안한 사람은 바로 학부모. 이래저래 머리를 굴려 봐도 도출되는 결론은 답답함뿐. 그래서 이들은 위안을 찾으러 ‘입시점’을 보러 간다. 송병창 원장이 사주 등을 토대로 입시점을 봐주고 있다. 장승윤 기자 tomato99@donga.com
올해 수능, 참 어려웠다. 선택형으로 치러져 입시전략을 짜는 데도 골머리가 아프다. 수험생들 못지않게 불안한 사람은 바로 학부모. 이래저래 머리를 굴려 봐도 도출되는 결론은 답답함뿐. 그래서 이들은 위안을 찾으러 ‘입시점’을 보러 간다. 송병창 원장이 사주 등을 토대로 입시점을 봐주고 있다. 장승윤 기자 tomato99@donga.com
《 표정엔 근심이 가득하다. 반복되는 한숨 소리. 길게 한숨을 내쉴 때마다 얇은 입술은 파르르 떨린다. 애써 불안함을 누르기 위해 애꿎은 펜만 연신 돌려대는 탓에 죄 없는 손가락만 힘들다. 고뇌하는 중년 여자 앞엔 커다란 메모지가 한 장 놓여 있다. 메모지엔 가, 나, 다군이란 항목 아래 차례로 지원 가능한 대학 및 학교 정보가 빼곡하다. 이 여자의 딸은 미술을 전공하는 고교 3학년. 얼마 전 대학수학능력시험을 봤다.책상 건너 맞은편. 깔끔하게 머리를 빗어 넘긴 중년 남자가 있다. 빳빳하게 다린 정장에 까만 뿔테 안경. 날카로운 이미지가 물씬 묻어난다. 그의 입에선 전문 입시용어가 쏟아져 나온다. 》

책상 위 나란히 설치된 두 대의 모니터. 옆엔 대학입시 관련 서적과 홍보 전단이 놓여 있다. 전단에는 ‘아직도 진로, 진학 문제 때문에 고민 중이십니까’라는 글귀가 크게 적혀 있다. 아래엔 이렇게 쓰여 있다. ‘서울 강남에서 16년 상담 경력의 노하우.’

○ 치맛바람은 눈물바람, 그리고 점집으로

열에 아홉은 학원 상담실이라 생각할지 모른다. 요즘 호황인 입시 컨설팅업체 사무실이라 대답할 법도 하다. 이들의 대화를 들어보자.

“숙명여대보단 한양대가 좋습니다. 풍수적으로 미아리, 왕십리 쪽이 잘 맞거든요.”(남)

“그래도 학원에선 숙대가 낫다고 하던데….”(여)

“사주라는 게 확률이에요. 따님 사주를 보면 남녀공학이 더 잘 맞아요. 그러니 한양대가 확률상 유리하죠. 역마살이 좀 있으니 서울 캠퍼스를 지원하기 벅차면 지방 캠퍼스로 눈을 돌려도 좋습니다.”(남)

남자는 사주를 바탕으로 조언을 했다. 수시 접수일, 논술일, 면접일, 대학 첫 개강일 등 이미 정해져 있는 날짜에 학생 사주를 대입해 어느 대학 합격 운이 더 높을지, 입학한 뒤 학교생활을 잘할지 등까지 얘기해줬다. 사주, 성명학, 풍수 등을 복합적으로 이용해 입시 전략을 짜준다며 으쓱거렸다. 이 말도 잊지 않았다. “제가 아직까지 이 자리에서 살아 있다는 게 확률의 힘 아니겠습니까.”

여자는 입술이 말랐다. 지방 캠퍼스도 가겠느냐는 말엔 애를 위해 이사라도 가겠다고 했다. 세상 누구보다 불안하고 답답한데, 아무도 알아주지 않는데, 앞에 앉은 남자는 진지하게 들어준다. 그걸로 이미 절반은 만족한 표정이다.

1시간가량 이어진 상담. 대화를 뜯어 보면 결국엔 돌고 돌아 처음 했던 얘기로 되돌아온 듯한데…. 그래도 여자는 흡족했다. 시원하게 수표 한 장을 건네주며 “애가 합격하면 한턱 내겠다”며 총총히 자리를 떴다.

이 남자, 송병창 원장은 서울 강남 한복판에서 ‘점집’을 운영한다. 삼성동 한 빌딩에 자리 잡은 사무실 상호도 거창하다. ‘라이프비젼 미래휴먼 컨설팅.’

처음 점집을 연 게 벌써 20년 전이다. 사실 대학에선 체육학, 대학원에선 관광경영학을 전공했다. 20대 때 8년간 한 직장생활을 접고 ‘점쟁이’ 길로 나선 건 점술인이었던 어머니 영향이 컸다. 어릴 때부터 집에서 자연스럽게 보고 배우다 보니 핏속에 흐르는 끼를 억제할 수 없었단다.

10년 전쯤 잘나갈 땐 남부럽지 않게 벌었다. 12명의 잘나가는 역학인들을 요일별로 초빙해 운영하니 임대료에 직원 월급 등을 제하고도 손에 쥐는 돈만 월 800만 원은 됐단다. 그러다 위기가 찾아왔다. 불황에 손님이 확 줄었다. 까다로운 역학인들을 관리하는 일도 점차 힘에 부쳤다. 가게를 접었다. 싱가포르로 훌쩍 떠났다. 3년 뒤 돌아와선 고심했다. 이미 ‘운세 시장’도 포화인 상황. 생존 전략을 찾아야 하는데….

그러다 무릎을 탁 쳤다. ‘교육시장이다. 교육엔 불황이 없다.’ 그렇게 생각하고 들여다보니 빛이 보였다. 입학사정관제 등이 강화되고 수시모집 비중이 늘면서 까다로워진 대학 입시. 복잡하면 불안하다. 불안하면 의지할 곳을 찾게 된다. 게다가 핵가족 시대라 자식을 위해서라면 못할 게 없다.

곧바로 ‘교육과 사주역학의 만남’이라고 써넣은 명함을 만들었다. 진로나 적성에 맞춰 진학은 물론 편입학, 유학 시기와 방법 등까지 알려준다며 광고했다. 사주를 통해 학생의 특기를 알려주고 자기소개서 쓰는 방법까지 조언해준다고 했다.

결과는? ‘교육 불패’란 말이 피부에 와 닿았다. 손님의 3분의 2가 입시철에 몰렸다. 특히 정시모집을 앞두고선 문전성시. 수시 때 눈높이가 높던 학부모들이 마지막 지원 기회인 정시를 앞두곤 지푸라기라도 잡겠단 심정으로 찾아왔다.

그는 말했다. “이번에 수능이 어려웠잖아요. 선택형이어서 전략 짜기도 어렵고. 그 덕분에 찾아오는 학부모들이 지난해보다도 2배는 늘었네요. 특히 치맛바람이 센 학부모들일수록 답답하면 그게 눈물바람으로 변해 저를 찾죠.”

○ 사교육 1번지…입시점 보는 사람들

3조4000억 원.

국내 ‘점집’들이 한 해 평균 벌어들이는 매출액 추정치다. 하지만 전통적 점집촌에선 요즘 어렵다고 아우성이다. 대표적인 점집촌인 서울 강북구 미아동. 여기서만 20년 넘게 점집을 했다는 역술인 A 씨는 요즘 잘되느냐는 질문에 대뜸 짜증부터 냈다. 문은 열어 두는데 확실히 한풀 꺾였다며 긴 한숨을 내쉬었다. 인근 지구대의 경찰은 이곳에서 요즘 복채를 두고 벌어지는 사기사건이 늘었다고 했다. 손님이 줄어 경쟁이 붙다 보니 무리하게 되고, 그러다 보니 사기까지 치게 된단 뜻이다.

그런데 임대료가 비싼 강남엔 점집이 오히려 늘었다. 그것도 논현, 청담, 대치동 등 강남에서도 금싸라기라고 소문난 곳에 몰려 있다. 대치동의 한 부동산 중개업자는 “웬만한 벤처기업도 입주하기 힘든 곳에 사무실이 차려졌기에 봤더니 점집이었다”며 혀를 내둘렀다. 그 점집이 들어선 빌딩의 경비원은 말했다. “아침, 저녁으로 아줌마들이 물어요. 점집이 몇 층이냐고.”

‘사교육 1번지’ 강남, 그리고 ‘입시점’을 보는 점집들, 이런 그림이 그려진다. 지하철 3호선 대치역 인근 점집인 ‘The Life’. 주변엔 온통 크고 작은 학원들로 빽빽하다. 점집 안으로 들어서면 입시상담업체 분위기가 물씬 풍긴다. 눈에 확 들어오는 원장의 경력. ‘35년 동안 대형 입시학원에서 언어와 논술을 강의, 상담실장까지 겸임.’

노형권 원장은 학생의 학업 운을 보고 맞는 학과와 사회 진출 시기를 추천해준다. 젊어서 승려 생활을 잠시 했고 그때 사주를 배웠다고 했다.

이곳 역시 입시철이 대목이다. 수능 직후부터 12월 말까지 평소의 3배 넘는 손님이 찾는다. 노 원장은 말했다. “학부모들은 어느 대학, 어느 과에 지원할지, 수시를 어디에 쓸지는 기본으로 깔고, 예를 들면 가군 대학 가운데 어디에 쓰면 어떻게 운이 다른지 등까지 구체적으로 물어요. 저도 공부를 꾸준히 하죠. 바뀐 입시제도를 모르면 입이 굳으니.”

정진선(가명) 씨는 지난해에 이어 올해도 이곳을 찾았다. 아이가 재수를 했다. 불합격 소식을 들었을 땐 충격에 쓰러질 뻔했단다. 이틀 내내 울었다. 그때 아이와 함께 이곳을 처음 찾았다. 정 씨는 “원장님이 학원에 오래 계셔서 그런지 대화가 잘 통했다”고 했다.

사주입시컨설팅은 일반 입시컨설팅과 어떻게 다를까. 정 씨는 크게 다르진 않은 것 같다고 했다. 근데 왜 또 찾아왔느냐고 물었더니 이렇게 말했다. “올해는 잘될 운세라고 하니 마음이 편해지잖아요. 답답한 마음을 어루만지는 어떤 탈출구를 뚫어준 것 같기도 하고….”

학부모들의 뜨거운 입시열과 불안함에 기대는 건 신점(神占)을 보는 이들도 예외는 아니다. 여덟 살 때부터 귀신이 보이기 시작해 신병(神病)을 앓았고 20세 되던 해부터 신을 모시게 됐다는 ‘논현동 벼락대감’ 장용준 씨. 보증금 3000만 원에 월세만 130만 원이 넘는 곳에 터를 잡은 그에게도 수험생 학부모들은 고마운 존재다.

그의 신점이 사주입시컨설팅과 차이가 있다면 당락만 알려준다는 정도다. 이를테면 학부모가 원하는 대학, 학과 목록을 가져오면 빛이 보이는 곳으로 안내해 주는 식이다. 그를 안내하는 이? 당연히 모시는 신령님이다.

장 씨는 “10년 전만 해도 서울대 보내고 싶은 학부모는 재수를 시켜서라도 죽기 살기로 보내려고 했다. 그런데 요즘엔 어려울 것 같다고 하면 깨끗이 포기하고 낮추는 이들이 많다”고 했다. 경기 탓 아니겠냐는 나름의 해석. 그런데 예나 지금이나 변하지 않는 한 가지는 있다고 목청을 가다듬었다. “자식 때문에 이곳을 찾는 부모의 발걸음, 그리고 그 애타는 심정이죠.”

전통적으로 점집 성수기는 설날 등 명절을 앞둔 시점이다. 사회에 불만이 늘어나고 불안감이 커지면 반비례해 점집은 성행한다는 말도 있다.

정작 점집 업계에선 이 모든 변수를 우습게 만드는 요인이 바로 ‘입시’라는 말이 유행처럼 떠돌고 있다. 한 역술인은 사실 애정이나 결혼 취업 등에 비해 입시점이 가장 쉽다고 했다. 학부모들이 이미 선택지를 가져오기에 찍어주기만 하기 때문이라는 고백(?)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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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3 아들을 둔 이미영(가명·여) 씨는 얼마 전 입시점을 본 직후 짜증이 치솟았다. 기본적인 입시정보도 모르면서 컨설팅이라고 해주다니. 속았다는 기분에 불쾌했다. 그런데 그 딱 하루 뒤 이 씨는 “솔직히 복채가 아깝진 않았다”고 했다. “일단 애를 위해 뭐라도 했잖아요. 안 했을 때 불안한 기분을 복채를 주고 산 거면 됐죠, 뭐.”

신진우 기자 niceshin@donga.com   

김예윤 인턴기자 고려대 역사교육과 4학년

이예은 인턴기자 이화여대 역사교육과 졸업
#입시#점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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