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항공 백광언, 배구코트가 천국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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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3년 12월 5일 07시 00분


2년여의 방황을 마치고 배구 코트로 복귀한 대한항공 세터 백광언(19번)이 재기를 다짐하고 나섰다. 3일 한국전력전에서 공격을 성공시킨 뒤 환호하는 모습. 수원|김민성 기자 marineboy@donga.com 트위터 @bluemarine007
2년여의 방황을 마치고 배구 코트로 복귀한 대한항공 세터 백광언(19번)이 재기를 다짐하고 나섰다. 3일 한국전력전에서 공격을 성공시킨 뒤 환호하는 모습. 수원|김민성 기자 marineboy@donga.com 트위터 @bluemarine007
■ 2년 방황 끝에 그가 있어야 할 곳 찾다

20대 초반 돌연 은퇴 후 특공부대 군 복무
제대 후 술집·물류회사 아르바이트 전전

다시 잡은 배구공…백업세터로 재기 발판
김종민 감독도 “높이·스피드 정확” 칭찬


한창 잘나가던 운동선수들이 세상을 무서워할 때가 있다. 은퇴한 뒤다.

은퇴 선수들은 “유니폼을 벗고 나서야 코트에서 죽기 살기로 운동하던 그 때가 즐거웠다는 것을 알았다. 세상은 매일 승패가 갈리는 경기장보다 더 무서운 정글”이라고 말한다. 어릴 때부터 운동에만 매달리다보면 선수들은 세상물정에 너무 어둡다. 그래서 일탈행동도 가끔 하고 힘든 고비가 찾아오면 쉽게 운동을 포기한다. 그러나 운동만 해왔던 청춘들이 세상으로 나가봐야 할 일이 많지 않다. 제대로 된 정규직도 드물다. 원하는 만큼의 연봉도 받지 못한다. 삼성화재 신치용 감독이 “은퇴 이후의 삶에 고민하고 열심히 준비하라”고 선수들에게 매일 강조하는 이유다. 말보다 치열한 삶의 현장을 경험하게 해주는 것이 교육효과가 더 클지 모른다.

대한항공 백광언(25)은 2년여의 방황을 끝내고 6월에야 다시 배구공을 잡았다.

2010년 9월28일 열린 신인드래프트에서 명지대 졸업반으로 대한항공의 2번째 지명을 받았다. 입단 동기는 곽승석. 전체 9번째 순번의 선수로 입단했지만 희망을 키우기도 전에 배구를 포기했다. 그동안 아버지가 원해서 배구를 해왔지만 특별한 애착을 가지지 못했다. 막연히 배구가 싫어졌다. 선수생활을 쉽게 포기했다. 구단은 만류했지만 더 넓은 세상에 나가면 배구 말고도 좋은 일이 있을 것이라고 믿었다.

하지만 세상은 꿈과 달랐다. 20대 초반의 은퇴한 배구선수를 반겨주는 곳은 없었다. 군에 입대했다. 특공부대에서 열심히 복무했다. 제대를 했어도 갈 곳은 여전히 없었다. 먹고 살기 위해 일을 했다. 술집에서 아르바이트로 일했다. 물류회사에서 짐을 나르는 일도 했다. 몸으로 부대끼는 일을 하면서 세상의 무서움을 차츰 배웠다. 그동안 몰랐던 사실을 하나 깨달았다. 숨이 턱턱 막히는 힘든 훈련이 매일 이어지는 배구장이 천국이었다는 것을.

용기를 냈다. 구단에 제대 사실을 알렸다. 구단 관계자는 “배구를 다시 해보는 것이 어때”라고 했다. 두려웠다. 2년 이상 배구공을 놓은 상황. 다시 가능할지 자신이 없었다. 그렇지만 배구가 생각났다. 절실해졌다. 구단은 김종민 감독에게 백광언의 상황을 알렸다. 김 감독은 따뜻하게 받아줬다. “다시 한 번 해보자”고 손을 내밀었다. 병역을 마친 25세의 선수. 나이가 들수록 더욱 시야가 넓어지는 세터였다.

그렇게 해서 백광언의 배구인생은 새롭게 시작됐다. 7월 KOVO컵을 앞두고 정식으로 등록했다. 경기에 나갈 기회는 드물었지만 훈련 때 올려주는 토스 하나하나에 새로운 애착이 생겼다. 허투로 훈련하지 않았다. 예전과는 배구가 다르게 다가왔다. 시즌을 앞두고 갑자기 한선수가 군에 입대했다. 생각지도 못한 기회였다. 황동일에 이은 2번째 세터지만 차츰 코트에 서는 순간이 많아졌다. 김 감독은 “훈련 때도 마이클과 호흡을 가장 잘 맞추는 세터다. 높이나 빠른 토스 스피드 모두 정확하다”며 칭찬했다.

3일 한국전력과의 홈경기. 팀은 0-3으로 패해 충격에 빠졌지만 대신 백광언의 기량을 확인한 수확도 얻었다. 이번 시즌들어 가장 많은 시간 경기에 출전하며 황동일을 넘어설 가능성도 보여줬다. 3세트 듀스상황에서는 용감하게 2단패스로 점수도 냈다. 백광언이 올리는 토스에는 삶의 현장을 체험한 간절함이 들어 있다.

김종건 전문기자 marco@donga.com 트위터@kimjongke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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