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도권/현장 이슈]주민 “반대” 정부 “강행”… 꽉막힌 행복주택 건설

  • 동아일보
  • 입력 2013년 12월 4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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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개 시범지구 신규 지정 앞두고 시끌

행복주택 시범지구 가운데 한 곳인 서울 양천구 목동 유수지. 주민들이 컨테이너박스에 비상대책위원회 사무실을 설치하고 행복주택 지정에 반대하는 붉은 플래카드를 내걸었다. 비대위 측은 “정부가 주민과 협의 없이 일방적으로 추진하고 있다”며 “4일 대규모 반대집회를 열 것”이라고 밝혔다. 홍진환 기자 jean@donga.com
행복주택 시범지구 가운데 한 곳인 서울 양천구 목동 유수지. 주민들이 컨테이너박스에 비상대책위원회 사무실을 설치하고 행복주택 지정에 반대하는 붉은 플래카드를 내걸었다. 비대위 측은 “정부가 주민과 협의 없이 일방적으로 추진하고 있다”며 “4일 대규모 반대집회를 열 것”이라고 밝혔다. 홍진환 기자 jean@donga.com
3일 오후 서울 양천구 지하철 5호선 오목교역 인근 목동 유수지(遊水池). 10만5000m²의 터에 공영주차장과 테니스장, 빗물펌프장 등이 들어선 이곳과, 도로 건너편 주상복합 하이페리온 주변에는 ‘양천구민은 봉인가?’ ‘목동 행복주택 결사반대’ 등이 쓰인 현수막이 곳곳에서 펄럭이고 있었다. 유수지 내 임시로 설치된 컨테이너박스에는 주민들이 삼삼오오 모여 대책을 논의하고 있었다.

신정호 목동 행복주택건립반대 주민비상대책위원장은 “오늘(3일) 서승환 국토교통부 장관이 온다고 해서 기다리고 있었는데 국토부 측이 아침에 일방적으로 취소했다”며 “지구지정 발표 전에 주민들과 협의했다는 명분을 쌓으려다가 계획이 사전에 알려지자 발을 뺀 것”이라며 분통을 터뜨렸다.

○ “행복주택 반대 투쟁”… 규탄 집회 줄줄이

정부가 3일 목동, 잠실, 송파(탄천), 공릉, 고잔(안산) 등 행복주택 시범지구 5곳을 지구 지정하겠다는 계획을 밝히자 해당 지방자치단체와 주민들이 거세게 반발하고 있다. 주민들은 서 장관 퇴진까지 요구하면서 집단행동에 나설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목동 비대위는 4일 목동 현대백화점 앞에서 주민 3000∼4000명이 참여한 가운데 국토부와 서 장관 규탄 집회를 열 계획이다. 또 목동·공릉·고잔지구 주민들은 5일 정부세종청사 앞에서 지구지정 철회를 요구하는 시위를 벌이기로 했다. 정부서울청사 앞에서도 시위를 벌일 계획이다. 이에 앞서 목동 비대위는 2일 양천구청과 함께 민관정 대책회의를 열고 서 장관 사퇴와 지구지정 철회를 요구하는 성명을 발표했다.

목동 주민들은 전국에서 인구밀도가 가장 높은 기초지자체 중 하나인 양천구에 행복주택이 들어설 경우 인구과밀화는 물론이고 학교 부족과 교통난이 더욱 심해질 것을 우려하고 있다. 집중호우에 대비하기 위한 유수지에 주택을 짓는 것도 문제라고 지적한다. 지역주민 김모 씨는 “서울시가 과거 시내 52개 유수지를 대상으로 임대주택 건설 타당성을 조사했을 때 목동 유수지는 적합하지 않다는 결론을 내렸다”며 “정부가 이 같은 내용을 전혀 검토하지 않고 있다”고 말했다.

노원구 공릉동 주민들은 정부와 서울시 등이 경춘선 폐선 용지를 공원화하겠다고 발표해놓고 갑자기 행복주택을 짓겠다고 한다며 반발하고 있다. 황규돈 공릉 비대위원장은 “공릉지구는 지난해 권도엽 전 국토해양부 장관이 방문해 공원을 만든다고 약속한 곳”이라면서 “무조건 반대하는 것이 아니라 공릉동 내 대체용지까지 제시했지만 정부는 꿈쩍도 하지 않는다”고 분통을 터뜨렸다.

송파구 잠실동 잠실지구와 가락동 송파지구 주민들도 반대 의사를 밝힌 상황이다. 송파구 내 사업용지로 검토되는 유수지에는 탄천축구장과 리틀야구장, 생태공원, 장애인 운전연습장 등 한 해 3만여 명 가까이 이용하는 시설이 이미 들어서 있다. 국토부가 지역주민에 대한 사업설명회를 열었지만 주민들은 ‘잠실·탄천 유수지 내 행복주택 건립 반대 궐기대회’를 여는 등 반발하고 있다.

이미 지구지정이 된 구로구 오류지구도 반대하기는 마찬가지다. 구로구청은 지난달 22일 지구지정 협의를 취소해 달라고 국토부에 요청했다. 당초 국토부와 구로구청이 협의한 환경영향평가안에 비해 오류지구 행복주택 주변 공공시설이 대폭 축소됐기 때문이다. 변경안에 따르면 공사비를 줄이기 위해 덱 면적을 절반 이상 축소하도록 돼 있어 지역주민이 원하는 복지시설은 줄어들고 공원 면적도 작아진다.

안산시 고잔지구 주민들은 주택 재건축 추진력 약화, 주차장 녹지 등 기반시설 훼손, 주변 상권 침체 등을 우려하고 있다. 안산시 관계자는 “목적이 유사한 신길 온천 국민임대주택예정지구 사업을 우선 추진해줄 것을 요구했지만 LH 측은 사업성이 없다는 말만 되풀이하고 있다”고 말했다. 김철민 안산시장은 4일 오후 관계 공무원들과 함께 국토부를 항의 방문하기로 했다. 주민들은 정부가 사업을 강행할 경우 공사장을 봉쇄하는 등 끝까지 투쟁하겠다는 뜻을 밝혔다.

○ 정부 “지구지정 불가피”

주민들이 행복주택 지구지정에 강력히 반발하는 것을 두고 일각에서는 ‘지역 이기주의’ ‘님비현상’이라는 비판도 없지 않다. 주민들이 반대하는 것은 저소득층 주거지역이라는 이미지가 강한 임대주택이 늘면 지역 이미지가 깎이고 집값이 하락하는 등 부작용이 발생할 것을 걱정하기 때문이라는 해석인 것이다.

하지만 해당 지자체와 주민들은 “사전 협의 없이 밀어붙이는 정부의 독단적 태도가 가장 큰 문제”라고 입을 모았다. 목동비대위 신 위원장은 “정부가 지자체·지역주민 대표 등과 340여 차례 협의했다고 하는데 새빨간 거짓말”이라며 “지금까지 주민설명회 한 번 제대로 한 적이 없다”고 말했다.

특히 정부가 3일 행복주택을 20만 채에서 14만 채로 축소하겠다고 나오면서 논란은 더 거세질 것으로 전망된다. 정부가 정책 실패를 자인한 것으로 비칠 수 있기 때문이다. 국토부 관계자는 “철도용지의 경우 예상보다 공사비가 많이 드는 게 사실로 나타나는 등 현실적인 한계가 있었다”며 “대통령 공약이지만 현실에 맞게 과감히 수정한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7개 시범지구는 그대로 추진하겠다는 의지를 확인했다. 도태호 국토부 주택토지실장은 “지구지정과 관련해 주민 반대가 여전하지만 지역별 요구 사항에 대해서는 합리적 대안을 마련한 상태”라며 “지구계획과 사업계획승인 등을 통해 주민들이 불만을 제기하고 있는 교통, 학교 문제 등과 관련된 요구사항을 최대한 반영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이에 따라 목동 안산 등 주민 반대가 극심한 시범지구는 공급 물량을 대폭 조정할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전문가들은 정부가 대선 공약에 집착하지 말고 합리적 해결책을 제시하라고 조언한다. 박합수 KB국민은행 부동산팀장은 “사업을 원활하게 추진하기 위해서는 임대주택이라는 이미지를 불식시키고 각 지역주민들에게 인센티브를 주는 방안을 마련해야 한다”고 말했다.

:: 행복주택 ::

박근혜 정부의 핵심 주거복지 공약으로 신혼부부, 사회초년생 등 2040세대 무주택자를 위한 국민임대주택을 말한다. 철도 선로 위를 덮개 형태로 만든 인공대지나 유수지 복개 터 등 미활용 공공용지와 공기업 보유 토지를 이용해 주택 약 14만 채(12월 3일 발표 기준)를 공급한다. 수도권 △오류동 △가좌 △공릉동 △고잔 △목동 △잠실 △송파 지구를 7개 시범지구로 지정해 약 49만 m² 용지에 1만50채를 우선 건설할 계획이다. 국토교통부는 차량기지 선로 위에 아파트와 쇼핑몰을 세운 홍콩과 지하철 선로 상부에 인공대지를 조성해 아파트를 지은 일본 등을 유휴지 활용 성공 사례로 들고 있다.

김재영 redfoot@donga.com·이서현 기자
#행복주택#국민임대주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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