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횡설수설/정성희]성범죄자 신상공개 어디까지?

  • 동아일보
  • 입력 2013년 12월 4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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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4년 뉴저지 주에 사는 일곱 살 소녀 메건 캥카가 건너편 집 남성에게 성폭행을 당한 뒤 살해됐다. 이 남자는 이미 두 차례의 성범죄 전력이 있었지만 이웃은 그 사실을 알지 못했다. 이 사건을 계기로 미국에서는 아동 성범죄자의 신상을 공개해 추가 피해를 막아야 한다는 여론이 들끓었다. 그리고 2년 뒤인 1996년 성범죄자의 신상 공개를 의무화한 메건법이 통과됐다. 어제 들어가 본 캘리포니아 주 성범죄자 웹사이트에만 7만4890명이 등록돼 있었다.

▷우리도 이 법을 본떠 2001년 청소년 성범죄자 신상공개 제도를 만들었다. 2010년 ‘성범죄자 알림e(www.sexoffender.go.kr)’로 시작한 이 제도는 ‘김길태 사건’ 이후 공개 대상이 확대됐다. “왜 성인 대상 성범죄자는 제외하느냐”는 여론에 따라 2011년 4월 성인 대상 성범죄자를 추가했다. 이듬해 경남 통영에서 초등생을 살해한 김점덕이 과거 성인 대상 성범죄자였던 전력이 드러나면서 법안 성립 이전의 범죄자들까지 소급 적용해 공개했다. 미국에 버금하는 강력한 제도가 탄생한 것이다.

▷성범죄자 신상 공개는 논란이 없지 않다. 신상 공개에 반대하는 가장 큰 논거는 신상 공개가 이중처벌이라는 주장이다. 2003년 헌법재판소는 청소년 성보호라는 공익적 목적이 공개 대상자의 인격권 침해와 사생활 제한 정도보다 우선한다고 합헌 결정을 내렸다. 그러나 당시에도 위헌(違憲) 5인, 합헌(合憲) 4인으로 위헌 견해가 우세했으나 위헌 결정에 필요한 정족수(6인) 미달로 합헌 결정이 내려진 것이었다.

▷여중생을 추행했다는 이유로 아버지의 신상이 공개된 것을 비관해 고2 아들이 자살하는 사건이 발생했다. 유서에는 가족이 겪는 고통과 비애가 절절하게 드러나 있다. 안타깝기 그지없다. 아버지의 성추행을 옹호할 마음은 전혀 없지만 신상을 공개할 만큼 중범죄는 아닌 듯하다. 성범죄 증가에 따라 신상 공개를 강화만 해왔는데 이제 어느 수준의 범죄자까지 신상을 공개할지에 대한 사회적 논의가 필요한 시점에 온 것 같다.

정성희 논설위원 shchu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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