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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北 장성택 실각]평민 출신으로 北 2인자 군림… ‘섭정왕’ 행세하다 추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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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北 장성택 실각]평민 출신으로 北 2인자 군림… ‘섭정왕’ 행세하다 추락

동아일보입력 2013-12-04 03:00수정 2013-12-04 10: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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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은 고모부 장성택은 누구 “북한의 섭정왕(攝政王) 장성택이 방중했다.”

홍콩에서 발간되는 밍(明)보는 지난해 8월 장성택 북한 국방위원회 부위원장의 중국 방문을 이같이 보도했다. 실세 장성택은 당시 국가 정상에나 어울릴 법한 매머드급 수행단을 이끌며 어린 조카(김정은 노동당 제1비서)를 대신한 ‘섭정왕’의 위상을 십분 과시했다. 그랬던 그가 그로부터 1년 4개월 만에 자신의 최측근들이 공개 처형되는 ‘잔인하면서도 극적인’ 방식으로 실각했다. 이제 장성택은 권력이 아니라 본인과 아내(김경희 당 비서)의 안위를 걱정해야 하는 처지가 됐다. 이들의 거취에 따라 북한 권부의 지형에도 변화가 불가피한 상태다.

○ ‘북한의 남자 신데렐라’


김씨 왕조 국가인 북한에서 장성택은 평민에서 출발해 부마(駙馬·왕의 사위)의 지위에까지 오른 화려한 성공기의 주인공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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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북자들의 증언을 종합하면 장성택은 김일성의 딸인 김경희와 자유연애로 결혼에 골인했다. 1965년 김일성종합대를 같이 다닌 것을 계기로 두 사람은 친분을 쌓았다. 둘 사이에서 더 매달린 쪽은 김경희였던 것으로 전해진다. 뒤늦게 이를 안 김일성이 두 사람을 갈라놓기 위해 장성택을 원산경제대로 강제 전학을 보내기도 했다. 하지만 김경희가 헤어질 수 없다고 고집하고 김정일이 여동생을 도우면서 1972년 결혼에 이르렀다. 이후 장성택은 청소년사업부를 비롯해 노동당에서 경력을 키우며 승승장구했다. 1986년 국회의원에 해당하는 최고인민회의 대의원이 됐고 1989년 노력영웅 칭호를 받았다. 1992년에는 김일성 훈장을 받았고 1995년 권력의 핵심부인 당 조직지도부 제1부부장이 됐다. 이후 위상의 부침이 있었지만 김정은 후계구도가 본격화되면서 장성택의 입지는 더 단단해졌다. 2010년 6월 국방위 부위원장, 당 행정부장을 맡았고 김정은이 공식석상에 모습을 드러낸 2010년 9월 당 정치국 후보위원, 당 중앙위 위원, 당 중앙군사위 위원 등 3개의 직함을 한꺼번에 받았다.

2011년 12월 김정일 장례식에서도 장성택의 위상은 독보적이었다. ‘장의차 호위 8인’ 가운데 김정은을 제외하면 김씨 가족 중에 유일하게 나머지 7인에 포함됐다. 또 이영호 군 총참모장, 김영춘 인민무력부장, 김정각 군 정치국 제1부국장, 우동측 국가안전보위부 제1부부장 등 군부 4인방이 차례로 정리될 때도 장성택은 오히려 위상이 더 높아졌다. 2013년 11월 기준으로 당정군(黨政軍)에서 그가 맡은 직함이 8개나 된다는 사실이 이를 증명한다.

○ 숙이지 않는 고개는 떨어진다

장성택의 위상이 높아지면서 그 태도가 안하무인으로 변하는 게 아니냐는 지적도 덩달아 제기돼 왔다.

2002년 경제시찰단으로 방한했을 때 장성택은 박남기 당 계획위원장을 단장으로 내세우고 자신은 수행원 신분을 가장했지만 방한 기간 내내 범상치 않은 위세를 풍겼다. 하지만 2012년 8월 방중에서는 대규모 사절단의 단장을 맡아 당시 중국 후진타오(胡錦濤) 국가주석, 원자바오(溫家寶) 총리를 예방하는 등 국가수반급 일정을 직접 소화했다. ‘섭정왕’ 칭호도 이때 나왔다. 한 고위직 출신 탈북자는 “장성택이 당시 중국 방문 때처럼 전면에 나서는 것은 김정일 체제에서는 상상도 못할 일”이라고 말했다.

공식 행사에서도 그의 행동은 ‘절대 1인자’를 모시는 사람답지 않았다. 그는 올해 1월 열린 제4차 당세포비서대회에서 김정은이 연설을 하는 동안 딴곳을 응시하는 모습이 카메라에 포착됐다. 권력암투가 일상적인 독재국가에서 적대세력에 빌미를 줄 수 있는 위험천만한 행동이지만 고쳐지지 않았다. 4월 15일 금수산태양궁전에서 김일성 시신에 참배할 때는 김정은보다 먼저 의례를 끝냈다. 4월 25일 인민군 창건 기념일 열병식에서도 주석단 참석자들이 경례를 하는데도 딴청을 피웠다.

북한을 오랫동안 상대해 온 안보부처 관계자는 “김정은이 장성택의 최측근을 소리 없이 제거할 수 있는데도 공개 처형을 택한 것은 의도적으로 숙청 사실을 널리 알림으로써 인민에게 전하고 싶은 메시지가 있었기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 장성택에게 신분상승은 위험 부담 수반

‘김씨 혈통’이 아닌 장성택에게 신분 상승은 동시에 위험 부담이 수반되는 것이었다. 그는 2004년에도 ‘분파행위자’로 찍혀 철직당한 바 있다. 안보부처 당국자는 “당시 장성택이 전횡을 휘두르고 호화 생활을 즐기며 ‘쏠라닥질(분파주의)을 했다’는 혐의로 혁명화교육에 처해졌다가 2년 만에 복권됐다”고 말했다. 이어 “이후 장성택 주변에 사람들이 모이길 꺼리며 조심했는데도 이번에 다시 숙청에 이르게 됐다”고 말했다.

향후 관심은 장성택의 부인이자 김정은의 고모인 김경희에게까지 숙청의 여파가 미치느냐다.

북한 전문가들은 일단 장성택의 실각과 김경희의 문책은 별개로 판단하고 있다. 정영태 통일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김경희까지 숙청되는 것이 최악의 시나리오”라며 “그럴 경우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만들어놓은 권력 기본구조가 뿌리째 무너질 수 있다”고 말했다. 안보부처 당국자는 “최룡해 인민군 총정치국장 등 군부의 견제세력으로 삼기 위해서라도 혈족의 뿌리는 남겨둘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하지만 국회 정보위원회 민주당 간사인 정청래 의원은 3일 기자들과 만나 “김경희가 그래도 남편을 위해서 실각까지 시켜서야 되겠는가라고 (김정은한테) 조언을 했으나 받아들여지지 않은 것으로 알고 있다”고 전했다. 이에 따라 김정은이 여동생인 김여정에게 김경희의 역할을 맡기며 세대교체를 시도할 수 있다는 관측도 나온다.

장성택과 김경희 사이에는 외동딸 금송이 있었으나 프랑스 유학 중인 2006년 자살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장성택의 자형(누나의 남편)인 전영진, 조카(큰형 장성우의 차남)인 장용철이 각각 주(駐)쿠바와 주말레이시아 대사로 근무했는데 최근 소환된 것으로 알려져 이번 숙청의 영향을 받을 가능성이 크다.

조숭호 shcho@donga.com·손영일 기자
#북한#장성택#김정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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