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 “게임의 법칙 바꿔라”… 경험보다 스피드… 실전 高手 우대

  • 동아일보
  • 입력 2013년 12월 4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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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 사장단 인사의 숨겨진 키워드 3가지
① “믿으면 오래 맡긴다” 先代 원칙 변화… 1~2년 주기로 전보
② “무술 공인 10단보다 길거리 싸움 1단” 스펙보다 실적 따져
③ 그룹 컨트롤타워 조정기능 강화… 계열사 간 CEO 이동 급증

삼성그룹은 2일 발표한 사장단 인사에서 2, 3년 전부터 내비친 크고 작은 변화를 명확히 드러내 재계의 관심을 모았다.

최근 삼성그룹 인사에선 ‘한 번 믿으면 오래 맡긴다’는 과거의 관행이 사라지기 시작했다. 그룹의 컨트롤타워 기능은 점점 강해지는 추세다. 예측이 불가능한 경영환경 때문이다. 재계는 이런 변화가 2011년부터 나타나기 시작했다고 분석한다. 이해는 2010년 부사장에서 사장으로 승진한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경영참여를 본격화한 시기다.

동아일보가 2011년 이후 3년간의 삼성그룹 사장단 인사를 분석해 ‘숨겨진 키워드’를 꼽은 결과 먼저 ‘스피드 인사’가 두드러졌다. 최고경영자(CEO)의 인사이동 시점이 전보다 빨라졌다. 한 번 믿으면 맡긴다는 선대(先代)의 인사원칙이 신뢰에 초점을 맞춘 것이라면 지금의 스피드 인사는 급변하는 경영환경에 방점을 둔 것이다.

이번 인사에서 삼성생명 CEO를 맡은 김창수 사장이 대표적이다. 김 사장은 2011년 삼성물산 부사장에서 삼성화재 사장으로 자리를 옮긴 뒤 2년 만에 다시 삼성생명의 경영을 맡게 됐다. 김기남 사장도 지난해 삼성전자 종합기술원에서 삼성디스플레이 사장으로 옮긴 데 이어 1년 만에 다시 삼성전자 메모리사업부장으로 이동했다. 박준현 사장은 2011년 삼성증권 사장에서 삼성자산운용 사장으로 옮긴 뒤 지난해 인사에서 삼성경제연구소 금융산업 담당 사장에 선임됐다.

그룹의 조정기능 강화도 눈에 띈다. 지난해 최지성 부회장이 삼성 미래전략실장에 취임한 뒤 계열사 간 경영진 이동이 급증했다. 이번 인사에서 사장단의 계열사 간 이동은 9명에 달했다. 특히 전자와 금융, 금융과 건설, 전자와 패션 등을 넘나들며 경영진이 이동하는 추세다. 지난해 계열사 간 CEO 이동은 3명에 불과했다.

계열사 간 인사이동이 늘어난 것은 미래전략실이 주도하는 ‘삼성전자 혁신 DNA의 전파’를 강화하기 위한 수단이다. 삼성전자 경영지원실장을 맡다 지난해 인사에서 제일모직 패션부문으로 옮긴 윤주화 사장은 취임 후 패션사업의 재고관리 등 경영시스템을 삼성전자 수준으로 끌어올린 것으로 알려졌다. 그는 이번 인사에서는 제일모직의 패션사업이 삼성에버랜드로 이관됨에 따라 삼성에버랜드 사장 겸 패션부문장으로 자리를 옮겼다.

2007년 미국 제너럴일렉트릭(GE)에서 영입한 최치훈 사장은 6년 동안 전자, 에너지, 금융, 건설사업의 경영을 맡는 진기록을 세웠다. 그는 삼성전자 프린팅사업부장과 삼성SDI 사장을 거쳐 2011년부터 삼성카드 사장을 맡았다. 이번 인사에서는 삼성물산 건설부문의 경영혁신을 이끌 구원투수로 투입됐다. 삼성 안팎에서는 “B2B(기업 간 거래) 분야 전문성과 글로벌 감각을 인정받은 최 사장이 혁신 전도사 역할을 맡은 것”이라는 평가가 나온다.

CEO들의 인사이동이 늘어나면서 세대교체도 발 빠르게 진행됐다. 삼성그룹은 2011년 ‘검증된 인물 중용’을 키워드로 경험이 많은 경영자들을 부회장으로 승진시켰지만 지난해에는 ‘도전적 인물 선임’, 올해엔 ‘성과주의 인사’를 키워드로 발 빠른 세대교체를 단행했다.

신상필벌(信賞必罰)을 철저히 하는 삼성 특유의 성과주의는 이번에도 다시 확인됐다. 삼성 내에선 ‘무술 공인 10단보다 비공인 길거리 싸움 1단을 우대한다’는 말이 나올 정도로 학력 등 ‘조건’보다 실적에 따라 인사를 한다는 것이 정설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이번 인사에서 사장으로 승진한 8명 가운데 이른바 ‘SKY’로 불리는 명문대 출신(학부 기준)은 김영기 삼성전자 사장 한 명뿐이다. 최근 3년간 총 22명의 부회장, 사장 승진자 중에서도 서울대 출신은 6명, 연세대와 고려대 출신은 각각 2명, 1명에 그쳤다. 성균관대가 4명이고 나머지 9명은 서강대, 중앙대, 한국외국어대, 경북대, 부산대 등 9개 대학에서 한 명씩 고르게 배출했다.

한편 삼성그룹은 사장단 인사에 이어 5일경 부사장 이하 후속 임원인사를 발표할 것으로 예정된다. 인사팀장, 재경팀장 등 부사장급 자리를 채워야 하는 삼성전자는 큰 폭의 전보 인사를 할 것으로 보인다. 최고의 실적을 낸 삼성전자 등 전자 계열사들은 대규모 승진에 대한 기대도 크다.

김용석 기자 nex@donga.com
#삼성#삼성그룹 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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