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픈 기억 떨치고… 다시 “행진”

  • 동아일보
  • 입력 2013년 12월 3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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들국화 27년만에 정규앨범 6일 출시

빛과 그림자는 늘 함께 있다. 올해 4월 서울 서교동의 공연장에서 연주하는 들국화. 왼쪽부터 최성원, 고 주찬권, 전인권. 들국화컴퍼니 제공
빛과 그림자는 늘 함께 있다. 올해 4월 서울 서교동의 공연장에서 연주하는 들국화. 왼쪽부터 최성원, 고 주찬권, 전인권. 들국화컴퍼니 제공
1987년 가을, 들국화 3집은 나오지 않았다.

그해 여름, ‘1979-1987 추억들국화’(전인권·허성욱)가 나왔지만 85년과 86년 가을 세상을 흔든 그 이름은 지고 없었다. 암울한 시대를 뚫고 언더그라운드에서 튀어나온 ‘행진’ ‘그것만이 내 세상’ ‘매일 그대와’ ‘제발’은 처음 듣는 아름다움으로 당대의 청춘을 포박했지만 정작 들국화는 87년 요절한 것이다.

들국화가 6일 내는 앨범 ‘들국화’ 표지. 들국화컴퍼니 제공
들국화가 6일 내는 앨범 ‘들국화’ 표지. 들국화컴퍼니 제공
6일 들국화가 정규 앨범을 낸다. 1986년 2집 ‘들국화 II’ 이후 27년 만이다. 1995년 전인권이 다른 멤버로 ‘들국화 3집’을 제작했지만 최성원도, 주찬권도, 허성욱도 없는 음반이 들국화의 것이냐에 대해 의견이 갈린다.

그래선지 새 앨범 제목은 그냥 ‘들국화’다. 지난해 전인권, 최성원, 주찬권의 3인조 편제로 들국화는 재결합해 공연 활동을 재개했다. 올 6월, 다시 핀 들국화는 경기 고양시 일산의 차세대음향산업지원센터 스튜디오로 들어갔다. 신곡 작업은 순탄하지 않았다. 재결성을 이끈 주찬권은 개성 강한 전인권과 최성원의 가교가 됐지만 10월 갑작스럽게 사망했다. 그가 별세 전날까지 녹음한 드럼 연주와 코러스 위로 남은 두 멤버는 ‘들국화’를 완성했다. 발매를 앞둔 99% 공정의 ‘들국화’를 기자가 들어봤다.

2013년 ‘들국화’는 전성기에 분실된 ‘들국화 III’를 발굴해 보수한 것 같다. 소박한 편곡, 투박한 연주 위에 어김없이 유려한 멜로디와 가사가 얹힌다. 두 장의 CD로 돼 있다. 첫 장에 신곡 7곡과 라이브 실황 두 곡을 담았다. 둘째 장에선 옛 히트곡 12개가 새 옷을 입었다. ‘행진’ ‘제발’뿐 아니라 ‘사랑한 후에’ ‘제주도의 푸른 밤’까지 새로 편곡·연주됐다. 신곡 중엔 단박에 ‘록의 성가(聖歌)’가 되기보다 오래 불릴 노래가 많다.

고즈넉한 플루겔혼 전주가 여는 첫 곡 ‘걷고, 걷고’가 답이 된다. 거칠게 얘기하면 이 곡은 ‘행진’의 느린 답가다. 근음(화성의 가장 아래를 맡는 음)이 반음씩 상승하는 화성 위로 ‘걷고 걷고 또 걷는다’고 노래하는 전인권의 목소리는 목이 멘 건지 술에 취한 건지 분간하기 힘든, 80년대 그 막걸리 소리다. 그는 ‘행진’의 절반쯤 되는 빠르기로 ‘꽃이 피고 또 지고/산위로 돌멩이길 지나/아픔은 다시 잊혀지겠지’를 국화 핀 들판을 소요하듯 노래한다.

‘노래여 잠에서 깨라’는 장송곡 같은 ‘행진’이다. ‘캘리포니아 드리밍’도 떠오르는 음울한 악곡은 중간 템포의 셔플 리듬에 얹혀 나선계단처럼 단조와 장조로 맴도는데 곡 말미에 오지 오스본처럼 절규하는 전인권의 외침은 잔상이 길다.

신곡 중 세 곡은 리메이크다. 조동진의 ‘겨울비’(1979년)와 프랑스 가수 미셸 폴나레프의 ‘사 나리브 코조트르’에 전인권이 가사를 붙인 ‘다시 이제부터’, 그리고 김민기의 ‘친구’다. ‘무엇이 산 것이고 무엇이 죽었소’ ‘눈앞에 떠오는 친구의 모습’을 부르며 전인권의 목소리는 진혼으로 비틀댄다. 들릴 듯 말 듯 작은 소리로 받치는 주찬권의 코러스도 들린다.

마지막 신곡 ‘들국화로 必來(필래)’에서 주찬권의 목소리는 코러스를 위해 녹음됐지만 별세 이후 음량을 키워 최성원 주찬권의 듀엣처럼 완성됐다. 주선율이 아닌 주찬권 파트가 더 크게 들리는 건 환청인가.

‘가슴 아픈 너의 말/그건 들국화로 필래였어… 친구여 눈 들어 나를 봐… 세상의 모든 어린 들국화를 위해/들국화로 필래’

임희윤 기자 imi@donga.com
#최성원#주찬권#전인권#들국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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