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폐해 큰 대학총장 직선제로 돌아가자는 퇴행적 판결

  • 동아일보
  • 입력 2013년 12월 3일 03시 00분


부산고법 제2행정부(부장판사 문형배)가 총장 직선제를 폐지한 부산대의 학칙 개정을 취소하라고 판결했다. 부산대는 정부의 국립대 선진화 방안에 따라 직선제를 폐지하고 총장 임용후보자를 총장임용추천위원회에서 선정하도록 지난해 학칙을 개정했다. 부산대 교수회는 교수투표에서 58.4%가 직선제 폐지에 반대했다며 개정 학칙 무효소송을 제기했다. 1심에서는 교수회가 패소했으나 2심은 원고 일부 승소 판결을 내렸다. 학칙 개정은 총장 발의와 14일 이상의 공고, 교무회의 심의 절차를 거치면 됐지 교수회의 심의 의결까지는 필요하지 않다는 1심 판결을 뒤집은 것이다.

부산고법 재판부는 “총장선출제도에 관한 학칙 개정은 부산대 교수 전체의 뜻을 모아 진행해야 한다”며 “교수들이 총장 후보를 선출할 권한은 헌법상 기본권의 본질적인 부분”이라고 판결 이유를 밝혔으나 납득하기 어렵다. 총장 선출 방식에 왜 교수들의 의견만 반영해야 하고, 왜 교수들의 총장선출권한만 보장해야 하나. 실제로 부산대 교직원협의회 투표에서는 70% 이상이 총장 직선제 폐지의 학칙 개정에 찬성했다.

대학총장 직선제는 1987년 6·29선언 이후 민주화 과정에서 유행처럼 도입됐다. 그 후 대학들은 불법 선거와 파벌 싸움, 보상 인사 등 심각한 부작용을 겪었다. 부산대만 해도 2011년 총장선거 출마자 6명 가운데 3명이 불법 선거운동에 연루돼 1위로 뽑힌 총장 후보자가 벌금형을 받았다.

급여 인상이나 복지 확충 등 포퓰리즘 공약으로 당선된 총장에게 강도 높은 대학 개혁을 기대하기 어렵다. 각종 폐해를 경험한 대부분의 사립대가 직선제를 폐지했고, 전국 39개 국립대 전부도 총장 직선제를 없앴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가운데 국립대 총장 직선은 우리나라가 유일했을 정도다. 해외의 명문 대학들은 총장추천위원회나 헤드헌터 전문회사를 통해 유능한 총장을 영입하고 있다.

1심 판결을 뒤집은 문형배 부장판사는 이른바 진보 성향 판사들의 모임인 ‘우리법연구회’ 회장을 지냈다. 이번 판결이 재판장의 정치적 성향이나 이념을 반영한 것은 아니길 바란다. 교육부는 판결 취지가 총장 간선제 자체가 아니라 학칙 개정 과정의 문제를 지적한 것으로 보고 국립대 선진화 정책을 바꾸지 않겠다고 밝혔다. 부산대도 상고할 방침이다. 총장 간선제로 논란을 벌이는 국립대는 대법원의 최종 판결을 지켜봐야 할 것이다.
#총장 직선제#부산대#총장선출제도#불법 선거#파벌 싸움#보상 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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