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년째 사령탑… 국내 최장수 감독 비결은?

  • 동아일보
  • 입력 2013년 12월 2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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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종석 기자의 스포츠 인생극장]<6>프로배구 삼성화재 신치용 감독

국내 프로팀 감독 평균 재임 기간은 2년 남짓. 오죽하면 프로팀 감독 목숨은 파리 목숨이란 말까지 있을까. 그러나 프로배구 삼성화재 신치용 감독(58)은 1995년 9월 1일 삼성화재 창단 사령탑에 올라 19년째 한자리를 지키고 있다. 국내 프로스포츠 최장수 기록. 프로야구 한화 김응용 감독이 해태 시절 세웠던 18년(1983∼2000년) 기록을 넘어섰다.

○ 라면 피자 당구장 금지

기자는 약속 시간보다 20분 일찍 인터뷰 장소에 도착했는데 바로 5분 후 방문을 여는 온화한 얼굴의 신 감독을 만날 수 있었다. “우리 팀에 ‘10분 전 문화’가 있어요. 출발 시간에 1초라도 늦는 선수는 그냥 두고 떠납니다. 국제대회에 갔을 때 임원 한 분이 쇼핑 갔다가 늦기에 선수단 버스를 그냥 출발시킨 일도 있어요.”

기본과 원칙에 어떤 예외도 없다는 신 감독이 이끄는 삼성화재는 창단 후 17번(아마추어 포함)의 겨울리그에서 모두 결승에 올라 15번 우승했다. 지난 시즌 6연패에 이어 올 시즌도 선두. 비결을 묻자 “‘닥치고 훈련’이라고 할까, 훈련 말고는 아무것도 믿을 수 없다”는 답이 돌아왔다. 설악산 대청봉 뛰기는 소문난 연례행사. “시즌을 앞두고 오색약수에서 출발해 설악동으로 내려오는 코스다. 일반인이 7, 8시간 걸리는데 우리 팀 기록은 2시간 48분, 레오(외국인 선수)도 5시간 만에 주파한다.”

삼성화재에는 깐깐한 규칙이 많다. 라면과 탄산음료 불가, 오후 9시 이후 금식, 야간 휴대전화 사용 금지…. 선수들은 매일 아침 체중계에 올라야 한다. 과체중은 부상으로 연결될 수 있기 때문이다. 신 감독은 선수들 숙소의 쓰레기통을 뒤지는 것으로도 유명하다. “컵라면 같은 간식 먹은 흔적이 나오면 각오를 단단히 해야 한다.” 피자와 치킨은 생일 같은 특별한 날에만 감독 허락 후 먹을 수 있다.

선수들은 또 당구장 근처에도 가면 안 된다. 배구선수에게 생명이나 다름없는 어깨를 다칠 수 있어서다. 이렇다 보니 주변에서는 프로팀이 아니라 ‘유치원’ 같다고 놀리는 말까지 있다. 하지만 신 감독의 소신은 변함이 없다. “이기려면 훈련을 잘해야 하고 그러기 위해선 생활이 중요하다. 바른 생활태도는 생각과 마음가짐에서 나온다. 팀워크는 술 먹고 놀러 다닐 때 나오는 게 아니라 춥고 배고프고 힘들 때 나오는 게 진짜다.”

○ 권불십년은 없다

신 감독은 ‘달리기 훈련 지상주의자’이기도 하다. 400m 트랙을 30바퀴 도는 건 기본. “달리기가 지구력과 밸런스 향상에 좋기도 하지만 혼자 뛰면서 왜 내가 기술을 습득하고 왜 이런 플레이를 하는지 생각할 기회를 주려고 한다.”

삼성화재는 10연패가 무산된 2006년 김세진이 은퇴한 뒤 2007년 다시 준우승에 머물렀다. 이때 신 감독은 구단의 만류를 무릅쓰고 간판스타 신진식 김상우 방지섭을 동시에 은퇴시켰다. “재도약을 위한 승부수였다. 아마 그 선택이 실패했다면 관뒀을 텐데 바로 다음 시즌 정상에 복귀했다. 숱한 우승 중 가장 값진 승리였다.”

초창기 스타 군단을 구비한 삼성화재는 선수들의 개인기만 갖고도 충분히 승산이 있다고 알려졌다. 하지만 당시 물갈이 후 신 감독의 지도철학은 확 달라졌다. 삼성화재는 드래프트를 통한 우수 신인 영입이 불가능해지면서 외국인 선수로 전력을 극대화했다. 안젤코와 가빈, 레오는 타의 추종을 불허했다. 이들은 저비용 고효율의 대명사다. 다른 팀들이 수십만 달러에서 수백만 달러에 이르는 거물에 매달리는 동안 신 감독은 10만∼20만 달러의 몸값에 가능성 있는 젊은 선수에 집중했다.

“우리 외국인 선수가 성공하는 이유는 국내 선수의 희생과 배려 덕분이다. 강한 선수는 더 강하게 써야 이긴다. 철저하게 외국인 선수 위주의 플레이로 성공률을 높이는 거다.”

○ 제자, 가족 그리고 나

삼성화재는 지도자사관학교라 불린다. 남녀 프로배구 13개팀 중 10개팀 지도자가 삼성화재 출신이다. 신 감독이 제자들에게 늘 강조하는 게 있다. ‘겸손’과 ‘언어 선택’이다. “스타 출신일수록 자신을 낮추라고 합니다. 또 말조심을 해야 합니다. ‘왜 이런 것도 못하느냐’ ‘내가 하면 더 잘할 거다’라는 식의 말은 상처와 반감만 주죠. 눈높이를 선수에 맞춰야 합니다.”

그에게는 또 다른 화제가 따라다닌다. 바로 팀 소속 선수 박철우가 사위. 올해 외손녀를 본 신 감독은 “다른 선수들이 ‘장인 사위’ 관계를 의식하는 순간 감독 관둬야 한다”며 사위에게 “너나 나나 팀 떠나기 전까지 호칭은 무조건 감독이다. 집에서는 팀 얘기 꺼내지 않고 팀에서는 집 얘기 꺼내지 않는다”는 다짐을 받았다고 한다.

체육계는 최근 두산 김진욱 감독이 돌연 경질되면서 프런트 역할이 논란에 휩싸였다. 신 감독은 “감독을 을(乙)로 생각하는 단장은 구단주가 알아서 잘라주어야 한다. 감독과 단장은 협력하고 존중하는 관계여야 한다. 삼성화재는 현장은 감독, 지원은 단장의 원칙이 줄곧 지켜졌다. 좋은 프런트를 만난 것도 행운”이라고 했다.

어느덧 환갑을 바라보는 신 감독. 1983년 한국전력 코치로 시작한 지도자의 길도 30년을 넘어섰다. 그와 삼성화재의 오랜 동행은 언제까지 계속될까.

“내가 삼성화재에 있는 동안 다른 팀에서는 31명의 감독이 바뀌었다. 20년 동안 열심히 하고 성적이 좋아도 작은 사고라도 터지면 관두는 건데, 자부심을 느낀다. 삼성을 떠나 감독 하는 일은 없을 거다.”

‘어제는 추억이다. 다시 준비하자’는 좌우명을 지녔다는 신 감독. 성공을 잊고 매번 다시 도전하는 그의 철저함이야말로 강산이 두 번 변해도 직함이 변하지 않는 이유이리라.

김종석 기자 kimj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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