욕하면서도 복장터져도 꼬박꼬박 본다… 막장 드라마의 역설

  • 동아일보
  • 입력 2013년 12월 2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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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가네 식구들… 오로라 공주… 시청률 30%, 20% 고공행진
현대인들 감정의 쓰레기통 역할… 불만 쏟아내며 스트레스 풀어
시청률이 곧 수익으로 직결… 방송사도 비난 감수하며 집착

요즘 욕먹는 대표적인 막장 드라마들이다. KBS ‘왕가네 식구들’(위쪽 사진)에서 오만석(허세달 역·오른쪽)은 김윤경(은미란 역)과 불륜 관계에 빠지자 부인에게 당당히 이혼을 요구하고, MBC ‘오로라 공주’(아래쪽 사진)의 전소민(오로라 역·오른쪽)은 이혼도 하기 전에 서하준(설설희 역)에게 청혼한다. KBS TV 제공·MBC TV 방송화면 촬영
요즘 욕먹는 대표적인 막장 드라마들이다. KBS ‘왕가네 식구들’(위쪽 사진)에서 오만석(허세달 역·오른쪽)은 김윤경(은미란 역)과 불륜 관계에 빠지자 부인에게 당당히 이혼을 요구하고, MBC ‘오로라 공주’(아래쪽 사진)의 전소민(오로라 역·오른쪽)은 이혼도 하기 전에 서하준(설설희 역)에게 청혼한다. KBS TV 제공·MBC TV 방송화면 촬영
《 “정신적 도덕적으로 건강하지 않은 작가의 정신세계도 문제지만, 이상한 드라마를 욕하면서 보는 시청자들은 뭔가요? 시청률이 잘 나온다는 이유로 모든 걸 눈감고 방관하는 방송국 측도 문제네요.”(인터넷 포털 게시판 댓글) 》

시청자들의 거센 비난에도 불구하고 막장 드라마는 승승장구다. 막장 논란이 오히려 노이즈 마케팅 효과를 내 시청률을 끌어올리기도 한다. ‘욕드’(욕하면서 보는 드라마)와 ‘복드’(복장 터져도 보는 드라마)란 신조어까지 생겼다.

일일드라마답지 않게 등장인물이 줄줄이 죽어나가는 바람에 ‘막장의 끝’이라 평가받는 MBC ‘오로라공주’는 연일 시청률 기록을 갈아 치우며 20%에 육박하고 있다. 불륜을 비롯해 비정상적인 가족 관계를 다루는 KBS ‘왕가네 식구들’은 최근 30%를 넘었다. 성형수술로 얼굴을 바꾼 뒤 친언니의 연인을 빼앗는 내용의 KBS ‘루비반지’도 17%대까지 올랐다(AGB닐슨코리아 자료).

사람들이 이런 드라마를 욕하면서도 꼬박꼬박 챙겨 보는 이유는 뭘까. 전문가들은 시청자들이 막장 드라마를 ‘감정의 쓰레기통’으로 여긴다고 분석한다. 말도 안 되는 전개나 비상식적인 캐릭터를 욕하면서 불만이나 불안 같은 감정을 해소한다는 설명이다. 공희정 드라마평론가는 “막장 드라마는 현대인들이 스트레스를 푸는 도구다. 드라마를 보며 상대적으로 ‘나는 저 정도는 아니니까’라고 생각하며 안도감과 우월감을 느끼기 때문에 나도 모르게 불량식품에 끌리듯 중독되는 것”이라고 해석했다.

지상파 방송사들이 비난을 감수하면서도 막장 코드에 의존하는 이유는 한류 드라마 인기의 거품이 꺼지면서 국내 시장의 경쟁이 치열해졌기 때문이다. 한국콘텐츠진흥원에 따르면 방송 콘텐츠 수출의 65%를 차지하는 대(對)일본 수출액은 2008년 6562만 달러(약 695억 원)로 정점을 찍었으나 이후 가파른 하향세로 돌아섰다.

더구나 최근에는 케이블이나 종합편성채널로 시청자들이 이탈하는 현상이 두드러진다. 이런 상황에서 국내 시청률이 곧 수익과 직결되기 때문에 당장 관심을 끌 수 있는 한정적 콘텐츠만 반복해 생산해 내고 있다. 시대물이나 수사물 같은 다른 장르 드라마에 비해 치정 문제를 주로 다뤄 스튜디오 촬영 분량이 많은 막장 드라마는 제작비가 적게 든다. 투자 대비 높은 시청률을 올릴 수 있는 셈이다.

드라마평론가인 윤석진 충남대 국문과 교수는 “막장 드라마도 문제지만 KBS ‘예쁜 남자’처럼 한류스타만 내세운 천편일률적인 수출용 드라마도 한류 드라마의 인기를 시들게 하고 있다”며 “드라마 문화산업에서 다양한 실험을 하는 연구개발(R&D) 영역과도 같은 단막극이 막장 드라마에 밀려 2008년부터 서서히 자취를 감추기 시작한 점도 드라마 수출 전망을 어둡게 한다”고 우려했다.

최고야 기자 best@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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