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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파원 칼럼/신석호]미국 하원 ‘직장(職杖)’이 놀고 있는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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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파원 칼럼/신석호]미국 하원 ‘직장(職杖)’이 놀고 있는 이유

동아일보입력 2013-11-04 03:00수정 2013-11-04 0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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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석호 워싱턴 특파원
미국에서 하원의 권위를 상징하는 ‘직장(職杖·Mace)’은 여러 용도로 쓰인다. 46인치(약 116cm) 길이 봉에 둥근 머리와 독수리 형상의 은장식이 붙어 있는 이 직장이 의장석 오른쪽의 대리석 댓돌 위에 세워지면 하원 회기가 개시돼 의정활동이 진행되고 있다는 뜻이라고 한다.

직장은 의사당 내 질서 유지에도 활용된다. 의사진행 도중 의원들 사이에 폭력행위나 말싸움 등 소란이 발생하면 하원의장은 경위권을 발동한다. 그러면 경위장이 이 직장을 들고 본회의장을 돌아다니며 수습에 나선다. 직장을 든 경위장의 말을 듣지 않는 의원은 바깥으로 끌려 나가는 수모를 겪는다.

위키피디아에 따르면 직장이 의사당 내 질서 유지를 위해 가장 최근에 사용된 것은 1994년 7월이다. 이후 20년 가까이 하원 의사당 내에서는 폭력행위 등 소란이 발생하지 않았다는 뜻이다.

기자가 지난해 12월 워싱턴 특파원에 부임한 뒤 11개월 동안 미국 의회 내에서 의원들의 몸싸움과 같은 불미스러운 일이 벌어졌다는 뉴스를 본 적이 없다. 건강보험개혁안(오바마케어)을 둘러싸고 9월 20일부터 지난달 16일까지 행정부와 상하원, 민주·공화 양당이 첨예하게 대립했던 이번 ‘재정 파동’ 때도 마찬가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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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방정부의 기능을 16일 동안이나 정지시키고 세계 최강대국 미국을 국가부도 직전까지 몰아넣는 극도의 정쟁 속에서도 의회 내에서 물리적 충돌이 없는 비결은 뭘까. 매너와 절차를 강조하는 신사도 문화 덕분일까. 현역 국회의원도 현행법을 어기면 그 자리에서 수갑을 채워 잡아가는 법의 엄정함 덕분일까.

이번 재정파동을 면밀히 관찰해 온 일부 워싱턴 외교 소식통은 좀 더 구조적이고 본질적인 대답을 내놓았다. 민주주의의 기본인 다수결의 원칙과 주권자인 국민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는 여론조사 정치가 중요한 역할을 한다는 것이다.

미국 의원들도 여론이 극명하게 갈리는 사안에 대해서는 당론에 따라 투표한다는 점에서는 우리와 큰 차이가 없다. 이번에도 공화당이 다수당인 하원은 오바마케어 시행을 저지하는 예산안을 통과시키고, 민주당이 다수당인 상원은 반대 법안을 내놓고 상대방에게 던지는 ‘핑퐁 게임’이 여러 차례 계속됐다.

하지만 하원의 어떤 민주당 의원도, 상원의 어떤 공화당 의원도 합법적 의사진행 방해(필리버스터)가 아닌 물리적 힘으로 다수당의 법안 처리를 방해하지는 않았다. 주권자인 국민들이 지난해 11월 총선에서 상하원의 다수당을 만들어 주었고 다수당이 다수결로 법안을 통과시킨다는데 어쩌겠느냐는 분위기가 지배적이었다.

실제로 연방정부 잠정폐쇄(셧다운)가 단행되고 국가 부도 위기를 맞으면서 각종 여론조사에서 공화당에 대한 지지율이 떨어졌다. 이러다간 다음 선거에서 떨어지겠다고 판단한 일부 온건파 공화당 소속 의원이 민주당에 가세해 이번 재정파동은 마무리됐다.

다수당이 다수결 원칙을 실질적으로 보장받고 그에 따르는 책임을 지는 문화, 국가적 논쟁거리를 법안으로 구체화하고 투표를 반복하는 과정에 변화하는 여론의 추이를 반영하는 미국의 의회정치의 작동원리가 고스란히 드러난 사례였다.

게임의 룰이 이렇다 보니 미국 의원들은 한국에서처럼 의사당에서 최루탄 가루를 뿌리거나 전기톱으로 문을 부숴가며 법안 상정 자체를 막고 007작전 같은 ‘법안 날치기’ 작전을 할 필요가 없다. 우리는 언제쯤 이렇게 할 수 있을까.

신석호 워싱턴 특파원 kyl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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