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횡설수설/손효림]부모의 노년이 전하는 진실

  • 동아일보
  • 입력 2013년 9월 30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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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일 세상을 떠난 소설가 최인호 씨는 어머니가 노년에 이르러 화장을 하기 시작했다고 밝혔다(‘최인호의 인연’·알에이치코리아). 누이가 사는 미국에 다녀온 후 어머니는 “그곳 여자들은 하나같이 이러고 다닌다”며 매일 립스틱을 발랐다. 매니큐어까지 칠했다. 서른일곱에 최 씨를 낳은 어머니가 잿빛 두루마기를 입고 학교에 오자 친구들은 할머니로 오해했다. 최 씨는 어린 시절에는 화장하지 않는 어머니가 부끄러웠지만 나이 들어서는 늙은 어머니가 매일 화장하는 것이 부끄러웠다고 고백했다.

▷신구, 손숙 주연의 연극 ‘아버지와 나와 홍매와’는 간암 말기인 아버지가 돌아가시기 전 가족과 보낸 시간을 담담하게 그리고 있다. 형이 서울대에 입학하자 아버지는 곧장 서울에서 강원도로 이사해 차남인 ‘나’를 농업고에 진학시켰다. 그런 아버지가 나는 늘 서운했다. 이제 아버지는 정신마저 혼미하다. 어머니는 “너를 곁에 두고 싶어 그랬던 것”이라고 나지막이 말해준다. 40년의 노동으로 고단했던 아버지를 업고 나는 시골집 홍매나무와 달을 보며 추억 한 자락을 마당에 새긴다.

▷성철 스님은 출가 전 낳은 유일한 혈육인 딸(훗날 불필 스님)을 열세 살 때 처음 보자마자 “가라, 가!”라며 매몰차게 쫓아 보냈다(‘영원에서 영원으로’·김영사). 수년 후 다시 만난 딸에게 사는 이유를 묻자 “행복을 위해서”라는 답이 돌아온다. 성철 스님은 “행복에는 영원한 행복과 일시적 행복이 있는 기라. 그라믄 니는 어떤 행복을 위해 살려고 하노?”라고 되묻는다. 불필 스님은 이를 듣는 순간 출가를 결심했다고 한다. 속세와의 인연을 끊은 성철 스님이지만 딸을 자신이 생각하는 행복의 길로 이끈 것이다.

▷부모와 자식은 어쩌면 서로를 가장 모르는 사이인지도 모르겠다. 최인호 씨는 어머니가 자식들을 위해 젊음을 헌납하고 돌아가시기 전에야 비로소 여성으로 살다 가셨음을 깨달았다고 한다. 최 씨는 어머니를 다시 만났을 것이다. 그는 소망했던 대로 어머니의 얼굴에 곱게 분을 발라드리고 있을까.

손효림 경제부 기자 arysso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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