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현근 교장 “학생은 학교 고객… 만족도 높여야 교육이 산다”

  • 동아일보
  • 입력 2013년 9월 30일 03시 00분


코멘트

■ 삼성중공업 전무서 거제공고 교장된 김현근씨의 2년 실험

집무실에서 포즈를 취한 김현근 거제공고 교장. 그는 “2015년 2월 퇴임하면 필리핀과 인도네시아 등에서 교육사업을 펼칠 것”이라며 “기업과 거제공고에서 배운 노하우를 활용하겠다”고 말했다. 거제공고 제공
집무실에서 포즈를 취한 김현근 거제공고 교장. 그는 “2015년 2월 퇴임하면 필리핀과 인도네시아 등에서 교육사업을 펼칠 것”이라며 “기업과 거제공고에서 배운 노하우를 활용하겠다”고 말했다. 거제공고 제공
2010년 12월 삼성중공업 전무에서 자문역으로 발령 난 그에게 인사담당 부사장이 전화를 걸어왔다.

“전무님, 거제공고가 교장을 공모한다는데 지원해 보시죠?”

“네? 부사장님. 무슨 ‘장’이라고 하셨습니까?”

“허허, 교장요.”

그는 귀를 의심했다. 31년간 조선 엔지니어로 살아온 사람에게 교장이라니…. 그러나 거제공고가 2008년 조선부문 기술명장을 기르는 마이스터고로 지정됐다는 설명을 듣고 이내 마음을 굳혔다. 예비 명장을 육성하는 일은 제2의 삶을 준비하던 그에게 매력적이었다. 젊은 기술자의 부족을 현장에서 안타까워했던 그였다.

이듬해 초 면접을 통과해 2011년 3월 교장에 취임했다. 이 학교로선 첫 산업체 출신 교장이었다. 초보 교육자 김현근 거제공고 교장(61)의 도전은 이렇게 시작됐다.

○ 거듭된 실패

김 교장이 교사들과 행정직원들에게 가장 먼저 강조한 건 ‘스피드’였다. 그가 보기에 기업에서는 상상도 할 수 없을 만큼 느린 업무 추진 속도는 학교 발전을 가로막는 큰 장벽이었다. 무조건 ‘빨리빨리’를 외치는 그를 교사들은 마치 외계인 쳐다보듯 했다.

기업에선 리더가 키워드를 던지면 관련 부서에서 어떻게든 빠른 시일 내에 결과물을 만들어낸다. 그게 각 부서의 경쟁력이자 기업의 경쟁력이다. 그러나 교사들은 협업에 익숙하지 않았다. 그가 원하는 스피드가 나올 리 없었다.

김 교장은 6개월 만에 백기를 들었다. “처음에는 교사들의 느린 업무처리가 답답해 회사에서처럼 무조건 밀어붙였지만 결국 저의 판단 착오였습니다. 학교에 대해 잘 모르고 무작정 덤볐던 것이죠.”

○ 2년 만에 달라진 평가

김 교장의 다음 실험은 학교 구성원들에게 ‘고객 중심’ 사고를 입히는 것이었다. 그는 교사들에게 틈날 때마다 “우리의 고객은 학생과 학부모”라는 사실을 주지시켰다.

예산을 배분하는 것은 ‘선택과 집중’ 전략을 썼다. 관행적으로 써오던 예산을 과감하게 줄이는 대신 새로운 사업을 벌여 학생 만족도를 높이기로 한 것이다.

“기업은 같은 자원을 가지고 어디에 집중 투자할 것인지를 늘 고민하죠. 학교에서도 그러자고 했습니다. 학생들이 즐거워하고, 학생의 미래에 도움이 될 만한 것들을 골라 집중적으로 지원하자고 말이죠.”

김 교장은 만 18, 19세에 곧바로 사회생활을 시작하는 마이스터고 학생들이 자아를 제대로 정립하려면 다양한 경험이 필수적이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시청각실 오디오시스템을 업그레이드했다. 영화를 감상할 수 있는 프로젝터도 설치했다. 학생 전원이 생활하는 기숙사에도 도서실을 설치하고 명화 수백 장을 걸었다. 학생 전원에게 오케스트라나 뮤지컬 공연은 물론 야구장 관람 기회도 줬다. 학생 한 명당 악기 하나씩 다루게 하는 교육 프로그램도 만들었다.

김 교장의 이런 ‘학생 중심’ 정책은 교사들로부터 호응을 이끌어냈다. 교사들도 새로운 아이템을 들고 교장실로 스스럼없이 찾아왔다. 딱딱한 지시와 보고가 오가던 ‘수요 부장단 회의’(총 17명 참석)는 언젠가부터 격론의 장으로 변했다.

직업능력개발원은 올해 7월 마이스터고 평가 결과를 발표했다. 거제공고는 ‘교장의 리더십’ 부문에서 10위권 이내로 발돋움했다.

김 교장은 “얼마 전까지 내 옷 같지 않던 ‘선생님’이란 단어가 이제는 조금 익숙해진 듯하다”며 “기업 현장에서 터득한 노하우들이 ‘예비 기술 명장’을 키우는 데 조금이나마 기여할 수 있다면 기쁜 일”이라고 말했다. 김 교장은 2015년 2월 퇴임한 뒤에는 해외에서 교육사업을 펼칠 예정이다. 그는 2007년 자비로 세운 필리핀 파나이 섬의 한 초등학교 이사장을 맡고 있다. 그 학교는 현재 9학급에 학생 수도 150명으로 늘었다. 인도네시아에도 학교를 하나 세울 계획이다.

부산=김창덕 기자 drake007@donga.com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