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가 성석제 “설익은 지식 읊조리는 사람들… 결국은 자신에게도 폭력이죠”

  • 동아일보
  • 입력 2013년 9월 30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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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년만에 단편 ‘이 인간이 정말’ 펴낸 성석제

‘지금 행복해’(2008년) 이후 5년 만에 단편집 ‘이 인간이 정말’을 펴낸 소설가 성석제. 익숙한 일상 속에서 흥미진진한 이야깃거리를 발굴하는 능청스러운 이야기꾼의 면모가 여전하다. 전영한 기자 scoopjyh@donga.com
‘지금 행복해’(2008년) 이후 5년 만에 단편집 ‘이 인간이 정말’을 펴낸 소설가 성석제. 익숙한 일상 속에서 흥미진진한 이야깃거리를 발굴하는 능청스러운 이야기꾼의 면모가 여전하다. 전영한 기자 scoopjyh@donga.com
낄낄거리다 때론 끌끌 혀를 차며 읽다 보면 가슴 한편이 서늘하다. 소설 속 인간 군상의 모습이 남 얘기 같지 않아서다. 능청스러운 이야기꾼인 소설가 성석제(사진)가 5년 만에 펴낸 단편집 ‘이 인간이 정말’(문학동네)은 현대인, 특히 중년남의 욕망과 허세를 절묘하게 포착한 작가의 예민한 감성이 느껴진다.

노처녀 노총각의 맞선에서 오간 대화가 소재인 표제작 ‘이 인간이 정말’은 일방적 소통의 폭력성을 그렸다.

대화라고 하지만 실제로는 맞선남의 끝 모를 지식 나열이 관계를 파국으로 몰고 가는 과정이 흥미롭다.

“주변에 보면 설익은 지식이나 자신의 관심사를 일방적으로 읊어서 듣는 이를 피곤케 만드는 사람들 많지 않나요? 설령 그 내용이 옳더라도 그 방식이 타인은 물론 결국 자신에게도 폭력이 된다는 것을 보여주려 했어요.”

이 작품이 현대인의 ‘과잉’의 문제를 꼬집는다면, ‘찬미’는 내밀한 욕망 표현에 서툰 중년남들의 ‘결핍’이 주제다. 동창회 출석률을 좌우하는 매력녀 민주를 오래전부터 흠모했지만 이런 감정을 한 번도 제대로 표현 못하고 살아온 주인공은 20여 년 만에 민주에게서 “한번 만나자”는 문자를 받고 약속장소에 나간다. 하지만 약속장소에 나간 나는 민주로부터 재혼한 일본인 남편을 소개받는다. 똑같은 내용의 문자를 받고 모인 남자 동창 여럿과 함께.

“한국 남자들에게는 솔직한 욕망 표현을 막는 억제 기제가 작동하는 것 같아요. 주인공은 손 뻗으면 닿을 거리에 있는 민주를 머뭇거리다 놓치죠. 필요를 충족시키는 능력에서는 여성이 남성보다 훨씬 현명하다는 생각도 들어요.”

하지만 중년남을 바라보는 작가의 시선이 차가운 것만은 아니다. 명예퇴직을 하고 라오스까지 흘러들어가 제2의 인생을 모색하는 50대 남성이 소재인 ‘남방’에서는 어떻게든 ‘살아간다는 것’의 거룩함에 대한 작가의 연민이 가득하다.

“전망이 보이지 않는 시대, 탈출구가 안 보이는 시스템 속에 살아가지만 어떻게든 돌파구를 만들고 두려움 없이 앞으로 나아가는 모습을 보면 놀랍다는 생각밖에 들지 않아요. 무모하면서 귀엽고 또 기특한 이 아저씨들을 어떻게 미워할 수 있겠어요?”

우정렬 기자 passio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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