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인생을 바꾼 사람]이정일운테크연구소 이정일 소장

  • 동아일보
  • 입력 2013년 9월 28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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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주 잘보시던 할머니, 일곱살 내게 “운명학 공부할 운명”

일곱 살 꼬마는 할머니의 손에 이끌려 운명처럼 운명학의 길에 접어들었다. 이정일운테크연구소 이정일 소장. 그는 자신의 역할을 “행운을 가질 자격이 있는 사람들을 위한 참모”로 소개했다. 김경제 기자 kjk5873@donga.com
일곱 살 꼬마는 할머니의 손에 이끌려 운명처럼 운명학의 길에 접어들었다. 이정일운테크연구소 이정일 소장. 그는 자신의 역할을 “행운을 가질 자격이 있는 사람들을 위한 참모”로 소개했다. 김경제 기자 kjk5873@donga.com
“이 아이는 내가 사주 공부시키겠다. 사주에 이 공부를 해야 사람들에게 큰 도움을 줄 수 있다고 나와 있다.”

할머니께서 일곱 살밖에 안 된 딸에게 사주 공부를 시킨다는 말을 듣고 어머니는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신이 들렸다는 얘기인가. 그것은 아니라는데, 딸이 사주 공부를 하면 사람들이 어떻게 생각할까. 커서 시집이나 갈까. 생각만 해도 아찔했다. 평범한 여자로 살길 바란 어머니는 안 된다고 우겼다. 하지만 딸은 할머니가 시키는 공부를 곧잘 따라 했다. 사람의 정해진 운명은 있는 것일까.

중국상인들을 상대로 포목상을 하시던 할머니는 사주와 관상에 능했다. 중국 상인들은 거래를 하기 전에 상대방 사주를 꼭 보는 관례가 있었다. 이 때문에 할머니는 자연스럽게 사주와 관상을 접했고, 나중에는 절에 다니며 노스님들로부터 사람의 인생을 푸는 다양한 방법을 익혔다. 우연히 손녀의 사주를 봤는데 ‘운을 다루는 공부를 하면 다른 사람을 치유하는 능력’이 있다고 나왔다.

이정일운테크연구소(www.leejeongil.com) 이정일 소장(34)은 할머니 김봉예 씨(작고)의 손에 이끌려 운명학을 공부했다. 어린 나이였지만 명리학과 당사주를 시작으로 자미두수, 기문둔갑, 월령도 등 동양의 운명학을 달달 외웠다. 사주 공부의 시작은 기억력이다. 사법고시와 비슷하다. 사법고시가 법을 알고 판례를 공부해야 하듯 운명학도 원리를 알고 각종 사례를 찾아야 한다. 특정 사주의 사람이 어떤 인생을 살고 갔는지에 대한 사례가 많을수록 운명에 대한 컨설팅이 맞을 확률이 높아진다. 이 소장은 몸은 약했지만 기억력 하나는 비상했다. 운명학 공부를 시작한 뒤 단 하루도 쉬지 않고 원리를 익히고 사례를 찾았다. 모든 원리를 다 익힌 뒤 초등학교 2학년 때부터는 국내의 유명하다는 도사들을 찾아 다녔다. 지리산에 숨어 있는 도사에게도 찾아가 ‘한 수’ 배웠다.

“유명하다는 분 중 정말 형편없는 경우도 많았다. 돈만 요구하기도 했다. 전혀 맞지 않는 얘기를 하는 분도 있었다. 다섯 분 정도에게서는 잘 배웠다. 그중에는 국무총리 등 유명한 분들만 한 달에 2, 3명만 봐주는 분도 있었다. 그분이 내게 월령도를 알려줬다. 날 아껴주면서도 질투를 했다. 내가 가진 직관력이 더 뛰어났다고 했다. 사주를 보다 보면 어느 순간부터는 직관적으로 판단해야 한다.”

운명학 공부에서 공짜는 없다. 뭐든 배울 땐 대가를 지불했다. 스승들이 “너도 절대로 대가 없이 상담하지 마라”고 했다. 지금까지 쓴 돈만 서울 강남 아파트 한 채 값(약 10억 원)이 넘는다. 모두 할머니께서 대주셨다. 초등학교 6학년 때부터 ‘쟤 점 잘 보는 애’로 알려졌다. 중학교 1학년 때부터 서울 강남의 복부인들이 학교(언북중) 앞에 진을 쳤다. 당시 1990년대 초반으로 부동산 투기가 한창일 때였다. 당시로선 상당한(?) 돈을 받고 상담했다. 고교시절 한창 주가를 올리고 있는데 다시 어머니의 반대가 시작됐다. ‘여자가 이게 뭔 꼴이냐. 시집은 어떻게 갈래’…. 급기야 ‘대학 안 가면 집에 들어올 생각 마라’는 최후통첩까지 받았다. 그래서 연세대 경영학과에 들어갔다.

어머니의 성화에 못 이겨 간 대학이었지만 좋았다. 날개를 더 펼칠 수 있었다. 국내를 떠나 해외의 ‘비기(秘技)’를 공부하기 시작했다. 운명학에서도 어느 정도 수준에 오르면 더 좋은 방법을 찾게 마련이다. 1학년 때인 1999년엔 인도에 가서 고전 점성술인 베딕을 공부했다. 고등학교 때까지 동양 운명학에 집중했고 인도를 다녀온 뒤 대학 2학년 때부터는 서양의 비기를 공부하기 시작했다. 도서관에서 고시 및 취업을 준비하는 친구들과 함께 공부했는데 친구들이 “연세대 도서관 역사상 운명학을 공부한 학생은 네가 처음일 것”이라고 말했다. 그만큼 운명학 공부를 하는 대학생은 없었다. 2000년 캐나다, 2001년 프랑스 파리와 미국 뉴욕까지 가서 공부했다. 책으로 먼저 공부한 뒤 그곳의 도사들을 찾아다녔다. 서양의 고전 및 심리점성술을 모두 마스터했다.

이정일 소장의 할머니 김봉예 씨(왼쪽)와 아버지 이강수 씨. 이정일 소장 제공
이정일 소장의 할머니 김봉예 씨(왼쪽)와 아버지 이강수 씨. 이정일 소장 제공
운명학에서 원리는 전체의 5%만 차지하고 나머지는 사례다. 현재 이 소장은 4만 명이 넘는 사람의 사주와 인생을 머릿속에 담고 있다. 그는 “한 사람의 사주를 보고 그 인생의 중요한 사건들을 공부한다. 출생과 대학 입학 및 졸업, 입사, 승진, 자녀 출생 등 모든 것을 다 보고 기억해 둔다”고 말했다. 해외 유명 인사들의 사주까지 다 기억하고 있다. 4만여 명의 데이터를 통계학적으로 분석해 활용할 순 없다. 같은 사주라도 서로 다른 삶을 산 사례가 많다. 상담 받는 고객의 사주와 비슷한 다양한 사례를 꺼내 중요 순간의 선택에 따라 인생이 어떻게 달라졌는지를 알려주며 컨설팅한다. 좋은 사례, 나쁜 사례를 다 들려줘 좋은 쪽을 선택하도록 유도한다.

이 소장은 동서양을 합쳐 여섯 가지 방법을 써서 운명 컨설팅을 한다. 한두 가지 방법에서만 특정인이 ‘교통사고를 당할 수 있다’고 나오면 그냥 경향성일 뿐이다. 조심하면 된다. 하지만 여섯 가지 방법 모두에서 그렇게 나오면 실제로 일어난다. 운명학에서 절대적인 방법은 없다. 운명학에서도 테크닉이 중요하다. 여러 방법으로 실수를 최소화해야 한다.

남의 인생에 밝은 길을 찾아주는 운명학 공부가 재밌기는 했지만 평범한 학창시절을 보내지 못한 후회가 있기도 하다. 하지만 할머니께서 왜 그렇게 일찍 이 공부를 시켰는지 이해한다.

“할머니께서는 심상을 강조했다. ‘심상을 키워서 네가 마음으로 상대를 치유하라’고 하셨다. 할머니는 동자승부터 스님이 된 경우와 나이 들어 스님이 된 경우를 예로 들어 자주 말씀하셨다. 20세 때 배우면 그때까지의 가치관과 선입견이 개입된다는 얘기다. 이런 공부는 어릴 때부터 해야 그런 편견에서 벗어나 객관적으로 바라볼 수 있다. 운명학 컨설팅의 가장 중요한 요소가 객관성이다. 할머니께서는 내게 운명학 조기교육을 시키신 것이다.”

과거엔 한 사람의 사주를 보고 복잡한 계산 과정을 거쳐 컨설팅했지만 지금은 사주만 보면 직관적으로 모든 게 떠오른다. 상담은 한 사람의 사주로만은 볼 수 없다. 가족 등 주변 사람을 함께 봐야 한다. 미혼이면 부모, 기혼이면 배우자와 자녀를 함께 봐야 한다.

“자녀가 대학에 떨어질 운이 아닌데 떨어지면 부모의 운 탓이다. 한 경우는 재운이 없는 분이었는데 돈을 많이 벌고 있었다. 알고 보니 그 아들의 재운이 좋았다. 아들 덕에 아버지가 돈을 번 것이다. 이렇듯 운명은 단 하나로 결정되는 게 없다.”

운명은 정해진 게 아니다. 운명의 운(運)이 움직인다는 뜻이다. 하지만 명(命)은 바꿀 수 없다. 남자가 여자가 될 수 없듯 타고난 바탕을 바꾸긴 쉽지 않다. 사람을 평가할 때 그릇과 격을 따져야 한다. 그릇과 격에 따라 네 가지 경우의 수가 나온다. 그릇이 큰데 격이 높거나 낮은 경우와 그릇은 작은데 격이 크거나 작은 경우다. ‘아내를 때리는 국회의원’이라면 그릇은 큰데 격이 떨어지는 경우다. 저명한 대학교수가 획기적인 발견을 해 큰돈을 번 것과 카바레를 운영해 돈을 번 것은 격이 다르다.

“사람들은 운이 바뀌지 않는 것으로 생각한다. 그릇과 격이 바뀌기 힘들기 때문이다. 하지만 운은 결정된 게 아니다. 중요 시점에서 잘 결정하면 바뀐다. A, B중 선택권은 전적으로 그 사람에게 있는데 그동안 살아온 성향상 제대로 선택을 못하는 것이다. B를 선택하면 인생이 바뀌는데 A를 선택한다. 일반적인 사람들이 다 그렇다.”

‘내가 춤추면 코끼리도 춤춘다’는 이정일 소장의 대표적인 저서로 손꼽힌다. 김경제 기자 kjk5873@donga.com
‘내가 춤추면 코끼리도 춤춘다’는 이정일 소장의 대표적인 저서로 손꼽힌다. 김경제 기자 kjk5873@donga.com
이 소장은 한국 사회가 급격하게 선진국형 ‘부익부 빈익빈’ 사회로 가고 있다고 진단한다. 그런데 운명학적인 측면에서도 똑같은 현상이 나타나고 있어 안타깝단다.

“사회지도층에 컨설팅을 하면 다음에 바뀌어서 온다. 하지 말라는 것은 하지 않고 하라는 것은 한다. 한마디로 실행력이 뛰어나다. 하지만 평범한 사람들은 알면서도 못하는 경우가 많다. 늘 ‘아는데 안 돼요’라고 한다. 그래서 똑같은 실수를 반복한다. 잘나가는 사람들은 똑같은 실수를 반복하지 않는다.”

이 소장은 운은 자신이 만들어내는 것이라고 강조한다. 내 안의 나를 알고 다루는 게 운이다. 자기 자신과의 관계 맺기를 얼마나 잘하느냐가 중요하다. 자신을 잘 알면 중요한 선택의 순간 자신에게 맞는 선택을 할 수 있다. 어떻게 보면 평범한 진리다.

“세상엔 나쁜 놈이 잘산다는 말이 있다. 그들의 공통점은 죄책감이 없다는 것이다. 그래서 자신을 위해 나쁜 짓도 마다하지 않는다. 착한 사람들은 양심적이라 나쁜 선택을 하면 늘 힘들어 한다. 그래서 나쁜 선택을 잘 안한다.”

이 소장은 운명학을 인간 무의식 속 상처를 끌어내는 작업이라고 말한다. 그는“심리학자 카를 융은 ‘무의식이 의식화되면 그 힘을 잃는다’고 했다. 사람들은 의식하지 못하는 뭔가에 짓눌려 산다. 그것을 알면 훨씬 평탄한 인생을 살 수 있다”고 말했다. 운명학 상담은 이런 무의식의 상처를 치유해 주는 작업이다. 사주는 무의식의 지도다. 예를 들어 어린 시절 알코올의존증 환자인 아버지에게서 학대받았던 사람은 평소엔 기억을 잊고 사는 듯하지만 사실은 무의식 속에 기억이 잠재돼 있어 어느 순간 폭력적으로 될 수 있다는 것이다. 이런 것을 알게 해주는 게 운명학이다. 알면 고칠 수 있다. 이 소장은 “변화가 행복의 시작이다. 그러기 위해선 노력이 필요하다. 삶의 흐름을 좋은 방향으로 이끄는 것은 자기 자신”이라고 말했다.

이 소장은 상담 없이 자신의 상처를 아는 방법으로 독서와 신문 읽기를 권한다. 책과 신문 속에서 펼쳐진 다양한 스펙트럼의 삶을 보면서 ‘아, 이 사람도 이런 상처가 있네’ 하면서 자신의 상처를 알아내 치유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 소장은 2010년 서울대 행정대학원에서 석사학위를 받았다. 한 국가의 행정 및 정책이 국민들에게 어떤 영향을 미치는가를 연구했다.

“2001년 미국 9·11테러 때 큰 충격을 받았다. 수천 명이 그날 죽을 운명이었을까. 그래서 지인을 통해 당일 사망한 40명의 사주를 받아봤다. 죽을 운명이 아니었다. 그럼 왜 죽었을까. 미국의 국운이었다. 제2차 세계대전 때 일본 히로시마 나가사키에서 수만 명이 원자폭탄으로 희생됐다. 그것도 개인의 운명이 아니라 일본의 운명 탓이다.”

대기업 등 그룹을 대상으로 운명학 컨설팅 강의도 하고 있는 이 소장은 한국산업교육협회가 뽑은 ‘한국의 명강사 30인’에 3년 연속 선정될 정도로 인기가 높다. ‘내가 춤추면 코끼리도 춤춘다’ ‘오래된 비밀’ 등 운명학 관련 책도 썼다. 이 소장은 자신을 ‘행운을 가질 자격이 있는 사람들을 위한 참모’로 생각하고 있다고 했다.

양종구 기자 yjongk@donga.com

#이정일 소장#이정일운테크연구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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